"대사조절 치료법… 암퇴치 새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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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국립암센터 이은숙 교수(유방암센터장)는 "암 환자의 대사증후군(cancer metabolism)이 항암치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의 분자생물학은 암 세포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성장인자 등 표적을 찾아내고 그곳을 마치 유도탄처럼 정밀하게 폭격함으로써 암 세포의 성장을 막아 궤멸에 이르도록 한다. 이른바 항암 표적치료다.

이 교수는 최근의 항암치료는 이 같은 표적치료제 사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암 세포의 대사를 조절함으로써 암 치료율을 끌어올리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고 흐름을 전한다. 예컨대 당뇨환자가 메트포르민(metformin)이라는 약을 복용하는 경우 다른 치료제를 먹은 사람들보다 대장암, 유방암 등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낮아지는데, 이는 메트포르민이 생체물질 합성을 억제하는 AMPK라는 효소를 활성화 함으로써 암 세포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설명이다.

국립암센터(원장 이진수)는 그동안의 항암치료법의 연구 결과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조망하는 '차세대 맞춤 항암치료(Beyond the Personalized Therapy)' 국제심포지엄을 최근 개최했다. 이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조직위원장으로 행사 전반의 준비를 책임졌다. 이 교수는 국내 유방암 분야 손꼽히는 권위자다.

-항암 맞춤치료란 뭔가.
"예전에는 어느 장기에 어떤 암이 생겨났는지에 따라 치료법이 정형화돼 있었다. 하지만 종양생물학, 지놈 분석 등의 기술 발전에 따라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암을 일으키고 환자들도 사람에 따라 약물 대사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예컨대 같은 유방암이더라도 환자에 따라, 종양의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거기에 맞춘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현 단계 항암 맞춤치료의 수준을 평가해달라.
"궁극적인 항암 맞춤치료는 특정 환자에게 딱 맞는 단 하나의 치료법을 쓰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고 현재로서는 개인화한 치료(personalized therapy)로 가는 중간 길목쯤이랄까. 다양한 술을 이것 저것 섞어 하나의 칵테일을 만들듯, 특정 암 환자의 유전적 변이를 모두 알게 된다면 술을 이것 한 숫갈 저것 한 숫갈 넣어 그야말로 그 환자에게 딱 맞는 칵테일(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현재로서는 예컨대 폐암의 경우 EGFR1, AKT 돌연변이 등 이미 연구를 통해 밝혀진,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유전자 변이를 찾아서 이에 맞춘 약물이 특정 환자에게 효과적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어떤 인사들이 참석했나.
"하버드대학교 암센터 제프리 마이어하르트 박사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파멜라 굿윈 박사가 대장암 및 유방암에서의 당대사와 관련한 신약치료에 대해 발표했다. 미국임상암학회·세계폐암학회 전 회장인 미국 폴 번 박사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마크 대니엘 피그램 박사가 HER2(+) 유방암 및 비소세포폐암 관련 유전자 표적치료 전략에 대해 말했다. 싱가폴 Duke-NUS의 패트릭 탠 박사와 도쿄대학교 세이야 이모토 박사가 시스템생물학을 통한 새로운 암치료 개발, 기초과학과 임상의학의 협력을 통한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대해 논했다."

-표적치료제가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리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말기 암 환자들에게 실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만한 치료법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에서 보듯,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난다는 것이 문제다. 허셉틴이란 표적치료제가 나왔을 때만 해도 HER2(+) 유전자 변이에 따른 유방암은 다 나을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허셉틴이 암의 재발률을 50% 정도 억제하지만 여전히 재발환자가 나오고 있다. 암 세포는 아주 영악한 놈이어서, 암 세포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신호의 길목을 찾아내 이를 차단하게 되면 또다른 우회경로를 만들어 생존을 이어나가는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암 세포에도 줄기세포가 있으니 이것만 찾아내 모조리 죽이면 암 세포를 궤멸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이에 대한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최근 들어 암 세포의 '특이성'이 아닌 '보편성'에 맞춘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암의 대사를 조절해서 암 치료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보고가 늘고 있다. 보통 당뇨 환자들은 암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치료제로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환자의 경우 유방암, 대장암 등 암 발생률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암 세포는 에너지 원료로 당(糖)을 쓰는데, 메트포르민이 AMPK라는 효소를 활성화 해 암세포의 당 대사를 억제함으로써 암 세포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생물학 지식들로 인해 약이 리포지셔닝되고 있는 것이다. 메트포르민에서 엿볼 수 있듯, 암 환자의 대사증후군이 요즘 항암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최대 토픽 중 하나다. 만성대사증후군과 암이 결코 서로 다른 질병이 아닌 셈이다."

 

-약 리포지셔닝(drug repositioning)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기존의 약이나 또는 과거 개발됐다 사장된 약들이 암 치료제로 부활되고 있다. 종양생물학을 통해 종양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서 약의 효용이 암 치료과정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한참 전에 독일에서 탈리도마이드라는 궤양성 대장염이 개발됐는데,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약이 용도 폐기됐다. 그런데 이 약이 요즘 혈관종 등에서 필요한 혈관생성 억제제로 리포지셔닝되고 있다. 혈관생성은 암의 증식과 성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같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한참 전에 사라졌던 약이 항암치료제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국내 항암치료 수준을 높이는데 걸림돌이 있다면 뭔가.
"약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암 환자에 대한 유전자 분석(지놈 시퀸싱)을 완벽하게 끝마쳤다 하더라도 그 환자에게 줄 알맞는 약이 없어 고민이다. 표적치료제 등 혁신신약들의 대부분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개발되는 탓이다. 최근 들어 혁신신약의 임상시험이 국내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개발 초기인 임상 1상, 2상은 선진국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건강보험 적용은 또다른 걸림돌이다. 새롭게 개발된 암 치료제가 임상시험을 모두 마치고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 약가가 치솟는다. 약이 있다 하더라도 월 250만~300만 원에 이르는 것을 암 환자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결국 국내에서 혁신신약을 직접 개발하는 수밖에는 없다."

-요즘도 유방암 수술을 많이 하나?
"수술을 하루 10건 정도 한다. 수술이 워낙 밀려들다 보니 수술방을 동시에 2~3개 잡아 놓고 돌아가면서 동시에 할 때도 있다. 외부 사람들은 전화 연락이 안 된다고 불평하는데, 비슷비슷한 환자들도 많다 보니 실수의 우려가 있어 집중을 안할 수가 없다. 유방 재건 수술은 굉장히 오래 걸리는데 일주일에 서너명을 하고 있다. 나를 보고 찾아온 환자들이기 때문에 수술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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