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역안에 자리잡은 장애인권 농성장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광장 아래 있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다른 역사보다 유달리 넓은 이 지하철 역사 안에는 커다란 천막이 자리잡은지 오래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여기에 농성장을 마련하고 24시간 활동보조인 보장 등을 요구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8월 13일.
대선을 앞두고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주요 농성장'으로 떠올랐다. 여야 대통령 후보들이 앞다퉈 이들의 요구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나가는 시민들의 호응도 컸다.
시민들이 이 단체의 요구사항을 인쇄한 엽서를 각 정당과 대선캠프에 직접 보내는 캠페인까지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농성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멈추는 발길도 적어졌다.
송파솔루션장애인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로 활동하는 송용헌(60) 씨는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7분간 정연한 논리를 펼쳐나갔다. 얼마나 같은 얘기를 되풀이해왔는지 짐작하고 남을 정도였다.
◈ "농성 고되지만, 후세 위해서라도 멈추지 않을 것""부양의무제 때문에 부양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외면당한 장애인과 노인들이 1년에 10만 명씩 죽고 있다"는 그는 지난 3일 의정부에서 자살한 박진영 씨와, 지난해 10월 화재를 피하지 못해 숨진 11살 박지훈 군을 예로 들었다.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를 폐지했다면, 활동보조인이 보장됐다면, 모두 살릴 수 있는 생명"이란 것이다.
목적이 뚜렷하다 해도 오랜 농성이 고되지 않을 리 없다. 송 씨는 "하루 3시간 겨우 자나 싶다"며 "새벽에 지하철역 문이 닫혀도 청소하고 시설을 정비하기 때문에 낮보다 더 시끄럽다"고 했다.
경추 장애라 호흡기도 약한 그에게 먼지 가득한 지하철역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겠느냐"는 게 송 씨의 생각이다.
그는 "장애인이면 집에서 나오지 말지, 왜 밖에 나와 길 막고 있느냐는 사람들도 많다"며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도, 장애인 콜택시와 저상버스도 다 우리가 직접 싸워 얻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짧은 시간 안에 요구를 관철하진 못하더라도 자식 세대를 위해 끝까지 버티겠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서울 시내를 다니다보면 이들처럼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장기 농성자들. 그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 "초등 3년생이던 딸이 어느덧 고등 3년생…돌이킬 수 없어"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 옆에 있는 삼성물산 본사 앞. 이곳에도 장기농성자가 매일 진을 치긴 마찬가지다.
삼성물산이 참여해 재개발한 경기도 과천의 주공아파트 3단지 2차상가에 입주한 가게들의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과천 3단지 철거대책위원회의 장기농성이 이뤄지고 있다.
말이 좋아 '위원회'지, 농성을 이어가는 사람은 중년 여성 3명뿐이다.
현장에서 만난 방승아(47) 씨는 빗속에 우비를 입은 채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언니와 함께 옷가게를 했던 방주나(40) 씨는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김밥장사를 했던 김미옥(58) 씨도 허름한 승합차 안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있었다.
'농성'이란 단어조차 모른 채 상가에 벽보를 붙일 때만 해도 상가에 입주한 157세대가 모두 함께 했다. 직접 점포를 수리하고 단골을 사귀며 꾸려왔던 가게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해달란 바람 뿐이었다.
그게 벌써 8년 전이다. 누군가는 지쳐서, 누군가는 보상금을 받으려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지난 겨울은 유독 추웠다"는 그녀는 "우리를 감시하는 용역직원들이 '우리 때문에 추운 곳에서 일한다'며 '살가죽을 벗겨서 갈아먹겠다'고 마구 욕을 하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래서 사람이 목숨을 끊는구나' 싶었다"는 그녀는 "그렇게 지내는 동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외동딸이 혼자 커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껏 내 자식을 위해 싸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딸이 '힘들어 미칠 것 같으니 제발 그만두라'고 하더라"며 "집회하느라 문 벌금만도 수천만 원이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울분이 쌓여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 "이순신 장군이 꿈에 나와 진실 알리라 했다"…색다른 시위자도시내 곳곳을 다니다 보면 색다른 시위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만난, 흰 한복 차림의 40대 남성이 그렇다.
취재진에 먼저 다가선 그는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며 "피난생활을 겪으며 민심을 잘 알고 있던 선조가 이순신에게 민심이 쏠릴 것을 알고 견제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꿈에 이순신 장군이 나타나 구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진실을 꼭 세상에 알려달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현몽 이후로 다니던 증권회사도 그만둔 그는 이순신 연구에 푹 빠졌다. 일본의 고문헌을 뒤지기도 수 차례. 그는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지 백여 년 뒤에 영의정을 지낸 이여라는 분이 쓴 책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 책에 이순신 장군은 자살했으니 후대에 누군가가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다"며 "영의정까지 지낸 분이 거짓으로 썼겠느냐"고도 했다.
그는 "역사학계도 이미 사실을 다 알고 있다"며 "전사가 더 영광스러워 보이니 숨기고 있는 것일 뿐"이란 말도 덧붙였다.
사연은 제각각 다르지만 매일 한자리에 서는 사람들. 오늘도 그들은 온몸으로 외치기 위해 그 자리를 찾아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