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곳이 대하(大河)빌딩이다. 10층짜리 이 건물은 1997년 사실상 역대 최초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캠프를 차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같은 건물에서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선캠프가 2일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대하빌딩은 현재 새누리당사가 입주해 있는 한양빌딩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데, 15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교체에 성공할 당시의 국민회의 당사가 한양빌딩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당시 정동영 후보는 이 건물 6층과 4층에 캠프 사무실과 씽크탱크인 나라비전연구소, 외곽조직인 평화경제포럼을 운영했다. 이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411호에 사무실을 내고 이명박 후보를 측면 지원했다.
지난 대선 때 대하빌딩과 연을 맺은 대권 주자는 이 뿐만이 아니다. 신당 경선을 앞두고 이해찬, 김두관, 김혁규 후보 등도 역시 대하빌딩에 둥지를 틀었고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역시 이 건물에서 대선을 치렀다.
1995년과 1998년에 잇따라 서울시장에 당선된 조순 전 부총리와 고건 전 총리도 대하빌딩에 사무실을 차린 바 있다.
선거캠프에 ''명당''이 있느냐를 두고는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신빙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다만 과거 유명 역술인이 대하빌딩을 "제왕지기(帝王地氣)가 서린 곳"이라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측 김경수 공보특보는 1일 "캠프 사무실이 어디에 입주했느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대하빌딩 주변의 건물도 최근 20여년의 한국정치사가 고스란히 스며있다.
선거캠프와 정당의 ''여의도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이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을 이룬 YS(김영삼 전대통령의 약칭)는 이듬해인 1991년 민주자유당사를 여의도 극동VIP빌딩으로 옮긴 뒤 9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운과 기는 거기에 그쳤다. 민자당은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으로 간판을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후보에게 근소하게 패했다. 김대중 후보의 당시 국민회의는 극동VIP빌딩과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2002년 대선 때는 양당 모두 새로운 당사에서 선거를 치렀다. 집권에 성공한 새정치국민회의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당사를 국회와 마주하고 있는 기산빌딩으로 옮겨 노무현 후보의 정권재창출을 이끌었다. 반면 국회 앞 대로변의 신당사에서 대선패배를 경험한 한나라당은 차떼기 사건까지 겹치자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천막당사로 이전하는 아픔을 겪었다.
<여의도는 만원(滿員)...문재인캠프 5일 증권가에 둥지>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대선캠프의 ''터''는 단연 여의도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종로구 수송동 석탄회관 빌딩에 40여평의 작은 사무실을 낸 것이 유일한 탈여의도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지난달 초 신동해빌딩 11층 전체를 빌려 선거캠프를 차렸다. 전략기획과 메시지, 공보, 조직 등의 업무가 이뤄지는 매머드급 캠프다.
야권주자인 김두관 경남지사는 산정빌딩에 자치분권연구소를, 박근혜 전 위원장의 캠프가 차려진 대하빌딩에는 외곽조직인 ''생활정치포럼'' 사무실을 두고 있다.
''선거戰''이라고 불릴 만큼 정치인에게 있어 경선과 대선은 총탄없는 전쟁이다. 국민의 지지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정책과 기획, 공보, 조직 역량이 총동원될 수 밖에 없다. 8~9월 경선과 12월 대선을 꿈꾸는 각 주자진영의 ''야전사령부''는 당분간 밤늦도록 불을 환히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