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찰스 콜슨이라는 80세 노인이 미국 이노바 페어팩스 병원에서 뇌출혈 수술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지난 24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존 콜필드라는 83세의 노인이 사망했다."
◇40년 전 워터게이트의 추억
지난 주 미국 발로 전해진 두 건의 사망소식. 이 둘의 공통점은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찰스 콜슨은 권모술수에 능한 닉슨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선거캠프에서 일한 뒤 백악관에 들어가 특별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꼬리를 밟히고 수사망이 조여들어가던 1972년 8월, "닉슨을 재선시키기 위해 내 할머니라도 밟고 넘어가겠다"라고 외치면서 유명해진 인물. 닉슨 전 대통령에게 위협이 되는 사회 각계인사 명단을 작성한 뒤 마구 인신공격을 퍼부어 저격수 보다는 망나니(살인청부업자 hatchet man)로 불리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젊은 여배우와 춤추는 닉슨의 경쟁자 에드워드 M. 케네디 상원의원의 사진을 찾아내는 혁혁한 공적을 세우는 등 배후에서 정치 공작을 벌이는 게 전문이다. 그가 고용한 인물이 정보국 출신의 고든 리디, 하워드 헌터 등인데 이들이 그 뒤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게 된다.
콜필드는 1972년 6월 17일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때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붙잡힌 인물.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던 당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획책하는 공화당 캠프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민주당 캠프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체포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닉슨정권의 선거방해, 정치헌금의 부정·수뢰·탈세 등이 드러났다. 도청 사건과 아무 관련 없다고 부인하던 닉슨은 대통령보좌관 등이 관계하고 있었고, 대통령 자신도 사건을 무마하려 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되어 1974년 8월 탄핵에 의해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도청과 수사, 탄핵, 대통령 사임에 이르는 3년에 걸친 사건을 통 털어 워터게이트 사건이라 부른다.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가가 있었던 워싱턴 D.C.의 호텔 이름이 워터게이트.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붙잡힌 것이 6월 17일이고 그로부터 며칠 뒤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에 줄줄이 불려 들어가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꼭 40년 전의 일이다.
닉슨은 대통령 임기 중에 이룬 업적만으로 따지면 미국인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대통령 중 하나이다. 뛰어난 업적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집권 프리미엄도 있고, ''핑퐁 외교''로 중국의 닫힌 문을 열어젖힌 ''데탕트 외교''의 성공, 미국의 가장 아픈 상처인 베트남 전쟁의 마무리. 이런 엄청난 치적들을 바탕으로 공화당의 닉슨은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한 채 민주당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주당 후보 경선은 맥거번과 머스키의 양자대결. 닉슨으로서는 머스키 보다는 맥거번이 훨씬 만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며 만만했던 맥거번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그 결과 닉슨과 맥거번 양자 대결 구도의 여론조사에서 닉슨은 지지율 60% 대 20%로 사상 유래 없는 3배 차 득표 대통령 당선이라는 신기록을 앞두고 있었다.
가만히 잠을 자고 있어도 당선될 닉슨 후보 캠프가 왜 민주당 선거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걸까? 문제는 너무 높은 지지율에서 시작됐다. 보나마나 3배 차이로 이길 것이 확실시되자 캠프 내부에서 대통령 당선 뒤에 벌어질 떡고물 경쟁이 시작된 것.
특히 캠프 내의 정보수집 분과위원회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닉슨 당선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선거 이후의 논공행상에서 찬밥신세가 될 게 뻔했다. 자포자기 상태인 민주당 상대 후보의 정보를 모아봤자 별것도 없어 좀 더 충격적인 방법의 꼼수를 생각해낸다.
정보수집 담당자들은 처음에 민주당 핵심 인물들에게 테러를 가하고, 미인계를 써 여자들을 민주당 인물들에게 접근시켜 정보를 빼내고, 비행선을 공중에 띄워 24시간 감시하자는 방책을 내놨다. 돈은 많이 들겠지만 확실히 눌러버리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제안에 민주당 선거 캠프의 반응은 당연히 노(NO)!
두 번째로 짜낸 계획은 테러와 비행선 감시는 빼고 미인계와 도청 위주의 정보수집이었다. 이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퇴짜 맞았다. 계획을 짠 것은 FBI 출신인 고든 리디, 찰스 콜슨은 직접 계획을 짜거나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계획을 지지하며 밀어 준 것으로 전해진다.
워터게이트 작전은 닉슨이 베트남전 반대인사들을 찍어 누르기 위해 짜고 있던 작전을 재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작전 코드명은 ''보석(Gemstone)''. 납치·강탈팀을 동원해 반전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다이아몬드'', 민주당 대선후보인 에드먼드 머스키와 조지 맥거번의 사무실을 도청하는 ''오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마이애미 비치에 도청장치를 단 콜걸들을 투입시키는 ''사파이어'' 등으로 구성됐었다.
어쨌든 두 번째 계획도 기각되자 세 번째 내놓은 방책이 민주당 전국 본부 사무실에 도청장치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것. 선거 캠프는 두 번이나 퇴짜 놓은 것이 은근히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계획에서 테러, 비행선, 미인계 등의 비싸고 위험한 건 빠져버리자 계획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계획으로 충격을 준 뒤 양보하는 척 당초의 도청 계획을 허락받은 의도된 작전일까? 그렇게 워터게이트 작전이 시작됐고 닉슨은 자신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며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둬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며 쫓겨났다.
정치에서는 과잉 충성파를 조심해야 한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침을 튀기는 사람들을 잘 살펴야 한다. 그렇게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함께 죽도록 사건을 터뜨리거나 자기보다 남을 먼저 또는 대신 죽게 만드는 법이다.
후보 경선에 들어간 두 당은 물론이고 수습대책을 수습해야(?)하는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 역습과 역풍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는 이 한 몸 던지겠다는 충성파가 자신의 독이 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