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정문 ''숭례문''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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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재발견-6] 도성과 다른 성문들, 정말 이대로 방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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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 복구가 완료됐다. 국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숭례문(崇禮門)은 더없이 반갑지만, 복구된 숭례문 화려한 조명 이면에는 여전히 우리가 눈 감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이 놓여있다. ''정문''의 그림자에 가려진 도성의 ''다른 문들'' 그리고 이 문들을 있게 한 ''한양 도성''의 부끄러운 보존 및 복원 현실이 그것이다.

숭례문은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정문(正門)이었다. 숭례문이 도성의 남측 통행문으로서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국가 시책을 보여주는 공개적인 장소이자 국가적인 중죄인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정치적인 선전장, 나아가 중국 사신을 전송 내지 접견하는 주요 외교행사의 장으로 활용됐던 것은 바로 도성의 정문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과 6.25 전쟁, 그리고 도심 난개발 속에서도 600년을 꿋꿋이 버텨온 도성의 정문은, 5년 3개월 전 ''땅값 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의 방화에 몸을 내어줬다. 숭례문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부동산 투기 개발 열풍과 그로 인해 파괴돼가는 역사문화자원의 비참한 현실을 대표적으로 그리고 극단적으로 고발해주었다.

그리고 5년 3개월만에 복구된 숭례문. 이 숭례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한 교훈을 과연 우리 사회는 이번 복구 과정을 통해 체득한 것일까. 숭례문이 고작 ''문화재 화재 예방과 방재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교훈하고자 그렇게 불에 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숭례문이 보여준 것은, 사유재산 극대화를 위한 부동산 개발 때문에 지금도 수없이 파괴돼가는 우리 사회의 역사문화유산과 유적들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는, 숭례문 자신을 정문으로 삼은 ''한양도성'' 그리고 자신과 함께 도성의 문을 이루고 있는 ''다른 성문''들이 처해있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 ''한양도성''과 ''다른 성문''들의 지금은 어떠한가

먼저, 한양도성을 살펴보자.

한양도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도읍의 성곽'' 즉 도성으로서 기능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그 길이 역시 현존하는 도읍의 성곽 중 최장의 길이를 자랑한다. 지금도 원래 전체 둘레 18km 중 12km에 걸쳐 세워져 있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적으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됐다.

그러나 한양도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도, 숭례문이 복구된 지금까지도, 도성의 부끄러운 보존 현실은 바뀌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현대 도로 체계 속에서 교통을 목적으로 한 도성의 부분적인 파괴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성곽 유실 구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지금 남아 있는 성곽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적인 ''한양도성''은 곳곳에서 개인 주택의 축대, 주차장의 담벼락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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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주택이나 주차장뿐이 아니다. 한국자유총연맹 본부 건물인 남산자유센터는 아예 도성 성곽 돌을 옮겨다가 센터 건물 축대로 쓰고 있다.

자유센터 옆 타워호텔을 리모델링한 반얀트리호텔은 도성을 땅 밑으로 밟고 서 있다.

한양도성의 보존과 복원을 지휘해야 하는 서울시장의 관저 ''서울시장공관''은 혜화문 옆 한양도성에 걸터앉아있다. 이 문제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서울시장공관은 여전히 제자리다. 지난해에 비로소 공관 이전 계획이 나왔지만, 2012년 10월 공관의 공원화 착수, 올해 3월 공관 이전 완료라는 일정은 아직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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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성문들을 살펴보자. 한양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있다. 4대문 중 도성의 정문이자 남대문이 ''숭례문''. 동대문이 ''흥인지문'', 북대문이 ''숙정문'', 서대문이 ''돈의문''이다. 4대문 중 서대문인 돈의문만 철거된 채 빈 자리로 남아있다. 그리고 4소문 중 북소문이 ''창의문''(일명 자하문), 동소문이 ''혜화문'', 남소문이 ''광희문'', 서소문이 ''소의문''(소덕문)이다. 현재 서소문인 소의문이 철거된 채로 빈 터다.

