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비상종은 깨진 종, 이름은 ''엄이도 종!''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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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올해의 사자성어로 ''''귀 막고 종 훔치기 - 엄이도종(掩耳盜鐘)''''이 발표됐다. 소통도 안 되고 염치와 도덕성마저 상실한 정치 행태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고 선정이유를 설명한다. 자기 귀를 틀어막아 모든 비판과 충고를 멀리한 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걱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지난 정부의 정책기조와 추진내용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일괄 부정하는 태도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난 문민정권의 정책기조를 계승해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우이독경''''이 되고 말았다.

◈ ABKR…김대중·노무현만 아니면 된다고?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ABKR로 밀고 나간 것이다. 이것은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의 ABC에서 비롯된 풍자로 는 조지 부시의 막무가내 정책을 빗대는 말이다.


거기에서 비롯된 ABKR은 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집권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몰아가는 보수언론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과거와 달리하는 것이 정책기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권을 잃었다 되찾았다 하는 것은 정당과 정치꾼들 사이에서 따지는 것이지 국가와 국가정책을 잃었다 되찾은 것처럼 여기면 곤란하다.

대표적인 분야가 남북관계와 주변국 외교이다. 남북관계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 각각 마련된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이 존재하고 있다. 불신과 대결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선언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그 두 개의 선언을 제쳐 놓고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에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가 가장 중요한 남북합의라며 꺼내들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6.15남북공동선언, 10.4남북정상선언보다 오히려 뒤쳐져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전제로 해 마련된 아주 기초적인 합의이다.

그 이후의 6.15와 10.4 공동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해 획기적인 전환으로 남북문제를 풀어가자는 실천적 합의를 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건넸다는 말 ''''우리가 얼마나 더 살겠나, 곧 떠날 것 아닌가. 민족을 위해 제대로 좋은 일 하자''''고 하면서 만든 것이니 기본합의보다 더 앞서나간 내용이다.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을 거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왔는데 갑자기 뒤로 가 노태우 정부 때 것을 꺼내들었고 그나마 연평도 포격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후퇴해도 한참을 후퇴한 셈이다.

외교안보통일 부처들은 정권 4 대를 뒤로 거슬러 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추느라 갈팡질팡하며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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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의 정상간 통화…안하나, 못하나, 따돌리나?

또 노무현 정부가 다자간 외교 구축에 힘쓰느라 미국하고 멀어졌다며 서둘러 한미동맹 복원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지정학적 여건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당장 중국이 상당히 언짢아하며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정부도 이를 풀려고 서둘러 한중정상회담을 갖고 분위기를 풀어갔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승격시키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도 내놨다.

그러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이번 김정일 위원장 사망 때 부실이 드러났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주변 4강(强) 가운데 미국, 러시아, 일본 정상과는 전화통화를 했으나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는 통화를 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19일 오후 2시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오후 2시50분 일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와 오후 4시30분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하고만 통화했다. 오늘(21일)까지도 통화했다는 소식이 없다.

이에 대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답변은 이렇다. ''''상호 체제가 달라서 그런 것으로 본다. 중국과는 협의하고 있으며 한중간에 해외 전화통화는 익숙하지 않아 그 문제를 계속 협의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 와 일하는 조선족 동포들도 매일 저녁 중국의 가족과 휴대폰 통화를 한다. 국가 원수와 정부 간의 긴급전화가 체제와 시스템이 다를 게 뭐 있나. 국가 정상 간 전화통화가 두 나라간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고 일정을 조정해야 성사된다는 건 안다.

그동안도 중국과의 긴급한 통화가 이뤄져 왔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정국과 관련해 긴급한 사건이 터지자 통화를 못하는 건 앞으로도 한국과 북한을 놓고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며 우리를 어떻게 따돌릴 건지 짐작케 한다. 한중간 정상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통화가 이 모양인 건 중국 외교에서 말만 화려했지 속은 허당 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예측불가능한 국제 정세와 북한의 격변을 놓고 중국과의 협력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상당히 걱정스럽다.

◈ 궁극의 해법은 깨어 있는 국민과 민주주의

그동안 늘 지적돼 온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전략과 전략컨트롤 타워 내지는 코디네이터가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다시 부각되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어느 경로로 알았냐고 물으니 국방장관은 ''''뉴스 보도 보고 알았다'''', ''''국정원장은 북한이 발표해 알았다'''', ''''통일부장관은 정보사안이라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은 사망 당일 알았다는 소식이다.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이라도 알려줘야 전략적 동반협력 아닌가? 북한이 철저히 숨기고 중국이 야박하게 굴었다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렇지 못하다.

최근 방한했던 시카고 대 국제정치학과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지적이 생각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지정학적 환경에 살고 있다. 국민 모두가 영리하게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나라가 가진 궁극의 힘은 국민의 단결과 신뢰, 자유와 민주주의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의 전략적 사고와 선택을 정부와 정치권이 가로 막아선 안 된다. 국민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구태도 국민의 충고와 여론에 귀를 막아버리는 불통도 새해엔 제발 털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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