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후보는 11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 말한 대로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과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낸 박범진 전 의원이 ''박정희 시대를 회고한다''는 학술총서에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을 염두해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박 전 의원은 학술총서에서 "내가 입당할 때 문서로 된 당의 강령과 규약을 봤고 북한산에 올라가서 오른손을 들고 입당선서를 한 뒤 참여했다"며 "서울대 재학생으로는 5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의원이 말한 인혁당 사건은 유신시대가 아닌 지난 1964년 8월 14일, 중앙정보부에서 57명의 청년들을 잡아들여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지명수배한 사건으로 당시에는 사형 선고와 집행은 없었다. 이를 ''1차 인혁당 사건''이라 부른다.
반면, 2007년 대법원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한 사건은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지난 1975년 도예종 씨를 비롯해 8명이 인혁당 재건을 시도했다는 명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지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이다.
박 전 의원의 증언을 최초로 보도한 조선일보에 따르면 박 전 의원 스스로도 "1974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완전히 별건으로, 거기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박 후보가 말하는 여러 증언 가운데 박 전 의원 외에 인혁당에 가담했다는 어떤 증언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박 후보가 1차 인혁당 사건에 가담했다는 일부 인사의 증언을 2차 인혁당 사건과 혼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 캠프 관계자는 "박 후보가 박 전 의원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참 난감하다"며 "1, 2차 인혁당 사건은 완전히 별개의 사건인데 이를 잘 모르고 말한 것 같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