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인생 2막은 없다, 실패한 1막만 있을 뿐"

[현장에서 듣다 ''서민들이 바라는 경제민주화'' ④]

연말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정치권의 화두다.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균형 있는 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와 경제주체 간의 조화 등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할지를 놓고 유력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정책 대결이 벌써부터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서민은 실종됐다. 재벌개혁, 재벌해체,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오너 처벌강화 등 대기업 집단만 경제민주화의 대상 혹은 담론의 주체로 등장할 뿐이다.

CBS는 20대부터 50대까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인력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 세대별 서민들의 바람을 직접 듣고 그 목소리들을 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20대: "취직도 안되는데 경제의 민주화를 논해?"
② 30대: "비정규직이 오를 계단만이라도 허락해주세요"
③ 40대: "대기업 프랜차이즈, 아니면 죽을 수밖에"
④ 50대: "인생 2막은 없다. 실패한 1막만 있을 뿐"
⑤ "경제를 민주화하라"…우리들의 이야기


박지환
깡마른 체격에 구릿빛 얼굴을 한 장충기(남.55)씨는 50cc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타쇼."

오토바이 뒷자리를 내민다. 하얀 헬멧에 녹색 작업복 조끼 차림을 한 장 씨의 눈주름가가 쭈글쭈글하다. 거친 말투의 장 씨는 근처 형님이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됐다.

"젊을 때 잘 나갈 때는 서울 명동에서 토탈패션업에 종사했죠, 아주 잘 나갈 때죠, 돈도 좀 벌었고요, 내가 강원도 양구 21사단 GP 출신이라니까." 중년의 나이지만 왕년 얘기할 때 만큼은 얼굴에 화색이 돈다.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마쳤다고 여러차례 강조한다.

"의정부 지하상가 의류센터에 투자했다 전재산을 날렸어요, 그 뒤로 에어콘 수리, 고물상 분리수거 등 거의 막노동으로 전전하고 있지요."

세상 무서울 것 없다던 과거의 20대에서 힘없고 일자리 없는 현재의 50대로 갑자기 돌아왔다. 그에게는 더이상 일자리가 없다. 의류사업과 투자에 실패한 뒤 그가 생계를 위해 배운 기술은 냉동설비와 가전수리가 전부다. 가뜩이나 나이를 먹어 찾아주는 사람도 없는 데 최근 경기불황으로 하루하루가 더 힘들다고 한다.

"그냥 일거리 있으면 닥치는 대로 나가요, 불러주는 곳도 이제 없으니까요."

침묵이 흘렀다.

"막걸리나 한잔 할까요?"


목이 탄 듯 그가 먼저 제안한다.

"아들 둘이 있어요, 공고를 졸업했고요, 지금은 어디 영세업체에 취업해 일을 하기는 하는 데 영 아닌가봐요."

부인과 함께 30세, 27세 아들 둘을 둔 장씨는 조그만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다. 아들들은 번듯이 키워놨지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속상하다고 한다.

에어콘 설치와 가전제품 수리 등으로 그가 벌어오는 돈은 월 150만원도 안된다. 4인 가족이 생계만 꾸리기에도 빠듯하다.

"내가 재산이 많아서 아들들 장가가는데 도움만 되도 상관없는데 도움이 안되니까요, 장가 못보내고 있죠, 보낼 형편이 못돼요."

인생 2막이 무엇이냐고 묻자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떠드는 건 일자리 창출 얘긴데 막상 해보려면 일자리가 없어요, 그냥 일거리가 계속 있는 게 2막이지요"

자신의 어깨가 짓눌리는지도 모르고 가족 생계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우리네 전형적인 아버지 모습이다.

◈ "50대 실직자들을 위한 재교육 재정 확보가 우선"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50대 베이비부머 세대는 총 714만명. 5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73.1%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들의 취업직종은 자영업을 제외하고는 건물관리와 기계수리 등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어서 고용의 질을 담보할 수가 없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실직한 50대 가장들이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전직과 재취업을 위한 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뤄져야한다"며 "정부의 예산배정과 대기업 증세를 통한 기금 마련으로 이들에 대한 교육지원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이어 "대기업이 사회곳곳에 진출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 타격이 50대 실직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다"며 "중소기업적합업종도 빨리 확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 같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경제민주화는 무슨..."

이제 장씨가 기댈 곳은 자신의 몸뚱이 뿐이다. 국민연금을 납부하긴 했는데 마지막 납부가 10년도 훨씬 전이란다.

"국민연금 넣다가 중단한지가 꽤 오래됐다. 10년 될걸요. 벌이가 없으니 넣을 게 어디 있어요?"

당연히 사적연금도 없는 장 씨의 노후는 자신의 몸뚱이 하나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다치면 안된다. 서울 금천구청 취업알선센터에 이력서를 올려 놓은 장 씨는 자신을 불러줄 고용업체를 오늘도 폭염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최근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런 이야기는 할 수가 없을 거 같아요, 말발이나 있고 배운 게 있는 사람들이야 한마디 하지요, 우리같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야 뭘 할 수가 없잖아요."

힘 닿는 데까지, 몸뚱이가 다 할 때까지 일거리만 있으면 된다는 50대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는 오늘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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