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또다시 정치 전면에 나섰다.
국정원은 10일 대변인 성명을 내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화록 내용은 명백히 'NLL포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이른바 '서해해상군사경계선' 사이의 수역에 쌍방 군대를 철수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것이 사실상 NLL포기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성명에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NLL을 기준으로 한 등거리·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첨부한 서해 지도에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주장한 NLL과 북한이 주장해온 NLL 남쪽의 해상군사경계선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으로 표시하고, 이 지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면 우리 군함만 덕적도 북방선까지 일방적으로 철수하게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국정원은 "육지에서 현재의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대를 수원-양양선 이남으로 철수시키고 휴전선과 수원-양양선 사이를 남북공동관리지역으로 만든다면 '휴전선 포기'가 분명한 것과 같다"고까지 설명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이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한 것은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3일 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에 "아주 나도 관심이 많은"이라면서도 "NLL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건 옛날 기본합의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를 해나가기로 하고"라고 덧붙이고 있다.
NLL을 포함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을 남북의 경계선으로 한다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기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남아 있는 마지막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뭔가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서해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등을 제시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하면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인 NLL을 지키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서해에 평화지대를 설정하자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비밀문서인 정상회담 대화록을 일반문서로 격하시키면서까지 공개하더니 또다시 대변인 성명을 통해 대화록의 내용은 'NLL 포기'선언이라며 NLL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국정원이 왜 NLL 논란을 재점화하려는 것일까?
첫 번째는 국정원의 국내 정치개입에 대한 개혁의지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NLL 포기선언이 맞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국정원의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국정원은 10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은 남재준 국정원장 취임 후 국가정보기관 본연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강력한 자체 개혁을 추진해 왔다"면서 "그럼에도 지난 대선 때의 댓글 의혹 등 논쟁이 지속되고 있어, 이를 해소하고 새로운 국정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국정원 내에 자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제2의 개혁 작업에 착수, 대내·외 전문가들의 자문과 공청회 등을 열어 개혁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남북대치 상황에서 방첩활동과 대테러 활동, 산업 스파이 색출 등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는 강화하고 정치개입 등의 문제소지는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안보를 고려하지 않고 생명선과 같은 NLL에 대한 논쟁이 심화되고 그 내용이 왜곡됐다는 등 논란이 증폭돼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국가안보 수호의지에서 공공기록물인 회의록(대화록)을 적법 절차에 따라 공개했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의 개혁방안 발표는 헛구호임이 곧바로 드러났다. 국정원이 스스로 <정치개입 등의="" 문제소지는=""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동시에 NLL 논란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정원이 개혁 시늉만 내는 것이지 실제로 개혁할 의지가 없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최경환 국회 운영위원장이 10일 오전 전체회의에서 국가기록원 제출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의 열람 등에 관한 건을 가결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두 번째는 국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에 반발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정상회담 대화록과 관련 서류를 열람하기로 합의했고 국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따라서 NLL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킴으로써 정치공방을 확대 재생산해 국정원의 국정조사에 대한 여론을 가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정원 폐지로까지 치닫고 있는 여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에 이어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는데다 고교생들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면서 국정원의 폐지 또는 국정원의 국내정치 파트 해체를 주장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위기를 느낀 국정원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NLL 논란을 확대재생산 하려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NLL 포기선언이 맞다는 성명과 관련해 민주당 등 야당뿐 아니라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국가정보원의 성명과 관련해 "국정원 이적행위를 했다며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 의원은 "오늘은 국정원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국가의 이익과 명예를 저버린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국정원의 성명은 월권행위, 이적행위, 대통령 지시 항거라는 3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국정원은 정보기관이지 정무적 판단기관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 발언이 NLL 포기가 맞는지 여부의 판단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할 일이다. 국정원이 NLL 포기가 맞다고 단정한 것은 심각한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이어 "정상회담 회의록은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서"라며 "이 문서에 대해 북한은 '노 전 대통령 발언은 NLL 포기가 맞다'고 주장해왔는데,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NLL 포기가 맞다'고 공식화함으로써 북한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사실상의 이적행위를 해버렸다고 볼 수 있다"고 질타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소모적인 NLL 논쟁을 그만하자'고 제안한 상황에서 국정원이 새로운 논쟁에 불을 지른 것은 대통령 지시 사항에 대한 전면 항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