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팬들의 상실감은 엄청날 수 있다. 그동안 한국 축구의 에이스가 세계 최고 클럽에서 뛰고 있다는 데 대한 국내 팬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맨유의 박지성을 알고 있다는 뿌듯함은 짜릿하게 등뼈를 타고 흘렀다. 하지만 이제 맨유의 박지성은 없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게다가 박지성의 이적이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 일본 대표팀 에이스 카가와 신지(23)의 맨유 합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떠오르는 해'' 카가와가 ''지는 해'' 박지성을 밀어낸 모양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냉철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지성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박지성과 맨유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만 할까.
▲ ''용 꼬리보다 뱀 머리'' 주전 보장에 위안
지난 시즌 박지성의 내림세는 확연했다. 기량은 여전했지만 경쟁자의 상승세가 워낙 대단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왼쪽 미드필더 애슐리 영이 맹활약하면서 주전 자리를 뺏겼다.
8골, 6도움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2010-2011시즌과 같은 28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2011-2012시즌 성적은 3골 6도움으로 주춤했다. 그나마도 중요한 경기는 대부분 빠졌고 컵대회, 챔피언스리그 등 비중이 적은 경기에 나섰다. 수비력과 경기 조율 능력도 좋은 만큼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기도 했지만 큰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내년 6월까지 맨유와 계약 기간이 남았지만 과감히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음 시즌 전체 경기의 40% 이상 출전하면 계약이 1년 연장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었다. 가뜩이나 출전 기회가 뜸한데 카가와까지 가세해 더욱 입지가 줄어들 공산이 컸던 것이다.
그럴 바에야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서는 게 더 좋은 선택이었다. QPR에서는 적어도 주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벤치에서 머무느니 그라운드에서 쓰러지는 게 나았다.
한국 팬들도 실리를 찾았다는 점에서는 쓰린 속을 달랠 만하다. 밤잠을 설쳐가며 박지성이 나오지도 않는, 혹은 후반 끄트머리에나 나서는 모습을 보느니, 처음부터 그라운드를 헤집는 박지성의 활약상을 보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용 꼬리보다 뱀 머리''라고 정상에 있는 맨유에서 벤치 워머로 소멸되는 것보다 하위권에서 팀을 끌어올릴 주축이 되는 게 유리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박지성이 QPR 입단 회견에서 "클럽이 다음 단계로 성장해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 맨유 · QPR 모두 ''윈-윈''
맨유는 사실상 박지성 효과를 누릴 만큼 누렸다. 기량에서 나오는 성적은 물론 아시아 투어와 유니폼 판매, 서울시의 스폰서 계약 등에서 속된 말로 본전을 뽑았다. 지금도 시장 가치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큰 시장인 일본을 감안한다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 신성 카가와 신지는 박지성이 맨유에 몸담았던 7년 세월을 고스란히 재현해낼 자원이다. 분데스리가에서 기량도 인정받았고, 일본 내 인기도 급상승하고 있다. 박지성 이상의 플러스 요인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맨유임에랴.
QPR로서도 손해보는 것은 아니다. 500만 파운드(약 88억 원)의 이적료를 내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알려진 스타 박지성을 영입하면서 새로운 아시아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QPR은 말레이시아 항공사인 에어아시아가 인수한 상황이다. 두 차례 자선 경기를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성황리에 치러내면서 인지도를 높인 박지성은 더없이 좋은 마케팅 카드다.
에어아시아 그룹 총수이자 QPR 구단주인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이 회견에서 "박지성 영입은 클럽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QPR의 투지와 야망"이라면서 "글로벌 스타 박지성과 함께 할 QPR의 새로운 시작이 기대된다"고 강조한 이유다.
▲ 박지성 자선 축구 사업에도 도움될 듯
박지성에게도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적이다. 박지성은 향후에도 축구 후진국에서 자선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현역 이후에도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박지성으로서는 동남아시아와 깊은 연고를 맺고 있는 QPR이 더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다. 박지성은 QPR 입단 기자회견에서 "곧 있을 프리시즌은 물론 QPR 아시아 투어도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스포츠 스타가 곧 톱 모델인 세상이라는 점에서도 박지성의 이적은 괜찮은 선택이다.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보다 그라운드의 박지성에 대중의 선호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해 플레이를 보여줄 기회가 줄어든 박지성이면 더욱 그러하다.
박지성은 갔다. ''사랑하는'' 맨유의 박지성은 갔다. 하지만 슬픔에 잠길 이유는 없다.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한 뒤 더 나은 결정을 내린 박지성의 성공적인 미래를 바라는 게 맞다. 대한민국이 낳은 축구 스타가 거둘 유종의 미를 조용하게, 그리고 뿌듯하게 지켜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