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다코타를 위한 사우스 다코타의 선택 ''러시모어''

[자동차로 미국 누비기] 관광용으로 조성된 ''큰바위 얼굴'' 미국의 성지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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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는 무엇이든 쉽게 잘 만들어낸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첨단기술이 가미된 제품도 할리우드 영화같은 문화 콘텐츠도 가장 잘 만들고 넓은 땅에 지명을 빠짐없이 갖다 붙이는 데도 명수급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아틀라스, 멕시코, 노네임(noname), 알렉산더, 로마 등등...

그뿐이 아니다. 미국 땅을 여행하다 보면 기념비는 어찌 그리 많은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게도 기념할 일이 많은 건지 아니면 자그마한 일에도 감사하고 기념하고 그러는 것이 삶의 방식인지, 링컨 메모리얼, 제퍼슨 메모리얼 등 메모리얼(Memorial)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기념비가 곳곳에 즐비하다.

사우스 다코타주에 있는 러시모어(Rush more)는 미국땅 곳곳에 널려 있는 기념비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기념비 수준을 넘어 하나의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곳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러시모어 입구의 잘 정돈된 진입로 길가에는 성조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고 간간이 군복을 차려 입은 퇴역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그곳 분위기 탓인지 관광객들의 몸가짐도 자못 엄숙하다. 미국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조지 워싱턴과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미국의 땅덩이를 세계 3번째로 키우는 초석을 깐 토머스 제퍼슨, 연방시스템을 지키고 노예해방을 이끈 링컨, 파나마운하를 뚫어 세계를 좀 더 가깝게 만든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전직 대통령들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위대한 4명의 대통령상(像)이 산위에 조각된 경위다. 그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애초 위대한 대통령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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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러시모어의 안내인(ranger)은 "미국 대평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미주리(Missouri)강의 동쪽지역 즉 다코타 일부와 아이오와, 미네소타지역은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밀 등 농산물 생산량이 많아 미주리강 서쪽지역에 비해 소득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대부분의 땅이 초원으로 이뤄진 미주리강 서쪽은 목축 외에는 내세울 만한 물산(物産)이 없어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늘 고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다른 지역으로부터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것이었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독특하면서도 대단한 것을 만들자는 데서 기념비 조성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러시모어는 사우스 다코타주 서부의 최대도시 래피드시티(Rapid city)로부터 남서쪽으로 36km지점에 위치해 있다. 러시모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베드랜드는 대평원이지만 러시모어는 블랙힐스 국립숲(National forest)안에 있어 주변지역에는 소나무가 많다. 근처에 키스톤과 힐시티란 작은 도시가 있다.

골드러시가 시작된 뒤 블랙힐에서 금이 발굴돼 키스톤에는 오늘날까지 금은세공업이 발달해 있다. 자연히 미주리강을 오가는 여객선 노선이 생기고 시카고에서 서부로 이어지는 철로는 사우스 다코타지역을 지나게 됐다. 일찌감치 발달한 교통망을 따라 수많은 인구가 몰려 들어 19세기말 사우스 다코타는 미국의 주로 승격됐다. 늘어나는 인구는 그만큼 먹고 살기가 팍팍해진다는 의미도 있다.

이 때 관광객을 끌어들일 기발하면서도 조금은 생뚱맞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돈 로빈슨(Doane Robinson)이었다. 러시모어가 있게 한 장본인이었던 셈이다. 경부고속철도를 뚫기 위해 천성산에다 터널을 뚫고 4대강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한국 환경론자들이 강력반대하고 나섰듯이 사우스 다코타의 환경론자들도 맹렬한 기세로 산봉우리 조각상 계획을 반대했다. 물론 조각상 조성사업이 환경파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산 위의 거대한 조각상이 미국의 각 주로부터 돈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수적으로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조각상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과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의 열정이 더해져 조각상이 빛을 보게 된다. 러시모어를 새긴 조각가는 초기 주위의 반대와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나머지 여생 14년을 꼬박 조각상 새기는 작업에 쏟아 부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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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모어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돈 로빈슨(Doane Robinson)은 애초 인디언 추장 ''레드 클라우드''나 서부 탐험가 루이스와 클락 같은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을 새기자는 제안을 내놨다. 하지만 조각가 것즌 보글럼(Gutzon Borglum)은 즉각 이 제안을 거부했다. 이유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인물들의 조각상을 새기는 데 자신의 여생을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보글럼은 시간을 초월한 역사적 인물 그러면서도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전국적 수준의 인물들을 조각하는 데 그의 남은 여생을 바침으로써 후세에 뭔가 의미있는 유작을 남기고자 했을지 모른다.

돈 로빈슨과 물심양면으로 사업에 힘을 보탠 노르벡 상원의원은 보글럼의 생각에 동의했다. 보글럼은 두 차례의 지질 답사여행을 거쳐 1925년 8월 13일 바위의 종류와 경도, 위치, 향(向)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이 마운트 러시모어라고 결론짓고 그곳에다 조각상을 새기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0세. 그로부터 보글럼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14년동안 러시모어 대통령상 조각에 매달렸다. 나머지 인생 전부를 러시모어 건립에 바친 것이다.

산위에 거대 조각상을 새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만 이외에도 주변의 반대와 재정적 어려움 등이 사업추진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우스 다코타주 상원의원이 워싱턴 정가에서 동분서주하고 그 결과 래피드시티가 대통령의 여름휴가지로 선정되면서 러시모어 건립사업은 한층 활기를 띠게 됐다.