서울시는 돈의문을 2013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을 2009년에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돈의문 복원은 교통 문제와 예산 및 원형 복원 등의 문제가 겹쳐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상태다. 원형 복원이 아닌 어설픈 모형은 오히려 ''진정성''을 해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에도 역효과를 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복원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다만 서울시가 기존에 발표한 계획을 유보하거나 뒤집을 때에는 바뀐 입장을 다시 공식 발표하고 시민들에게 그에 합당한 설명을 해야 함에도, 대충 어물쩡 넘어가는 모습은 문제로 지적돼야 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역사문화유산의 많은 문제들은, 돈의문처럼 복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숙정문과 혜화문처럼 잘못 복원해서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은 북악산 위에 세워졌지만, 풍수지리상의 이유로 사실상 문의 기능을 하지 않는 상징적인 대문이었다. 태종 때 아예 폐쇄됐던 숙정문은 1504년에 동쪽으로 약간 옮겨 문루 없이 석문만 세워졌다. 문루 없이 석문으로만 500년을 지나온 숙정문에 별안간 없던 ''문루''를 세워 올린 것은 1976년. 북악산 일대 성곽을 복원하면서 숙정문에 없던 문루를 굳이 지어 올리고, 있지도 않던 ''숙정문''이란 편액을 달았다.

숙정문 편액(扁額)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이 때문에 ''복원된'' 숙정문은 두 가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는, 500년간 없던 문루를, 태조 당시 문루가 있었다는 주장에 기댄 채 원형 자료도 전혀 없이 가상 모형으로 지어올려서 도리어 원형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있지도 않았던 편액을 그나마도 당시 한자 글쓰기 순서(우→좌)를 무시한 채로 써서 달아올림으로써 숙정문의 역사문화유산적 진정성을 해쳤다는 점이다. 다만, 1976년 당시에는 전통문화 복원에 대한 지금과 같은 정밀한 시각이 부족했기에, 의욕적인 당시 문루와 현판 복원 시도 자체를 무조건 비난하기는 무리일 수 있다.

문제는, 광화문(光化門) 현판이 교체되고 숭례문이 복구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계속 제기되는 숙정문 복원 잘못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관된 정치적인 논란을 우려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봐야 한다.

다음으로, 동소문인 혜화문(惠化門)은 일제강점기 철거된 후 1994년 복원됐지만 이 역시 원형 복원이 아닌 모형 건축에 가깝고, 위치 역시 제자리가 아니다. 교통 문제 때문에 원래 자리인 동소문로에 놓이지 못하고 그 옆에 좀 비껴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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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소문로가 일제강점기 전철길이 놓인 후로 동소문로 아스팔트길이 깔릴 때까지 수십년에 걸친 도로 개설과 활용으로 그 길 높이가 깎여 내려가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동소문로에서 옆으로 비껴 있는 지금 혜화문 터의 지대 높이는 당시 혜화문 지대의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교통 문제 등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혜화문을 원래 자리인 동소문로로 당장 옮겨서 원형 복원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당장 고쳐야 할 심각한 문제는 혜화문의 현판이다. 혜화문의 원래 현판이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현판을 만들어 붙였다. 게다가 그 정체불명의 한자 글씨마저도 숙정문처럼 순서(우→좌)를 무시한 채로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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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현판이 보존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혜화문 현판은 혜화문의 역사유산 진정성 훼손을 넘어 아예 우리 낮은 문화재 복원 의식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증표라고 봐야 한다. 이 역시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됐지만, 고쳐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이런 웃지 못할 문제는 한양도성의 또 다른 문인 ''암문''의 표지판에서도 나타난다. 암문(暗門)은 성곽의 후미진 곳이나 깊숙한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드는 비밀 출입구다. 이름 그대로 비밀스러운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일반 성문보다 작다. 이 암문이 한양도성에도 있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정하는 시각이 많다. 지금 한양도성에 있는 암문들은 조신시대 암문이 아니라 성곽 안팎을 쉽게 드나들도록 복원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암문을 가리키는 영어 표기가 ''기상천외''하다. 낙산공원 정상에 있는 암문 표지판의 영어 표기를 보면, ''어두울 암''(暗)자를 쓰는 암문이 ''Rock Gate'', 즉 ''바위 암''(巖)자를 사용한 암문으로 둔갑한 것이다. 암문이라는 것이 성곽 건축에 있어서 공식적인 용어임을 감안할 때, 한양도성 보존 관리를 이끌어가야 할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이런 실수를 범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시와 구가 이 표기를 지금까지도 고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복구된 도성 정문 ''숭례문''의 화려한 조명 이면에 놓여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몇가지만 추려서 만나봤다.

숭례문의 진정한 복구는 단순한 건축물의 복구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의 복원이며, 그것을 대하는 태도의 성찰이어야 한다. 개발과 재산 증식에 대한 욕구로 공공의 문화재인 역사유적 파괴에 눈을 감아 온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숭례문을 정문으로 삼은 ''한양도성''과 ''다른 성문''들을 올바로 보존하는 노력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

새롭게 선 숭례문이 지금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숭례문이 ''미래의 문''이라는 대통령의 구호도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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