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14년 3개월 만에 간판을 바꿔 달았다. 새로움의 ''새'', 나라를 가리키는 또 다른 우리말 ''누리''를 합쳐 ''새누리당''이다.
한자어로 정확히 옮기면 ''신천지(新天地)''이다. 옛날엔 많이 쓰던 어휘이다. 기미독립선언서에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가져다 쓰고 그 폐해가 심해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신세계'' 이건 백화점이 쓰니 곤란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한자어를 꺼내다 보니 ''신한국''이 되어 버린다. 엇 ''신한국당''? 어쩌다 뒤로 갔는고?
''새누리''는 좋은 말이다. 여기저기서 많이 쓰고도 있다. ''새누리''는 2011년 정부가 보급한 벼의 품종 중 하나이다. 삼광, 황금누리, 새누리 등. ''새누리''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기독교 민주화운동권에서 펴낸 주간신문의 이름이 ''새누리신문''이었다. 온 누리에 정의와 평화, 사랑이 실현되는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염원을 담아 ''새누리''로 이름 지었다. 부디 ''새누리 당''이 온 누리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 차도록 이름대로 힘써 주기를 당부한다.
◇ 이름은 간판이 아니다
정치에서 이름은 그냥 이름이 아니고 집권당의 이름도 그냥 간판이 아니다. 국정 운영의 철학과 방향, 비전이 담긴다. 이름이 쩨쩨하면 안 되고 광대해야 한다. 치밀하게 이것저것 고려하면서도 명확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 공화, 진보, 자유... 이런 단어들이 많이 쓰인다.
정부도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 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지금 정부는 이름이 없다. 실용정부로 한다고 하더니 그럴 것 없이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니까 ''이명박 정부''라고 부르기로 하고 대충 그렇게 불러왔다. 좋은 이름은 아니다. OOO사무실, OOO회사... 자칫 소유개념으로 들리기 쉬운 작명이다.
군사정권은 따로 이름이 필요 없다. 어차피 사관학교 기수와 계급이 중요하니 숫자로 부른다. 3공 4공 5공 6공... 그런데 4공화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이라는 새로운 통치철학을 내세우면서 4공이라 안 부르고 ''유신(維新)공화국''이라 부른다. 영구집권을 꿈꾸는 게 무슨 공화국이냐 해서 그냥 유신정권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다시 군사정권이 시작되며 5공 6공으로 불렀다.
유신 정권에서 만들어진 집권 여당이 이름도 가물가물한 유정회.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이다. 제4공화국 아래에서 대통령의 지명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구성한 준정당 성격의 원내교섭단체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자민련( 자유민주연합)도 사라졌다. 그저 권력을 쫓아 권력자가 집합시킨 정당, 간판만 그럴 듯하게 내걸고 실천하지 않는 정당은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정치사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정명(正明)을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한 제자가 공자에게 ''국가통치에서 이름을 바로 하는 걸 최우선 순위로 놓는다 하시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아닙니까?'' 라고 묻는 제자에게 이르기를, "이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물론 여기서 이름은 간판은 아니다. 직분과 명분을 이야기한다. 이를 명실일치(名實一致)라고도 하니 이념과 실제가 따로 떨어진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이다.
나라를 통치함에 있어 정권의 정체성도 중요하고 정책의 구체성도 중요한데 정치는 그 둘 - 표상과 실천을 하나로 통합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이름에서 정체성과 구체성의 표현이 ''문민'' ''국민'' ''참여''에서 갑자기 ''이명박''이라 지었으니 아니다 싶은 것이다.
명실일치 - 이름과 철학과 실천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올바른 도(道)가 아니고 도(道)를 따르지 않으면 무궁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리라.
노자도 이를 이야기 한다.
物壯卽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물장즉노, 시위부도. 부도조이)
"무엇이든 억지로 키우면 이는 올바른 도(道)가 아니니 별 수 없이 곧 시들게 되나니라" 라는 뜻이다. 새로 시작하는 ''새누리당'', 국민이 놀랄 만큼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워져야 하는 법, 아니면 부도조이(不道早已)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