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제주로서 외치고 소리쳐라!

[변상욱의 기자수첩] 고단한 제주의 삶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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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제주 강정을 두고 대통령이 해군기지 공사 강행을 밝혔다. 그런데 제주지사가 뒤늦게나마 공사를 중단하고 ''생각을 더 해보자''고 신중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하라는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 여론이 거부하면 어찌해야 하는 걸까? 헌법재판소로 가져갈 사안이다. 그전에 제주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제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제주가 해상 요충지라는 건 초등학생도 지도를 펴보면 다 안다. 태평양, 중국 상하이 베이징 ,일본 오사카 도쿄, 대만, 오키나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이 거의 한 눈에 들어온다.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딱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여건과 역사 속에서의 운명을 읽다보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땅이지만 우리 마음대로 못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 중국을 압도하거나 미국, 일본, 중국과 비슷하면 좋으련만 그 균형이 무너져 있다. 그래서 제주의 운명도 험하다. 제주를 ''바람 타는 변방의 섬''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바람 타는 섬, 제주 항쟁사


대륙을 정벌한 몽고는 1273년 고려를 강압적으로 복속시키고 저항하는 삼별초군을 제주에서 토벌한 뒤 눌러 앉았다. 제주는 그래서 고려 땅이 아닌 원나라 직할령이었다. 원나라로서는 중국 한족의 남송과 일본 정벌을 위해 말을 키우고 식량을 거두는 병참기지로 쓰기에 제격인 곳이 제주도였다. 원 나라 14대 국립목장 중 하나가 제주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서 제주도는 유배지였다. 가고 싶어도 못 가지만 가라면 안 갈 수 없고, 가면 못 나오는 섬이었다. 제주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던 200년 간은 출륙금지령도 있었다. 유배당해 갇힌 사람은 물론이고 제주도민 누구도 뭍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1930년대 들어서서는 일본이 제주를 군사요새로 만들었다. 중국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모슬포에 공군기지를 만들었다. 제주의 별명이 ''불침항모'', 침몰할 걱정이 없는 일본 제국주의의 항공모함이었다. 비행기를 띄우면 중국 상하이, 난징 등 주요도시를 폭격하고 쉽사리 돌아올 거리에 있으니 그랬다. duxms

1944년 전쟁 막바지엔 일본 본토가 위험해지자 제주를 포탄받이 방어기지로 만들며 또 다시 제주를 수탈하고 쥐어짰다. 그리고 4.3 항쟁이 벌어졌다. 조국의 분단을 놓고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내 나라 군대가 제주를 참혹한 학살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제주의 운명은 이러했다. 커다란 힘에 의해 쫓겨나다보면 마지막에 찾아 들어가는 막다른 골목이고, 권력에서 밀려나면 유배당해 머무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육지에 터를 잡은 중앙 권력의 시각에서 바라 본 것이지 제주입장에서는 다르다.

외세와 육지의 중앙 권력에 의해 시달리고 짓밟히고 상처만 입으며 굴욕적으로 연명해 온 것이다. 고려 때는 몽골 부대장이 왕이었다. 조선 때는 중앙조정이 내려 보낸 제주목사가 왕이고, 일제 강점기에는 총독부가 보낸 제주도사가 왕이었다. 온갖 횡포를 부려도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무릎 꿇고 빌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참다 참다 제주에서 터지면 사태가 커진다.

고려 때는 몽골에 저항하는 삼별초군을 선택해 죽기까지 몽골에 저항했다. 1898년 3월에 벌어진 조선 조정의 수탈과 폭정에 항거한 방성칠란도 있고 그로부터 3년 뒤에 대한제국의 봉건적 지배와 탄압에 저항한 이재수란도 있다. 일제 강점기의 해녀들은 일본총독부를 상대로 파업투쟁도 벌였다. 그리고 4.3 항쟁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제주 항쟁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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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는 제주일 뿐 닥치고 자치!

이제 제주는 대한민국 해군의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폭파와 해군기지 건설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몽골, 일본에 이어 제주를 군사기지로 사용할 군대는 과연 우리 해군뿐일까라는 물음에 직면해 있다.

제주는 ''''특별자치도''''이다. 제주는 제주로서 21세기를 헤쳐 나가라고 특별법을 만들었다.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인지 제주도민의 선택하고 중앙 정부는 존중해 줘야 한다.

제주 지방정부와 지역 정치권은 역사의식과 비전을 확실히 해 움직여야 한다. 해군기지 결정과정에서 보여 준 엉터리 편법 여론조사나 주민 설명회, 국제브로커에게 꼴깍 속아 넘어가서 7대경관하면 대박 터진다고 전화비, 홍보비 수백억 날리는 꼴로는 자치도로 살아남기 어렵다.

제주를 함부로 내돌리는 중앙 정부도 못마땅하지만 제주 지역정치권도 영 미덥지 못하다. 이미 제주도 땅의 절반 가까이가 외지인 소유인 것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포르투갈 마데이라 섬을 모델로 해서 구상한 것이다. 1976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해 포르투갈이되 포르투갈이 아닌 1국가 2체제로 존재하는 국제자유무역지대이다. 지금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맞먹게 번창한 섬이다. 물론 해군기지 같은 건 없다.

스페인 마조르카 섬 역시 1년 관광객 600만 명, 80%가 외국관광객이다. (제주도의 목표는 해외 관광객 200만 명). 역시 1국가 2체제에 가까운 자치권을 인정받은 평화의 섬이다.

노르웨이 스피츠베르겐 섬은 북극환경의 보존을 위해 1920년 주변국가들이 국제협약을 체결해 비무장, 비군사지역으로 인정한 뒤 각국에 의해 보호받는 노르웨이 영토이다.

반면에 오키나와, 괌, 필리핀 수빅, 하와이 등 태평양의 섬과 항구들은 모두 군사기지가 들어 선 뒤 피폐해지고 공동체는 깨졌다.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초기에 건설과 주둔군 소비로 경기부양이 가능할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각종 군사 규제에 묶이거나 군사지역의 이미지가 강해지며 저성장으로 기운다는 분석이다.

유럽지역 섬과 태평양 섬들의 운명이 이리 달라 진 것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유럽 스타일과 초강국으로 군림한 미국 스타일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국가안보가 최고라고 여기는 애국심은 좋지만 과다한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고 제주에 해군기지가 없으면 강대국들 사이에서 졸이 된다는 식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그렇게 따지면 경찰만으로 100년을 버티어 온 홍콩이나 강대국들 한복판에 자리 잡은 영세중립국 스위스는 뭐라 설명할 건가? 안보는 해군기지 하나 더 생긴다고 좌우되는 게 아니다.

21세기 통일 시대의 제주도가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며 어느 길을 택할 지 결정을 내리려면 제주도민의 오랜 토론과 궁리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뭐라 하건 제주도민은 제주도민으로 결정하고 살아가면 된다. 제주특별자치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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