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악하게 이용하는 건 ''그냥 악(惡)이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소크라테스와 정봉주, 그리고 조선일보와 강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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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 소크라테스 가라사대 ''악법도 법''?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는 정확히는 . 이는 1,800년 전 쯤 활약했던 로마의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의 저술집에 나오는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 - 이것은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기록된 법이다"라는 구절을 줄여 쓴 말이다.

문제는 이 말을 소크라테스가 인용해 썼느냐이다. 고대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는데 모아지고 있다. 사형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에게 주위 사람들이 아테네를 탈출해 목숨을 이어가라고 하자 크리톤에게 ''악법도 법이다''라며 법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인데 이런 대목은 문헌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철학적 신념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고 해도 자신은 그런 제안을 거부하고 신의 명령대로 철학을 계속 궁구해 나가겠노라''고 이미 선언한 마당에 법 집행을 앞두고 탈출이란 가당치 않다는 뜻을 밝힌 것이 전부라는 것.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전한 두 개의 책, <변명>과〈크리톤>의 내용이 차이가 있다.

<변명>의 소크라테스는 비판과 저항의 강한 모습을 보이고 <크리톤>에서는 ''죽으라면 죽어야지 어쩌겠나''는 식의 유약하고 감성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쨌거나 불의에 대항할지라도 불의한 방식으로 대항해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정의론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다.

-[참조] 소크라테스와 "악법"-고려대 철학과 권창은 교수>,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정의와 준법-서강대 정치학과 강정인 교수>, <번역의 빈곤이 낳은 비극적 해프닝-한국기술교육대 서양고전철학자 김주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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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법도 법''이라고 누가 퍼뜨렸을까?

''악법도 법이다''란 말과 소크라테스를 연관 지은 최초의 인물은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라는 일본의 법철학자로서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있던 학자이다. 그는 자신의 법철학 책에서 "惡法(악법)도 法(법)이기 때문에 一應(일응) 지켜야 하며 惡法(악법)이라는 것을 國民(국민)에게 널리 弘報(홍보)하여 正當(정당)한 立法節次(입법절차)에 따라서 그 惡法(악법)을 改正(개정)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를 언급하며 "그는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할 시민의 의무이고, 선량한 시민이 나쁜 법에 복종하는 것은 나쁜 시민이 좋은 법을 배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테네의 감옥에서 순순히 독배를 받았다"라고 적었다.

''악법도 법이다''! 이 짤막한 명제를 직접 언급하며 널리 쓴 것은 1960년대 이후로 보인다. 1973년 9월 25일자 <조선일보>에는 "...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사가 그런 말을 했고, 대학생들도 종종 그런 답을 적는데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다"라고 밝힌 칼럼이 있다.

그런데 1980년 2월 4일자 같은 <조선일보>에는 "누가 뭐래도 법은 법이다. 없다면 몰라도 기왕에 있는 법을 어길 수야 없지 않겠는가. 악법도 법이라던''소크라테스''의 교훈도 있다"라는 내용도 등장한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1989년에 나온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연구문제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 주제에서 공부한 바에 비추어 토론해 보자"란 문제를 실어 ''악법도 법이다''를 소크라테스에 확정적으로 연결 지어 기록하고 있다. 결국 1960년 대 이후 언론과 학교 교육과정에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오해가 번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1980년 5공 군부정권 이후에 부쩍 많이 쓰이기 시작해 일반화 되었다는 분석이다.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는 소크라테스가 그 말을 했다는 명확한 고증에도 기초하지 않은 채 정확한 법철학적 해석도 없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고, 권력자들이 국민의식을 ''노예화''하는 데 이용됐다는 비판과 반성은 일찌감치 제기된 문제이다.

2004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헌법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찾아 대한민국 교육인적자원부에 수정을 요청했다. 이때 일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등장하던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고 독약을 먹었다는 내용은 준법사례로서 적절치 않다고 지적해 이후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 이 사례를 준법정신과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과거 권위주의정권 때는 헌법을 여러 가지 법 중 하나로 대접했고 ''국민의 기본권''을 공동체를 위해 양보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다. 이 때문에 교육이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준법정신이 잘못 기술되고 강조됐다"고 설명했다.

◇ <악법은 법>인가?

현대 법이론으로는 법관이라고 해서 악법이라고 주장되는 법률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악법이라 문제가 된 법은 법률을 해석하고 운용할 때 잘 판단해 교정해야 하고 위헌제청을 통해 법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되어있기도 하다.

다만 ''정봉주 의원에 대한 판결''은 관련된 법이 악법이어서 문제가 된 게 아니다. 법의 운용과 제출된 증거의 해석판단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본다. 국가최고지도자를 선출함에 있어 후보에게 심각한 도덕적 흠결의 의혹이 있다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공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 증빙의 확보가 부족하다 해도 정황적으로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면 이를 판결과 양형에서 참작해야 한다. 이러지 못했다는 문제제기와 공방은 법률심인 대법원 이전에 검찰의 수사와 구형, 1심, 2심 공판 과정에서 보다 치열하게 이뤄졌어야 하나 민주당도 언론도 크게 미흡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악법도 법이냐>를 따지고 있는 건 ''집단 모욕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강용석 의원이다. 자신에게 적용된 ''집단 모욕죄''라는 것이 터무니없다며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로 개그맨을 고소했다. 나한테 유죄라면 이 사람한테도 유죄를 줘야 한다, 라는 식으로 남을 끌고 들어가며 재판부에 저항하거나 재판부를 비웃고자 한 것이다. 악법이 법이냐는 차치하고 법을 악하게 이용하는 것은 ''악(惡)''임이 분명하다.

법은 국가와 국민의 공적인 약속이다. 국민이 준법의 의무를 받아들이듯이 국가는 법을 바르게 만들어 바르게 운용할 책임을 갖는다. 그러나 법이 공의를 위해 힘쓴 사람을 처벌하고 권력의 지배 아래 놓인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이 정치에 휘둘린다는 소리를 듣고 법이 악법이라 비난 받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민주 공화국의 평화와 자유가 법의 통찰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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