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비롯한 전국 대학들이 잇따라 인문학과 폐지를 선언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내부 구성원의 반발 역시 상당하다.
하지만 이 같은 '존폐 싸움' 속에서 정작 인문교육 활성화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폐과가 임박해서야 '반짝 관심'이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
인문학과가 매번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선 '존폐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학생들의 외면…교수의 외면 대전지역 주요 대학들의 2013학년도 1학기 수강신청에서 인문계열 과목을 비롯한 기초학문 기피현상은 어김없이 반복됐다.
대전 A 대학에서 폐강된 교양과목은 동양의 역사와 문화·미술을 통해 본 세계사·법과 사회 정의·동서 인간사와 윤리학·다문화 사회의 이해 등 20여 개. 대부분 인문사회 분야에 집중됐다.
B 대학의 경우 문헌정보학 등 일부 인문학 교양과목은 신청자가 1명도 없었다.
'학문의 기초'라는 인문학이 전공은 물론, 교양수업에서도 외면 받고 있는 것.
인문학과 일반인이 만나는 '접점' 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의 저술활동 역시 저조하다.
대학정보공시포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대전지역 인문학과 교수 1인당 저·역서 실적은 3년 치를 합쳐도 1권이 채 안 된다. 지난 3년 동안 한 권의 책도 나오지 않은 학과도 부지기수.
이는 '논문 편수' 중심의 교수평가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교수들의 설명인데, 그 결과는 '신뢰할 만한' 인문학 도서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생의 타 대학 이탈을 막기 위해 '인문학과 이탈 현상'을 묵인하는 대학 측의 방침도 문제다. 최근 폐과 문제가 불거진 한남대 철학과의 경우 지난 3년 동안 경영학과와 무역학과, 행정학과 등으로 전과한 학생이 35명에 달한다.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한다면 폐과를 가까스로 막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이 같은 '존폐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인문학, 기초학문으로서 제 기능 찾아줘야 인문학이 '일부의 학문'이 아닌 기초학문으로서 제 기능을 하려면 학교 내부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미국 등 다른 대학의 경우 이공계 대학에서조차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고 기초학문을 홀대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대학이 곧 취업 준비 기관이라는 전제가 바뀌지 않는 한, 인문학 교육의 재편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우려했다.
최근 한남대는 교양·전공 등 교육과정 전면 개편을 위한 검토에 나섰다.
개편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환 교수(철학과)는 "교육과정 전면에 대한 재점검을 통해 이른바 '문사철', 인문학 교육도 보강할 방침"이라며 "내용과 형식에서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