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원들이 삭발을 했다. 170일 파업을 벌였고 파업 종료 후 복귀해 110일 가까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고 밤 9시 ''MBC 뉴스데스크''는 ''KBS 9시 뉴스''와의 맞대결을 포기하고 8시로 옮겨졌다. 그런데 8시에 메인 뉴스를 방송하고 있는 SBS는 아무런 동요가 없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12년 지상파 3사 저녁 뉴스 시청률 자료(AGB닐슨, 수도권가구시청률)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9월 중 MBC 뉴스데스크 평균 시청률은 6.9%이다.
같은 기간 KBS 9시뉴스는 21.4%, SBS 8시뉴스는 12.8%이니 SBS의 반토막, KBS의 1/3이다. 소신 있고 일 잘하는 제작요원들이 변방으로 쫓겨나고 일감이 주어지지 않은 채 샌드위치 만들기 교양교육 받으러 다니는데 무슨 재주로 시청률이 올라가겠는가. 당연히 MBC의 살림살이는 이야기 꺼내기 난감할 만큼 엉망이 되어있다.
◇추락하는 MBC에 날개가 없다
MBC 노조가 사장에게 문제가 있다며 횡령과 배임, 부도덕한 행위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지 한참이 지났다. 꽤 두툼한 근거자료들을 제시했으니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이사회가 철저한 진상조사를 벌여 결과를 바탕으로 처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눈치만 보며 자꾸 처리를 미룬다. 결국 국회까지 나서 청문회를 열어도 사장은 해외출장 간다고 빠져나간다.
국회가 출장에 맞춘 건지 사장이 국회에 맞춘 건지 모르지만 방송의 위기에 사장을 국회가 청문회로 불렀다면 그 어떤 출장 일정도 우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도망이고 도피이다. 그리고서 회사 지분을 팔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다시 한 번 소동이 벌어졌다.
MBC 피디수첩 ''광우병'' 편도 다시 문제가 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했던 2008년 4월 방송내용에 대해 정부 관료들이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한 것은 모두가 아는 내용. 이 소송으로 지난해 9월 대법원이 ''PD수첩'' 제작진은 모두 무죄라고 확정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MBC 사측에서는 ''''PD수첩''''이 일부 허위내용을 보도한 걸로 판결이 났다며 시키지도 않은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제작진은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정직과 감봉이라는 징계까지 당해야 했다. 이번엔 억울한 제작진이 소송을 제기했다. 며칠 전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이 사건 담당 재판부는 MBC경영진이 대법원 판결을 잘못 해석해 엉뚱하게 사과방송을 하였으므로 다시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MBC vs BBC, 달라도 너~무 달라
도대체 MBC는 왜?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최근 PD저널에는 영국 통신원의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다. 지난해 8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미 새빌이라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간판 앵커 이야기이다. 무려 40년 간 국민의 존경을 받은 유명한 저널리스트. 그런데 최근 ITV(우리나라 SBS와 비슷한 방송)에서 지미 새빌의 성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지미 새빌과 그 주변사람들에게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수백 명에 이른다는 깜짝 놀랄 내용으로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더 큰 문제는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영방송 BBC가 이런 성범죄 사실을 알고도 쉬쉬해 왔다는 것. 그런데 BBC는 지난해 12월 그의 악행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방송을 제작했다 한다. 그런데 BBC의 다른 제작팀은 지미 새빌을 추모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상극의 내용인 두 프로그램이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다. 둘 중에 결국 추모 특집이 방송되고 폭로특집은 방송되지 못했다. 결국 ITV가 이 범죄사실을 폭로했고 BBC는 사실을 숨겼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것.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렇게 언론동업자끼리 비리를 폭로하고, 내부의 양심고발이 터져 나오고, 책임자는 누구든 조사받고 처벌받는 이것이 민주주의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국회가 청문회를 열어도 외국 출장 가면 그만이다. 그런 사장을 호위하는 간부들만 득세한다. 대법원이 제작진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도 제작진을 처벌하고 억지 사과방송을 한다.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라는 의혹을 살 수 밖에 없다. 엄청난 판공비 유용과 부적절한 여성 관계에 대한 내부의 의혹 제기로 여론이 들끓어도 이사회는 그저 겉돌기만 한다. 공적 방송을 둘러싼 영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 얼마나 엄청난 차이인지 한 눈에 드러나는 사건이다.
◇무엇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가?
왜 이런 어리석음이 등장하는 걸까? 무엇이 이런 어리석음을 만드는 걸까? 사람들은 정치인이 어리석어 그렇다고 믿는다. 천만에, 그건 사회문화적인 어리석음이다. 사회문화적 어리석음이란 이런 것들이다. 50여년 역사의 방송을 망치면서도 국회와 이사회에서는 무조건 여야 정파로 맞선다. 그러다보니 이사회도 국회도 방송사 사장이 무슨 일을 벌여도 힘을 못 쓴다.
모든 건 최고 권력자에게 맡겨져 있다. 정책이 실패해도 여야, 진보보수 대결로만 겉돌지 문제의 해결로는 가지 않는다. MBC 사태도, 4대강도 뭐든 말만 나오면 권력이 바뀌어야 해결되지 않겠냐고 한다. 선거 때 약속했어도 최고 권력자가 되고나면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 모든 건 최고 권력자와 그 친위세력에게 달려 있다.
국민사찰에 청와대가 끼어들고, 국민이 대통령 선거일에 투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늘려달라고 집권세력에게 빌다시피 해도 꿈쩍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게 우리 민주정치 문화의 수준이다.
노엄 촘스키 교수는 국민에게 필요한 국가와 권력자에게 필요한 국가는 같아 보여도 전혀 다르다고 설명한다. "권력자에겐 국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세상을 지배하고 권력의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떠넘길 수 있으니까."
독재자에게 국가는 지배라는 짜릿한 재미와 거느릴 부하들, 술과 여자와 향락의 비용과 평생 쓸 노후 비용을 제공한다. 국민의 혈세가 그것을 대주어야 한다. 그런데 MBC 사장도 엄청난 권력인가 보다. 그에게도 먹고 놀고 여행하고 노후의 정치적 보장까지 MBC가 대주고 있다. MBC는 무엇을 위한 존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