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을 보노라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두 사람과 민주당 당 대표 경선만이 눈에 들어온다. CBS의 임진수 기자는 "박지원의 새장에 갇힌 새누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원맨쇼에 의해 움직인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오늘은 박지원 대표가 무슨 말을 했지''라고 관심을 표명하기도 한다고 한다. 박지원 대표가 차기 권력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을 쉼없이, 잘근잘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증이라는 이유를 대며 이런저런 의혹들을 제기하고, 박 전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자산이라면 자산이자 부담이라면 부담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임을, 그것도 부정적인 측면에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열흘전쯤인 지난달 20일 박지원 원내대표가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와 박근혜 전 위원장이 수 차례 만났다''고 주장하면서부터 공방은 시작됐고 점입가경이다. 하루 뒤인 지난달 21일 박 전 위원장이 박지원 대표를 검찰에 고소하며 양측은 서로 대립의 칼날을 곧추세우고 있다.
박지원 대표는 "박 전 위원장이 고소함에 따라 앞으로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겠구나 싶어저를 더욱 기쁘게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정현 전 의원은 "박지원 대표의 흥분된다는 말을 빗대 성희롱을 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자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 술 더떠서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인도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 네루의 편지를 통해 역사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며 "박근혜 전 위원장은 독재자 박정희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생각할 때가 됐다,아버지로부터 배운 생각도, 이념도 정리할 때가 됐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면서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가 홍콩행을 하려는 것을 두고 "주변 정리를 준비하는 것 같다" "서 변호사가 왜 홍콩으로 갈까 참으로 흥미진진하다"고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1일 실제로 "새누리당 내에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 한 분이 반대하기 때문에 모든 의사가 무시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앞서 "다시 한번 새누리당에 오픈프라이머리를 제안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실 새누리당 최고위 회의는 박근혜 근위대처럼,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뒤에서 조종을 하는데 따라서 움직이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럼 언제까지 할 거예요? 하고 물어보니 "아마도 오는 9일 민주당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아닐까? 그리고 그 다음에도 기회 있으면 할 건데"라고 말했다.
박지원 대표의 이런 발언을 놓고 볼 때 당분간 박 전 위원장 공격은 계속될 것 같은데 다만 수위와 시기를 조절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난 갖고 있는 게 많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제가 언제 허무맹랑하게 비판한 것 봤습니까? 박태규씨와 박근혜 전 위원장과 만났다는 것도 그렇고, 박 전 위원장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신삼길은 친구사이이고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가 신삼길이 회장인 삼화저축은행의 고문 변호사였습니다."관련 정보가 제게 많습니다. 언젠가 드러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 원내대표는 최근이 아니고 지난해 초부터 박근혜 전 위원장 주변의 의혹 관련 발언을 자주했다. 지난 총선 때 일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과 서향희 변호사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게어떻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박 전 위원장이 맞고소 했다고 하니 "흥미진진할 것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했다. 결과는 물론 지켜봐야 한다.
◇박지원의 박근혜 때리기는 다목적용= 먼저 정치적 계산이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독주를 이쯤에서 막지 못하면 박근혜 대세론이 형성되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의 후보를 선출해봤자 힘도 써보지 못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이다.
박 전 위원장의 지지도가 40%를 넘게 나오고 있는 마당에 정권교체를 최고 목표로 삼고 있는 박지원 대표로선 다급해하고 있는 걸로 감지된다. 또 박 전 위원장 때리기를 통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민주당의 위상을 어떻게든 올려보자는 속셈도 자리하고 있다.
지난 총선 패배 이후 이렇다할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박지원 의원의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 등극 이후 그마나 존재감을 되찾은 게 사실이다.
박 원내대표의 정치적 욕심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한 달가량 이지만 자신이 민주당을 운영하니까 당이 살아나지 않느냐는 당 안팎과 언론의 평가를 크게 의식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맞물려 이번 기회에 자신의 정치적 값어치를 한껏 올려 대선 국면에서 박지원의 필요성과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정치적 목적도 깔려있다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공격만큼의 호재는 없다.
◇박지원 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우리 언론이, 아니 야당 출입 기자들이 박지원 원내대표의 입을 매일 쳐다보지 않느냐?
그의 입에서 정치 기사가 나오고 정치 기사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현장 기자들이 직접 보고있다. 우리 정치권에 그만큼 정치 기사를 양산하는 정치인이 별로 없다는 게 현실이다.
누구보다도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언론을 잘 알기 때문에 기사거리를 기자들에게 던지는 능력이 당대 1인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의제 설정 역량 또한 탁월하다.
