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허리 휘게 만드는 옷이라고 문제가 된 <노스페이스> 점퍼가 청소년들한테서 외면당하기 시작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 학생들은 그동안 학교에서 자신의 ''계급''을 올리기 위해서나 왕따를 당할까 봐 걱정돼 노스페이스를 입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워서'', ''유행이 지나서'', ''개성있게 보이려고'', ''일진이 두려워'' 등의 다양한 이유로 노스페이스를 입지 않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 학교폭력을 일삼는 일진들의 표적이 될까 두렵기도 하고, 노스페이스가 일진들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해 입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 ''노스페이스 논란'' 차라리 반갑다
서울YMCA는 이 문제와 관련해 노스페이스가 정상적인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파는 전략을 써왔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옷장사가 무슨 죄가 있냐, 어차피 아이들이 노스페이스가 지루해졌으면 다른 옷이나 신발 등으로 옮겨 갈 텐데 그럼 그 브랜드 기업들도 처벌해야 하냐''며 의문도 제기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이번 기회에 함께 따지고 토론하며 논의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청소년들이 같은 옷을 입은 집단 속에 들어가 동질감을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욕구이다. 비싸서 못 갖는 아이, 갖고 싶어 빼앗는 아이, 빼앗는 폭력행위에 중독되는 아이들... 모두 다 하지 말라고 해서 없어지는 행위들이 아니다. 본능이고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오는 일탈이다.
그런데 실제로 입어보니 별 의미도 없고 값어치보다 훨씬 비싼 댓가를 치르며 돈만 낭비했음을 아이들이 알아차리는 것만 해도 큰 교육적 효과라고 본다. 아이들이 자신의 주체성과 독립성, 자기들안의 계급과 차별, 터무니없는 폭력성에 대해 눈 뜨는 것만 해도 좋은 교육이다. 이런 걸 언제 또 가르치겠는가.
1989년 5월, 미국 매릴랜드 지역에 사는 15살의 마이클 유진 토마스. 할머니가 모 브랜드 운동화를 학교에 신고가지 말라 했지만 신고 갔다가 목이 졸린 채 숨졌다. 범인은 함께 농구를 하던 17살의 친구였다.
이 사건이 발생한 한 달 전에도 미국 휴스턴에서 16살 죠니 베이트란 고교생이 총에 맞아 숨졌다. 농구화를 벗으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시카고에서는 스티브 테렛이란 17살 고교생이 밤 9시에 여자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밤 10시 30분 등에 총을 맞은 채로 발견됐다. 숨지기 전 남긴 말은 10대 두 명이 신발을 빼앗으려 자신을 쏘았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사준 110 달러짜리 나이키 농구화가 문제였다.
1985년부터 미국에서 벌어진 나이키 농구화에 연관된 살인 사건들의 행렬은 이렇게 번져 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스니커즈 신발과 그 때 그 때 유행하는 자켓 때문에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옷과 운동화가 갖고 싶은데 비싸 살 수가 없어 친구나 또래를 살해하고 빼앗으려 했다? 그것만은 아니다. 그 운동화가 상징하는 정체성도 문제이다. 그 물건, 그 브랜드가 집단적인 의식과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홍보매체와 언론이 이를 전파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아이들이나 쇼핑 중독자가 백화점을 뱅뱅 돌고 있는 건 신발과 핸드백, 멋진 점퍼를 찾기 위해 배회하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에 빠진 채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광고 대행사의 이사인 더글라스 애트킨은 이를 가리켜 "브랜드는 이제 새로운 종교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물건에 지위나 상징을 부여하고 떠받드는 것은 위험하고 타락에 이르는 길이란 경고이다.
◇ 교회, 브랜드를 넘고 진리를 넘어라
그렇다면 이야기를 뒤집어 보자. 브랜드가 종교가 되어 버렸다. 그것처럼 혹시 종교는 브랜드가 되어 버리진 않았는가? 요란한 크리스마스, 왁자지껄한 성지순례, 커다란 대형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펼치는 찬양과 경배 콘서트, 멋진 교회 건축... 그 엄청난 비용과 소비가 신앙에 꼭 필요한가?
유대교에서는 ''할례''가 브랜드였다. 사도바울 고린도전서 7장에서 "그거 받아도 아무것도 아니요, 받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니다".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과 신앙적 영성을 겉치장 상품이나 표식에 묶어 두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가톨릭 성인 파코미우스에 대해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이집트 출신인 파코미우스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북아프리카군 보병대에 있을 때 그리스도교를 접했다. 314년경 제대하자마자 기도 생활을 하다 공동체 수도원 운동을 창시했다."
파코미우스는 이집트에서 가난하게 농사지으며 살던 농부였다. 강제로 로마 군대에 징집돼 짐승처럼 전쟁터를 끌려 다니다 굶어 죽을 뻔 했다. 그래도 죽을 만하면 ''어떤 사람들''이 와서 먹을 것을 주고 입혀주고 해서 살아남았다.
"저 사람들이 누굽니까?"
- 기독교인들이야.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 예수를 섬기고 따르는 사람들인데 주위 모든 사람을 형제로 대하고 가족처럼 보살피지.
그 때 파코미우스는 ''난 풀려나면 무조건 기독교인이 될 거야''라고 결심한다. 요즘 누구에게 ''기독교인이 뭐하는 사람들이야?''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뭐라고 설명할까?
지난 14일 서울 신촌 아름다운교회에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초대한 가운데 젊은 언론인과 청년들을 위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손봉호 교수는 "지금 사람들에게 한국 개신교 교회는 돈과 명예, 권력 있는 자를 위한 교회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국 교회가 욕먹는 이유는 돈 있고 명예와 권력 있는 자에게 아첨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세속적인 것들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이런 약점을 보완해줘야 한다. 특히 돈은 모든 가치 중에서 최하위이다. 교회가 돈에 매달리는 모습으로 사회에 비치는 것을 신사참배보다 더 부끄러운 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젊은이들이 돈을 좀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젊은이들이 돈, 명예,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정직해지고 공정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종교는 진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진리 그 너머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브랜드에 매달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