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방송에서 아직 대선 후보들 간의 열띤 토론이 시작되지 않고 있다. 강력히 기피하는 후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KBS는 안철수 후보의 사퇴 직후 박근혜-문재인 후보 측에 양자토론을 제안했다. 29일 정치·외교분야, 30일 경제·사회분야 양자 토론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답변 시한은 28일 정오까지였는데 박근혜 후보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문재인 후보는 27일 오전 11시 쯤 토론에 참석하겠다고 공식연락했다.
SBS도 두 후보 측에 양자 토론을 제안했으나 문 후보에게서만 참석하겠다는 답변이 오고 박 후보는 묵묵부답. 토론회는 무산됐다. 그래서 요즘 박 후보의 별명이 수첩공주에서 지퍼공주, 락앤락 공주로 바뀌고 있다나. MBC는 양자토론을 추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디어스 11월 28일 자 보도). 추진 않는 이유는 뭘까? 요청해봤자 안 할 것이어서, 아니면 불쾌해 하실까봐?
◇ 수첩공주에서 지퍼공주로의 변신
한국천주교회도 지난 10월 15일 주요 후보자들에게 <제18대 대선 정책 공약을 위한 한국 가톨릭교회 제안서>를 보내 답변을 요청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성실한 답변을 보내왔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몇 차례 마감 기한을 미루다 결국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다. 이에 따라 천주교회 주교회의 측은 박근혜 후보의 경우 언론 보도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실린 공약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해 보고서를 내놨다. 천주교 주교회의 가톨릭사목연구소와 정의평화위원회 주최 대선 세미나에서 발표된 ''좋은 후보 선택 십계명''(명지대 김형준 교수)을 읽어보자.
제1계명 : 역사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라.
제2계명 : 민주적 발전을 위한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후보를 선택하라.
제3계명 : 시대정신에 입각한 비전과 정책을 갖고 있는 후보를 선택하라.
제4계명 : 대립과 증오의 정치를 끝낼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라.
제5계명 :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끊임없이 남을 배려한 후보를 선택하라.
제6계명 : 장애우,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아온 후보를 선택하라.
제7계명 : 실현 가능성이 높고 지속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하라.
제8계명 : 낮은 자세로 국민과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라.
제9계명 : 약속을 지키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후보를 선택하라.
제10계명 : 지역주의를 배격하고 포지티브 선거운동에 열심인 후보를 선택하라.
조금 더 구체적인 정책 검증 원칙들은 이런 것들이다. (''''속지 않는 국민이 거짓 없는 대통령을 만든다'''' 참조)
* 정책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지부터 확인하라.
* 정책으로 인해 국민에게 돌아오는 혜택, 국민이 지불할 대가를 함께 확인하라.
* 정책이 지지와 반대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것인지 확인하라.
* 정책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갖췄는지 확인하라.
* 상대와의 공통점을 인정도 하고 차별화를 하되 합리적으로 하는지 확인하라.
* 정책실행의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 어떻게 책임진다는 건지도 확인하라.
*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는지 행동거지는 어떤지도 살피자.
* 후보의 삶만큼 확실한 메시지는 없다. 후보의 인생을 살펴보자.
* 후보 주변 인물들은 어떤가, 그들은 후보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그 후보가 한 자리씩 떼어줘야 할 후보의 빚쟁이들이다.
한국의 최초 TV 대선토론은 1997년 12월 1일 월요일 저녁 8시에 시작되었다. 3차례에 걸쳐 치러진 평균 시청률이 53%, 투표율은 81%. 2002년 12월 대선토론은 평균시청률 34%, 투표율 71%. 2007년 12월 대선토론은 22%, 투표율도 63%.
왜 시청률이 떨어지는걸까? 답답하고 지루하고 뻣뻣한 대선 토론이 한국 스타일로 자리 잡은 게 문제다. 대선 토론 형식은 단독 사회자 토론, 전문가들이 등장하는 패널토론, 유권자들이 둘러싸고 질문을 던지는 타운홀 토론, 후보끼리 자유롭게 주고받는 자유토론, 계층·성별·연령대 별로 유권자 특정 그룹을 상대로 진행하는 집중형 토론… 얼마든지 개발 가능하나 너무 단순하고 경직되어 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대한민국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정치적 가치나 존재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지상파 텔레비전 후보 토론방송이 없어도 찍을 후보를 이미들 결정하고 있고, 후보 토론 방송을 한다 해도 그리 열심히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후보 혼자 나와 하는 대담방송마저 공정 시비에 휘말리고 토론 방송을 추진조차 하지 않는다면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정치적 앞날은 뻔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방송사 사장 한다고 좋단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