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후보의 정치적 자산 대부분이 아버지의 후광이라는 지적이 무색하게, 그는 이날 명실상부하게 유력 정당의 최초 여성 대선 후보가 됐다. 12월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우리나라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된다.
박 후보는 1952년 2월 대구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9살이던 1961년 육군 소장이었던 아버지가 5ㆍ16 군사쿠데타를 통해 2년 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청와대에 들어갔다.
이후 1979년까지 아버지의 통치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10-20대 시절이 박 후보가 권력의 속성을 뼈속까지 체득한 기간으로 전해진다.
박 후보는 22살이던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간첩 문세광의 총탄에 잃었다.
그 뒤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5년 동안 박 후보는 정국운영의 일익을 담당했지만 1979년 10ㆍ26사태로 아버지마저 잃는다.
신당동 옛집으로 돌아가 18년이라는 긴 칩거생활을 거친 박 후보는 1998년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박 후보의 정치적 역량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때로, 불법대선자금 수수로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얻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면서부터다.
당 대표로 나선 그는 ''천막당사''를 감행하며 구태 정치 척결을 내세워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해진 그는 2007년 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고 일선에서 후퇴했다.
당내 친박 ''비주류''의 리더로 일종의 반(半)칩거 상태로 지내던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잇단 실책과 한나라당 발 악재 속에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전면에 나선다.
그는 지도부가 사퇴한 뒤 들어선 비상대책위에서 위원장을 맡아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당헌당규에 넣는 등 과감한 쇄신을 단행했다.
4.11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과반을 넘는 성과를 이끌어낸 박 후보는 ''박근혜 당''으로 정비된 새누리당의 선두에서 12월 19일 결전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