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하청단가로 지역 골재회사들 줄줄이 도산…가정도 파탄나
건설기계 페이로더(사진)를 20년간 운전하면서 대구에서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의 가정을 이끌던 가장이 하루아침에 ''만화방 낙오자''가 된 사연은 3년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낙동강의 모래를 퍼 레미콘 회사로 납품하는 골재회사였다. 30년이 넘은 회사였지만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폐업했다. 4대강 원청회사들이 일제히 하청단가를 너무 낮게 책정하면서 하청인 지역 골재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A씨가 동료 직원 6명과 함께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게 된 것도 그 때였다. 특히 4대강 사업의 준설작업은 포크레인으로 강바닥의 모래를 파는 식이라 준설선과 페이로더로 이용하는 기존 방식과는 달랐다.
어느 누구보다 오랜 기간 낙동강 모래를 준설해온 낙동강 전문가이자 준설 전문가임에도 그는 낙동강 준설 현장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경기도 좋지 않은 까닭에 페이로더를 굴릴 다른 건설 현장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집에 돈을 가져다주지 못하던 그 때부터 아내와 사이에 대화가 끊기기 시작했다.
''''여자는 돈 없이는 살아도 남자는 호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옛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심더.''''
이혼 도장은 찍었으나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딸은 다행히 A씨의 차지가 됐다. 두 딸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던 다짐은 그러나 곧 물거품이 됐다. 일을 하다 보니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이 결국 아이들에게 해가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아이들을 이혼한 아내에게 다시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양육비까지 보태고 나니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자리를 잡은 게 지금의 만화방이라고 한다.
"찜질방이나 24시간 싸우나 같은 곳은 7천 원에서 만 원 사이인데 그나마 5천 원으로 하루를 날 수 있다는 게..."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4대강'' 애초에 잘못 된 사업…원 상태로 돌려놓고파
직장을 잃은 지 3년이 지나 이제는 신경이 무뎌질 때도 됐건만 그는 아직도 때때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원망스럽냐는 물음에 그는 숨넘어가듯 따져 물었다.
"20년간 세금을 한번도 안 빼먹고 꼬박꼬박 내온 모범 국민입니다. 이런 국민을 보살펴주는 게 국가의 몫이 아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멀쩡한 회사를 하루아침에 문 닫게 할 수가 있습니까? 국가가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지, 그 많은 회사를 하루아침에 문 닫으라카믄 그 근로자는 어디가서 일하고, 그 가족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깁니까? 그런 무책임한 국가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특히 낙동강에서 20년을 보낸 낙동강 전문가로서 4대강 사업이 ''씰데없는'' 사업이라는 것도 그를 더욱 참담하게 만든다고 했다.
"물은 가둬놓으면 썩습니데이. 낙동강 다니다 보면 물이 정체돼 있는 곳은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란데 와 본류부터 손댑니까. 지류부터 손대야지. 금호강도 한번 보십쇼. 시커멓게 다 썩은 물이 낙동강 본류로 들어가는데. 와 지류는 놔두고 본류만 손댑니까? 말도 안되는 깁니더. 지류에서 날마다 썩은 물이 들어오는데. 그라고 성주 참외밭도 가서 보이소. 밭보다 강 수위가 더 높아요. 논이 어이 되겠습니까? 보도 그래요. 금이 가는 기 당연한깁니더. 물이 그 만큼 힘이 쎄다니까..."
그의 격정적인 토로는 계속됐다.
"이 사업이 정당한 사업이라면 내가 해고 되도 말 안합니다. 국가를 위한다면 개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아입니까. 그러나 이건 정당한 사업이 아닙니다. 이게 누구를 위한 깁니까. 이건 아입니데이. 그래서 더 괘씸합니다. 이 사업은 애초부터 잘못된 사업이니까 그래서 더 억울한 깁니다. 4대강 사업을 해가 다 좋아지면 나도 반대 안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거든요."
그는 지난 1년간 동료 골재원들과 함께 청와대로, 국민권익위로, 국토해양부로 이야기를 할 만한 곳이면 어디든 인터넷으로 탄원하거나 직접 방문해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는 원망스럽지도 않습니다. 마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누구 한명 우리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 없더이더. 돈 없고 힘없는 게 죄지. 국가에서 기다려 보라고 해가 몇 년이고 기다렸는데, 또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제는 하도 속아가 더 이상 안 믿습니다."
대구시에는 31개에 이르던 낙동강 골재회사들이 3년전 일시에 폐업하면서 그 회사에 소속돼 있던 골재원 수 백 명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A씨처럼 가정파탄을 겪었다고 한다. 모두가 국가와의 싸움을 모두 포기해도 A씨 자신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것이 곧 그의 자녀들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4대강을 후손 대대에 물러준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후손을 생각하면 4대강이 잘 되기를 바라야겠지만 4대강은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깁니더. 그런 물을 가지고 장난치면 큰 재앙입니데이. 그 재앙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를 폭파 하고 원 상태로 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제 심정입니더."
그는 오늘 밤에도 가족이 있는 집 대신 만화방에 간다. 그 곳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때론 만화책을 들춰보기도 한다. 거기에는 행복한 가정이야기도, 효도하는 아들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실패한 가장이요 천하의 불효자식이다.
"최근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뇌가 반이 죽어가. 저 때문에 신경써가 그렇게 된 거 겠지요. 아들이 그렇게 됐는데 부모 마음이 어땠겠어요. 저번 추석 때 집에도 못갔습니다. 동네에서 어슬렁 거렸지요. 내일이라도 빨리 직업을 가지고 싶습니다. 어머니 병원비라도 보태드려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거 같습니다." 그의 눈시울이 끝내 불거지고 말았다.
만화방으로 걸어 올라가던 그의 굽은등 위로 대구 달서구의 가로등 불빛이 12월 맹추위에 홀로 나부끼고 있었다.
4대강 사업 고용창출 효과...34만개? 4천개? 마이너스? |
4대강 사업은 소위 ''''MB노믹스''''라는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역점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을 통해 34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침체된 실물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올해 고용노동부는 4대강 사업으로 2009~2010년간 8만 8,4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야말로 하루일당을 받고 잔심부름을 한 농촌 촌로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경북 상주시 중동면의 김 모씨는 "하루에 7~8만원 받고 동네 노인들 수 십명이 몇 일간 허드렛일을 했다. 농한기 때 용돈 벌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 역시 일일작업자 현황에 집계된 것은 물론이다. 결국 하루 일한 날품까지도 고용으로 둔갑한 것이다. 특히 4대강이 창출한 신규 일자리에는 A씨처럼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전국 1,800 명에 이르는 골재 노동자 숫자는 고려되지도 않았다. 야당은 4대강 참여 근로자들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숫자를 근거로 4대강 사업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근로자 숫자가 4,000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른 통계를 보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 든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펴낸 ''''이명박 정부 4년 경제분야 예산 평가''''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 집권 이전인 2007년 2분기 건설업 종사자는 193만 명이었지만 2010년 2분기에는 182만 명으로, 다시 2011년 2분기 때는 177만 명으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한국판 녹색뉴딜 정책이라는 4대강 사업을 통해 대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MB노믹스의 포부는 헛구호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김병권 부원장은 ''''4대강 사업은 성장률 제고 측면이나 고용창출 측면에서 경제위기 타개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며 특히 ''''전체 예산의 58%가 낙동강에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지역경제 발전에 고르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4대강 입찰에 참여한 대형 건설사들의 매출과 이익률 제고에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