박지원 원내대표만큼 욕을 많이 먹는 정치인도 드물지만 정국을 주도할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물론 꼼수정치, 비열한 정치라고 비판할지라도 그런 정치가 통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능력의 배경에는 물론 정보력이 깔려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전 위원장 주변과 관련된 정보가 상당히 많이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박근혜 전 위원장 검증의 바탕이 정보"라고 말한다.
◇박지원 다치는 것 아니야= 박 원내대표가 박근혜 전 위원장 때리기가 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얘기는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따라서 박 전 위원장으로부터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박 대표의 공격과 발언이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어 자칫 명예훼손으로 엮일 수도 있고,검증이라는 공세가 부메랑으로도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크기 위해 가장 잘 나가는 정치인을 들이받는 것, 때리기, 이른바 저격수라고 한다. 하지만 박 대표는 중진중의 중진인데, 꼭 그렇게까지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할 필요가 있느냐는 신중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박근혜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박지원부터 죽이려고 할 것이고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 CBS <김현정 뉴스쇼> 청취자들께서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박근혜 전 위원장 공격의 첨병에 섰다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결론 나는지를 보면 6월1일자 들으신 방송을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다.
박지원 대표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박 대표는 "잘 알겠다. 하지만 난 뭐가 되겠다는 사람이 아니다. 정권교체해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 펴고, 남북관계 바로 잡는 게 목표인 사람이다. 나밖에 악역할 사람이 없지 않느냐. 날 죽이려면 죽이라고 해라.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박지원의 박근혜 공격이 꼭 악재일까?= 박지원 원내대표의 공격이 가장 불편한 사람은 박근혜 전 위원장일 것이고 그의 측근들일텐데 왠지 새누리 분위기가 묘하다. 박 전 위원장은 분통을 터뜨릴 수 있겠지만 친이계는 말 할 것도 없이 친박계도 입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친박계의 한 관계자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이 심하긴 하다.그렇지만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7인회의 존재, 앞으로 문제가 될 서향희 변호사 건을 짚어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해서 그런지, 아니면 새누리당의 화력이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약화되서 그런지,박지원 대표에 대한 반격이 아주 약해 보인다. 박지원의 프레임에 갇혀 움쭉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겉으로 보기엔 박지원 대표가 죽도록 밉겠으나 오히려 내부 검증을 미리 해주는 것 아니냐?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다. 박지원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겠냐"라고도 호응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당선도 그랬었고, 1일 치러지는 새누리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도 박근혜 전 위원장의 의중을 반영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박지원 대표의 공격이 역설적으로 박 전 위원장이나 새누리당의 맷집을 키우는 긍정적 측면도 조금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인생사가 그렇듯, 정치도 아주 나쁠 것 같던 일이 좋게 나타날 수 있다. 정치에서도 새옹지마는 통용된다.
◇소통과 대화가 해법 = 박지원 원내대표가 그 해법을 직접 제시했다.
박지원 대표가 밝힌 일화다. 지난 95년 가을 국민회의 대변인일 때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YS 정부를 집요하게 공격했더니 자신의 뒤를 광범위하게 캐고 다니더라. 그래서 김대중 당시 총재에게 보고했더니 손톱을 깎지 말라. 자신은 이 말을 계속 할퀴라고 알아 듣고 YS를 매일 비판했다. 한 달여 뒤 청와대에서 김염삼 대통령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YS가 내등을 세게 때리면서 니 잘 하레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때 비로소 이제 뒷조사가 끝났구나라고 알았다"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또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정형근 전 의원이 지난 98년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4년 동안 공격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형근 의원(당시 한나라당)을 찾아가 설득하고 폭음도 했다. 그랬더니 나중엔 정 의원이 햇볕정책을 지지하더라."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다. 소통을 위해 마시기 싫은 술도 마셔야 하고,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전 위원장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안 보인다."고 MB와 박근혜 전 위원장 주변 인사들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말로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위원장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MB 정권의 성공을 위해, 박근혜 전 위원장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몸을 던질 사람들이 안 보인다."
"자신이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하면 직접 찾아와서 설명하고 설득하면 자신도 사람인데 멈출 것 아니냐? 하지만 그들에겐 그런 소통과 성의의 정치가 안 보인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끝으로 "너희들이 권력을 잡으면 국민.야당과 소통을 할 것인지를 테스트하고 있는데 낙제점이다"라고 일갈했다.
검찰에 고소하고, 네거티브대응팀을 가동하면 일정 부분 입을 봉할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 반대파의 마음만은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