1927년 휴가차 래피드시티를 방문한 쿨리지 미국 대통령은 처음으로 러시모어를 ''국가적 성지''로 언급하고 연방 예산지원을 성사시켜 러시모어 조성사업에 힘을 실어줬다. 이때부터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산 정상에다 조각상을 새기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작업이었다. 보글럼 자신은 인생 최대의 역작을 남길 작정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그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고용돼 노동을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이었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기 전까지는 재정적 어려움도 커 인부들의 임금은 체불되기 일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마운트 러시모어의 절벽 사면에 인물들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보글럼이 산 위에다 옮겨 놓고 싶었던 꿈은 더 이상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는 말처럼 꿈이 보글럼의 머리 속에 들어 있을 때는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막상 산꼭대기에 대통령의 얼굴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보글럼은 14년을 새기고도 못다한 작업은 그의 아들 링컨의 몫으로 남겼다. 1941년 10월 31일 2대에 걸친 조각작업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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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막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 러시모어를 찾았지만 마침 억수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마운트 러시모어 정상의 대통령 조각상은 짙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전망대에서 한동안 기다렸지만 구름은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운트 러시모어가 주변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봉우리인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간간이 구름 사이로 조각상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전체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대통령길(presidential trail)이라고 이름 붙여진 트레일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데도 가이드 투어는 계속됐다. 레인저의 설명을 곁들인 가이드투어는 약 40여분 동안 진행됐다. 조각상 바로 아래 지점에서 투어가 끝날 무렵 세차게 내리던 소나기도 그쳤다. 불어오는 서풍에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러시모어가 완전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하늘 아래에 훤히 드러난 조각상을 보는 것보다는 좀 더 운치가 있다고 할까? 구름에 가려 언뜻언뜻 보이는 워싱턴과 링컨의 얼굴이 탁트인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생생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러시모어 산의 꼭대기 바위 절벽에는 4개의 대통령상이 나란히 새겨져 있고 그 아래 비탈면에서는 조각 당시 떨어져 나간 잔해(바위조각)가 수북이 쌓인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관광객들은 프레지덴셜 트레일을 따라 바위 조각상 바로 밑까지 접근할 수 있지만 정상까지 올라갈 수는 없다.

조각이 새겨진 바위산 앞으로는 커다란 원형극장이 하나 놓여 있고 극장에 연이어 링컨 보글럼 뮤지엄이 있다. 보글럼 뮤지엄의 옥상이 그랜드 뷰 테라스(전망대)이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정면으로 조각을 관람할 수 있다. 조각상에서 전망대까지는 직선거리로 600~700미터이다.

러시모어에 새겨진 대통령 상은 역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은 미국의 대표적 성지로 자리잡아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러시모어에서 비롯된 관광수입이 사우스 다코타주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돈 로빈슨의 기획의도는 150% 달성됐다.

오늘날 사우스 다코타주는 마운트 러시모어 스테이트(state)로 불리울 정도로 그 지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보글럼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군상을 조각해 낸 예술적 기교를 보여줬지만 주제의 선택에서 보여준 그의 혜안은 더욱 놀랍다. 돈 로빈슨의 요구대로 지역의 유명인사를 조각의 모델로 삼았다면 오늘날처럼 러시모어가 유명세를 타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국의 제국주의 통치에 맞서 독립을 쟁취해내고 새로운 국가체제를 만들어간 초기 미국 지도자들의 자취에는 단순한 미국의 역사란 범주를 넘어 비슷한 고난을 겪은 약소국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보편적 상징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간 대립으로 최대 위기에 처한 미국의 연방제를 지켜냄으로써 미국이 오늘날 세계 유일의 슈퍼 파워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고 노예제를 폐지해 인권신장에 절대적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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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보글럼의 예술적 자질은 러시모어 조각상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산꼭대기의 화강암 절벽에다 4명의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해내는 것은 보통 재간으로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조각작업이 다이너마이트 폭파를 통해 이뤄졌는데 자칫 잘못하면 조각품 전체를 망칠 위험이 있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허공에 매달린 채로 진행해야 하는 폭파 후 평탄작업은 더욱 어렵다. 얼굴 길이가 18미터, 눈이 3.3미터에 이르러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안경낀 모습은 멀리서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방식이 섬세하고 아이디어 또한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러시모어에는 또 한가지 볼거리가 있다. 조각가 보글럼에게는 보스턴 출신의 코자크 지올코브스키란(korczak ziolkowski) 조수가 있었다. 그 역시 러시모어 조각작업에 참여했었다. 그는 보글럼이 1948년 러시모어 대통령상 조각을 마친 7년 뒤 러시모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더헤드산(thunderhead mt)에서 크레이지 홀스 메모리얼(crazy horse) 건설에 착수했다.

크레이지 홀스는 수족 인디언의 추장 이름이다. 아마도 이 인디언 추장은 성난 말처럼 사납고 용맹스러웠을 것이다. 사물의 특징을 따서 이름을 짓는 인디언식 작명법은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늑대와 춤을 이후 한국에서도 한 때 유행했었다. 수족 ''스탠딩 베어''는 "조각상을 통해 백인들이 인디언에게도 위대한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라며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헌정할 거대 조각품을 산위에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코자크는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규모면에서 러시모어보다 10배는 더 큰 두상 조각에 들어갔지만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그의 여생 50년을 바치고도 아직 미완인 채로 남았다. 1982년 그가 작고한 뒤에는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 예술가의 50년에 걸친 작품활동도 보고 백인 위주의 미국 역사에서 그나마 약자 배려의 흔적이라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상징물이다.

러시모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베드랜드 국립공원이 있고 서쪽으로 2시간 거리에는 데블스 타워란 거대한 주상절리산이 있어 래피드시티 주변에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제법 있다. 사시사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멋들어진 사우스 다코타는 미국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이다. 바로 옆 와이오밍주의 옐로스톤까지 포함하면 환상적인 자동차 여행코스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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