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눈으로 본 동학의 진면목

여울물 소리/황석영/자음과모음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66쪽)'' 소설 ''여울물 소리''의 주인공 연옥이 어머니 구례댁에게 전국을 휩쓰는 천지도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연옥이 다시 묻고 구례댁이 재차 답한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글쎄, 남이 한다고 성급히 따라 할 것이 아니다.

작은 복을 제 복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언제 하늘 복까지 바라겠냐.'' 연옥은 어머니의 말이 마음에 드는 한편 산전수전 다 겪어온 모녀의 지혜에 담긴 쓸쓸함을 느낀다.

소설 속 천지도는 현실의 동학이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작가 황석영은 이 소설을 통해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져 가던 격변의 19세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야기는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난 연옥이 세상을 떠도는 이야기꾼 이신통을 마음에 품고 그를 찾아다니면서 펼쳐진다.

연옥의 추적을 통해 신분의 한계를 가진 서얼로서 천지도에 들어가 혁명에 참가하고 스승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이신통의 일생이 오롯이 드러난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쓴다.

''자생적 근대화운동의 절정이 바로 동학혁명인데 내후년이면 그때로부터 120년이 되는 셈이라, (중략) 30년을 한 세대로 보는 동양식으로 보더라도 무려 4세대나 흘렀으니 그야말로 고통과 상처투성이의 근대가 마감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 앞서 연옥과 구례댁의 대화에서도 작가가 말하는 ''근대적 상처''가 담겨 있다.

그 상처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으로 지금도 우리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하지만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던 세상에서 ''사람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한 동학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것도 우리네다.

동학의 흔적은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 남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 개인에게도 이번 작품의 의미는 특별하다.

황석영이 ''제국주의의 침입과 함께 이식문화로 시작된 한국 근현대문학의 원류를 더듬어 이제 울창한 우리네 서사의 숲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쓴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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