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 대회를 한 해에 모두 완주하면 극지마라톤 그랜드슬래머가 되는데, 워낙 힘들다보니 전 세계에서 서른 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그는 ''최연소''라는 타이틀에만 관심을 쏟는 주변 분위기가 썩 내키지 않는다. "좋은 스펙 쌓았네"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치밀기도 한다. 극지마라톤으로 얻은 함께 나누고픈 가치는 정작 따로 있기 때문이다.
남극에서 열린 극지마라톤을 마치고 돌아온 지 갓 보름을 넘긴 윤승철 씨의 얼굴은 붉게 타 있었다.
"눈에 반사되는 햇볕이 워낙 강하다보니 화상을 입는 선수도 많은데 그나마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여느 또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몸집에 웃는 인상을 가진 문학도 윤 씨와 4대 극지마라톤을 제패한 그랜드슬래머의 아우라는 쉽게 겹쳐지지 않았다.
극지마라톤은 식량, 옷, 취침 장비 등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짊어지고 6박7일 동안 250㎞를 달리는 경기다. 주최측에서는 물과 텐트만 제공할 뿐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는 것은 오롯이 참가자들의 몫이다.
"참가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요. 좋은 기록을 내려는 이들과 완주가 목표인 사람들이죠. 제 경우는 달리다가 좋은 풍경이 있으면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해요. 대다수 참가자는 저처럼 기록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곳에서 달린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거죠."
윤 씨를 극지마라톤의 세계로 이끈 것은 새내기 때 글의 소재를 찾다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사막을 달리는 사람을 담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단다.
"누가 물어 보면 거창하게 대답해야 할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 이유가 없어요. 사진을 보는 순간 그곳에 가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죠. 흔히 말하는 ''가슴 뛴다''의 의미를 확실히 경험했죠."
사실 그는 극지마라톤을 접하기 전까지 운동을 일부러 피했다. 평발인데다 중학생 때 다리를 크게 다쳐 성장판까지 닫힌 경험 탓이다.
"걷는 데 불편한 건 없었지만 불안했어요. 사막 마라톤 사진을 본 뒤 조금씩 운동량을 늘렸는데 괜찮더라구요. 최근 남극 가기 전에 찾은 병원에서는 일상생활도 어려울 만큼 평발이 심하니 조심하라더군요. (웃음) 박지성 선수도 평발인데 그렇게 잘 뛰는 거 보면 저도 큰 문제는 없다고 믿어요. 군대도 체력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어요. 그만큼 저에게 극지마라톤은 간절했죠."
윤 씨는 군 생활까지 3년여를 준비한 끝에 지난해 10월 꿈에 그리던 사하라사막 대회에 참가했다. 출발선에 섰을 때는 ''내가 드디어 이곳에 섰구나. 250㎞를 다 못 달려도 좋다. 쓰러질 때까지 달려보자''라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단다.
지평선이 끝없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넓다보니 도착 50여 분 전부터 결승선이 보이는데 그 때부터 ''이제 끝났다''는 홀가분함 덕에 없던 힘까지 생기더란다.
하지만 그 과정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6박7일 대회 중 3일차까지는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4일차부터는 반 이상 달렸다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는 거죠. 저도 첫 날 20㎞ 구간을 달리면서 출발선에서의 설렘은 사라지고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언제 끝나나''라는 생각만 들더라구요. 풍경도 눈에 안 들어와요. 오로지 생존 본능만 작동하는 거죠. 그 더위에도 삼겹살이 생각나요. (웃음) 일주일 동안 7, 8㎏이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그는 생애 첫 극지마라톤을 마쳤다. 그리고 올 들어 3월 아타카마사막, 6월 고비사막, 지난달 다시 한 번 사하라사막, 이달 남극까지 네 개 대회를 완주하며 그랜드슬래머가 됐다.
윤 씨가 다섯 차례의 극지마라톤에서 얻은 가장 큰 열매는 사람들이었다.
"대회에서 함께 뛰는 선수들이랑 국적, 나이, 성별을 떠나 굉장히 친해져요. 자연스레 그룹별로 다니면서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눕니다. 한 번은 제가 사하라사막에서 길을 잃었는데 한 친구가 끝까지 따라와 길을 인도해 주더라구요. 보통 40개국 넘게 참가하는 대회를 하나 마치면 사적으로 만남을 이어갈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지죠."
그에게는 고비사막 대회에서 받은 휴머니티상이 그랜드슬래머라는 수식어보다 더욱 값지다. 대회가 거듭될수록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격려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결과다.
''함께 뛰는 이들과 어떻게 즐기면서 달릴까''라는 고민은 이제 윤 씨에게 당연한 것이 됐다.
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십시일반 참가비를 모아 주고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도 소중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을 위해 사막 모래와 남극 얼음물을 담아오고 편지, 사진처럼 추억이 담긴 물건을 사막에 대신 뭍어 주는 이벤트도 벌이는 이유다.
윤 씨는 극지마라톤을 통해 실현 가능한 것에만 매달리지 않고 진정 원하는 목표를 찾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거창하진 않지만 항상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고 있어요. 과학서적 5권을 읽는 것도 문학도인 저에게는 도전이니까요. 직업도 지금 당장 뭘 할 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이뤄낼 자신이 있어요."
극지마라톤을 위해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1년 반을 휴학한 그가 사회에서 뒤처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윤 씨의 생각은 달랐다.
"20대는 하고 싶은 것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많을 때잖아요. 30, 40대는 못하는 20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열정과 잠재력을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너무 일찍 맞출 필요도 없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다고 봐요. 20대 만큼은 후회 없이 무엇이든 한 번쯤 시도해 볼만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