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장려 비판했더니 빨갱이로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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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안에서 정부 비판했더니 고문후 3년 수감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3월 21일 (목) 오후 6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오종상 씨 (긴급조치 위반으로 징역형 받았던 시민)

긴급조치 위헌 판결 내린 헌법재판소

 

◇ 정관용> 이슈인터뷰입니다. 유신시절 박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포한 대통령 긴급조치 1호, 2호, 9호. 오늘 헌법재판소가 모두다 위헌이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긴급조치 선포된 지 40년만이에요. 이 헌재 결정 때문에 그 동안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판결 받았던 피해자들, 아주 쉽게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죠. 이 위헌판결을 이끌어낸 당사자를 오늘 전화로 만나겠습니다. 본인 역시 긴급조치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았고요. 헌법소원을 낸 당사자 오종상 씨를 전화로 만납니다. 오 선생님, 안녕하세요.

◆ 오종상> 안녕하세요?

◇ 정관용> 우선 축하드립니다.

◆ 오종상> 감사합니다.

◇ 정관용> 사필귀정이죠, 그렇죠?

◆ 오종상> 네, 사필귀정이죠.

◇ 정관용> 우선 긴조위반으로 단속되셨던 게 몇 년도에요?

◆ 오종상> 73년도요.

◇ 정관용> 73년?

◆ 오종상> 74년.

◇ 정관용> 74년. 그 당시에 그러면 나이는 몇 살이셨고 뭘 하고 계셨을 때예요?

◆ 오종상> 34살 때인데요. 제가 잠시 시골에 가있을 때입니다.

◇ 정관용> 지방에?

◆ 오종상>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원래는 서울에 계셨고요?

◆ 오종상> 네.

◇ 정관용> 서울에서 직업이 있으셨고?

◆ 오종상> 그 전에 산업경제신문사에 조금 있었습니다.

◇ 정관용> 언론사에?

◆ 오종상> 네.

◇ 정관용> 그러다가 그때는 왜 지방에 내려가 계셨어요?

◆ 오종상> 친구들이 유신헌법 반대하면서도 관련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지명수배 돼서 저희 집에 숨어 있다가 탄로 나서 저까지 같이 시골로 피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 정관용> 잠깐 피신차 시골로 내려가 계셨다?

◆ 오종상> 네.

◇ 정관용> 그리고 그 당시 이미 결혼하셨었던 상태인가요?

◆ 오종상> 네, 애들이 둘이 있었죠.

◇ 정관용> 아이도 둘씩이나 있었고?

◆ 오종상> 네.

◇ 정관용> 그런데 시골에 내려가 계시던 그때 일이 터진 겁니까?

◆ 오종상> 그렇죠.

◇ 정관용> 어떤 일이었었나요?

◆ 오종상> 시골에 있었는데 제가 평택에 좀 나갈 일이 있었어요. 버스를 타고 나가는데 고등학생들 몇 명이 시끄럽게 떠들기에 뭐냐고 물어봤더니. 그 당시에는 웅변대회가 많이 있었어요. 웅변대회의 내용이 반공, 분식장려, 저축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평택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웅변대회에 나간다고 합디다. 그러면 그 당시에 박정희가 분식장려 굉장히 부르짖던 때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분식장려에 대해서 지금 고위직들은 분식장려 제대로 하지 않고 민간 서민들만 분식장려 한다. 고위층은 국수 몇 가닥에 계란 넣고 고기 넣고 먹는 게 무슨 분식이냐. 이런 것도 웅변 내용에 쓰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던 거예요. 그랬더니 그 당시 학생들은 정부를 비판하면 전부 다 공산주의나 빨갱이로 교육을 받았어요.

◇ 정관용> 그랬었죠.

◆ 오종상> 그러니까 정부를 비판하니까 이 학생이 어딘가 모르게 저를 아마 수상히 여겼던 모양이에요.

◇ 정관용> 신고를 했군요?

◆ 오종상> 네. 그러니까 도덕 선생이 그 당시에는 안기부에서 아마 가끔 교육을 받는 모양이에요, 그 당시는요. 도덕 선생한테 보고를 하니까 도덕 선생이 그러면 다시 가서 이런 거를 물어봐라. 그렇게 지시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학생들이 데모하면 어떻습니까? 물어 보길래 데모하면 구속되고 고문당하지. 이런 식으로 얘기했어요.

◇ 정관용> 데모하고 구속되고 고문당한다?

◆ 오종상> 네.

◇ 정관용> 있는 그대로네요.

◆ 오종상> 그랬더니 그걸 반공 선생이 우재현이라는 사람인데. 안기부에 가서, 중앙정보부죠, 그 당시.

◇ 정관용> 네.

◆ 오종상> 정보부에 가서 이거를 보고를 한 거예요.

◇ 정관용> 학생이 도덕 선생한테 얘기를 하고 선생이 중앙정보부에 신고하고?

◆ 오종상> 네. 그래서 며칠 있는데 시골에 중앙정보부 요원 둘이 와서 무조건 차에 타라고 해서 탔더니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로 끌고 가더라고요. 그러더니 그때부터 고문하면서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재우는데. 저를 정부를 비판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라 그러면서 자꾸만 몰고 가더라고요. 그러면서 고문하고 아니라고 하면 고문하고 고문해서 일주일 동안 고문을 당한 후에 제가 하도 많이 고문을 당해서 눈을 떠보면 어느 침대에 누워 있고 옆에는 어느 아가씨가 의사인지 간호원인지 서 있어요. 아마 제가 기절하면 주사를 놔준 것 같아요.

