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박근혜 캠프에서 ''과거''를 만나는 방법

"방이 상당히 넓네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0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김문수 경기지사를 만나 얘기했다. 넓은 방. 그러나 그 넓은 방에 취재진은 들어갈 수 없었다. 심지어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조차 경호원들의 제지로 밟지 못했다.

당초 공개하기로 했던 두 사람의 회동 초반 5분은, 새누리당 측 설명에 따르면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취재가 제한됐다. 그러나 박 후보의 발언에서 보듯 궁색함만 느껴졌다. 김 지사도 집무실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몇명 안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기자들은 왜 들어오지 않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취재가 ''허락''된 4명의 풀 기자(많은 기자가 동시에 취재할 수 없을 때 순번을 정해 대표로 취재하는 기자)는 집무실을 둘러본 뒤 "공간이 그렇게 넓은 건 아니지만, 취재진이 굳이 밖에서 대기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지사측 관계자는 "10평 남짓한 공간이라 기자들이 서 있기엔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 후보 측 관계자들의 해명을 종합해보면, 이날 취재제한은 박 후보의 ''국민대통합'' 행보에 걸맞는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새누리당 측은 서울 여의도에서 수원 경기도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통합을 강조하는 차원"이라며 몇몇 일정에 대해서는 "기자분들이 좀 (후보에게) 떨어져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후보의 대통합 행보 화면에 기자들이 함께 나오는 상황이 영 못마땅했다는 것은 현장에 있던 박 후보 측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풀기자도 (후보의) 3m 안에는 붙지 말라". "야권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좋은 그림(사진이나 TV촬영분)이 많이 나오는데 박 후보는 항상 주변에 기자들이 마이크와 휴대폰만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박 후보 측이 보여주고 싶은 그림만 취재하러 온 건 아니다"라고 항의하는 취재진에게 박 후보 측도 할 말은 있다. 한 사람이라의 유권자라도 만나야 할 때 박 후보가 취재경쟁에 불붙은 기자들에 둘러쌓여 제대로된 스킨십을 못한다는 것이다. 금방 사라지긴 했지만, 박 후보 측 비서실 직원은 이런 취지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렇다면 과연 이 상황이 기자들의 과도한 취재경쟁 때문일까. 한참 단일화 이슈 등으로 관심이 불붙은 야권의 후보들을 상대로는 취재경쟁이 없어서 이런 논란이 없는 것일까.

매우 간단한 추론으로도 원인을 알 수 있다. 박 후보의 발언이 야권 후보들과는 달리 너무 ''귀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반나절만에 바뀌기 십상인 대선 국면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대한 박 후보의 입장은 초미의 관심이다.

그러나 박 후보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 확인이 어렵다. 박 후보를 대신해 의견이나 태도를 표명하는 역할을 맡은 대변인들조차 "나는 잘 모른다"고 답하기 일쑤다. 결국 기자들은 직접 박 후보에게 묻는 수밖에 없다.

마침 그 시기에 박 후보를 현장에서 만나면 기자들이 몰린다. 행여 토시 하나라도 놓칠까 취재수첩에 적을 새도 없이 휴대폰을 들이대 녹음을 한다. 더 잘 들으려고 기자들끼리 밀고 밀린다. 힘이 약한 여기자들은 곳곳에서 넘어진다. 이게 바로 비서진이 비판하는 ''과도한 취재경쟁''의 모습이다.

이날 집무실 같은 층도 아닌, 집무실 건물 로비에서 서성이던 기자들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보도지침이 오버랩된다"며 자괴감을 털어놨다. 본 기자는 기억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일이다. 그러나 우울했던 그 시대의 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와 만나는 방법은, 적어도 이날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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