◇ 정관용> 정신 차리라고?

◆ 오종상> 네. 고문을 그렇게 받다가 할 수 없어서 그 사람들이 불러주는 대로 다 썼어요. 그랬더니 너는 자생적 공산주의다.

◇ 정관용> 자생적 공산주의?

◆ 오종상> 네.

◇ 정관용>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

◆ 오종상> 그렇겠죠. 그래서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반공법 위반이라고 해서 제가 구속된 거예요.

◇ 정관용> 그래서 재판을 받으셨죠?

◆ 오종상> 네.

◇ 정관용> 그래서 어떤 죄목으로 징역 몇 년을 받으셨어요?

◆ 오종상> 긴급조치 9호에다가 반공법을 해서 1심에서 7년, 2심에서 3년. 그래서 3년 만기 채우고 출소했죠.

◇ 정관용> 3년을 꼬박 채우시고.

◆ 오종상> 네.

◇ 정관용> 참, 출소하신 다음에는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 오종상> 출소하고 나서는 3년 동안에 제가 노량진 관내에 사는데. 노량진경찰서 정보과 형사 두 명이 아침저녁으로 3년 동안을 집을 관찰했어요. 그래서 저녁에 오면 오늘 뭐 했느냐. 일정을 보고하라 이 얘기에요.

◇ 정관용> 3년 동안. 그 후에는요? 후에는 제가 그 당시 고문을 당해서 척추에 이상이 생겨서 구부리지를 못해요, 몸을. 그러니까 직장을 못 잡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집에서 돈도 없어서 치료도 못 받고 그냥 집에서 누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관내 통장이 와서 보고 하도 불쌍하니까. 어떤 방법이 없는 거라고, 도와줄 방법이. 왜냐하면 자기도 도와주면 공산주의를 돌봐줬다는 그런 심증이 있으니까. 그래서 내 큰아들이 그 당시에 중학생인데. 통장이 얘기해서 장학금을 받게 해 주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어렵게 생활을 했죠.

◇ 정관용> 가족 분들의 고생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겠네요.

◆ 오종상> 집사람은 식당에 다니면서 일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그냥 생활했죠.

◇ 정관용> 지금도 척추가 안 좋으셔서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십니까?

◆ 오종상> 지금도 척추가 5번, 4번, 7번 이렇게 튀어나와서 구부리는 일을 못하고 지금도 못 구부리고 이게 신경을 눌러서.

◇ 정관용> 알겠습니다.

◆ 오종상> 왼쪽 다리가 불편하죠.

◇ 정관용> 그리고 먼저 법원에 재심청구를 하셨었죠?

◆ 오종상> 네.

◇ 정관용> 그래서 그게 재심청구가 언제 들어갔습니까?

◆ 오종상> 한 2년 됩니다, 그게.

◇ 정관용> 2년 전.

◆ 오종상> 네.

◇ 정관용> 그래서 그건 대법원까지 무죄판결 받으셨죠?

◆ 오종상> 네.

◇ 정관용> 혹시 그 후에 무슨 배상금을 받으신 바 없어요?

◆ 오종상> 배상금을 받았는데요. 아직 받지는 않고. 고등법원, 민사고등법원 2부에서 판결이 나왔는데 1억 1000만원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 후에 며칠 전에 민청련 학생들은 1년 미만 살았는데 4,000만원이 나왔고, 저는 고문당했고 3년 동안 시찰 당하고.

◇ 정관용> 그랬는데 1억 1000만원이다.

◆ 오종상> 네. 그런데 저는 평생 직장을 못 잡아봤어요, 허리 때문에.

◇ 정관용> 그러게 말이에요. 그리고 헌법소원은 언제 제기하셨던 거예요?

◆ 오종상> 3년 전에요.

◇ 정관용> 그러니까 그걸 먼저 제기하고 법원에 재심청구를 그 후에 하신 거네요?

◆ 오종상> 그렇죠.

◇ 정관용> 이제 법원에서도 대법원까지 무죄 받으셨고 헌법재판소에서도 그 근거가 된 긴급조치 다 위헌이다 판결을 받으셨고. 조금 마음의 위안이 되십니까?

◆ 오종상> 네. 맨 처음에 대법원에서 무죄 받았을 때는 그냥 어딘가 모르게 찝찝했는데. 오늘 헌재에서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으니까 아주 속이 시원합니다.

◇ 정관용> 속은 좀 시원하실지 몰라도 그 잃어버린 인생 어떻게 돌려받습니까?

◆ 오종상> 그러니까 지금 저는 사법부가 완전히 상스러운 말로 개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고문 당해서 평생을 돈도 못 벌고 이렇게 사는 사람을 국가에서 배상한다는 게 한 1억 1000만원 가지고 배상한다니 민청련 학생은 1년도 못 사는데 1억 4000이 나왔고. 고문 당하고 3년 동안에 이렇게 정보부에서 계속 감시를 했는데 이런 사람은 1억 1000만원 주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사법부에 대해서 완전히 불신하고 있어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다시 또 좀 진지하게 따져봐야 될 것 같고요. 아무튼 애 많이 쓰셨고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오종상> 감사합니다.

◇ 정관용> 덧붙일 말이 없네요. 오종상 선생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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