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럭키펀치? 지도한 훈련의 결과물
"스트레이트 카운터가 상대 턱에 정확하게 걸렸어요. 손에 느낌이 아직 남아있어요. 눈 감으면 그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떠올라요." 상대 호미닉은 ''톱5'' 강자였다. 시합 전 정찬성의 승리를 점치는 이는 드물었다. 정찬성도 "(상대는)센 놈이었다. 이렇게 빨리 끝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주변의 평가는 개의치 않았다. 대신 시합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준비를 정말 많이 했어요. 종합격투기는 시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웠죠." 컨디션도 최고였다. 지금까지 치른 시합 중 감량이 가장 수월했다.
비결은 처음 시도한 ''물 다이어트''. "계체량 6주 전 물 6리터, 10일 전에는 물 10리터를 마시다가 계체량 이틀 전쯤 물 섭취를 중단하는 방식이에요." 리바운드(계체량 후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해 체중을 회복하는 것)도 잘 이뤄져 힘의 손실이 없었다.
''혹시 준비한 걸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몸으로 체득한 기술은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 준비한 걸 다 써도 질 수 있는데 7초 만에 KO로 이겼으니까 아쉽지 않다"고 했다. 정찬성의 펀치는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 지독한 훈련의 결과물이었다.
◈ 야유에 오기 발동…캐나다 격투기문화 부러워
지난 11일(한국시각) ''UFC 140''이 열린 캐나다는 호미닉의 홈이었다. 정찬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의 야유가 쏟아졌다. "현지 분위기는 최악이었어요. 야유가 엄청났어요." 그러나 그는 위축되지 않았다. 되레 오기가 발동했다. "(그런 상황이)투지를 자극했어요. ''두고보자'' 마음먹었죠."
정찬성은 이미 야유받는 상황에 익숙했다. "일본, 미국에서 시합할 때 저는 늘 ''적''이었으니까요. 야유를 받으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져요." 그러면서 그는 "상대가 캐나다 선수라서 그렇지 내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시합 때를 빼곤 어딜가나 사인공세에 시달렸다"고 웃었다.
캐나다에서 UFC는 아이스하키와 함께 최고 인기 스포츠로 꼽힌다. 입장권은 수 십만원을 호가하지만 관중석이 꽉 들어찬다. 관중석에서는 여성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만큼 대중화되어 있다. "시합 2~3일 전에 호텔 로비에 가면 모자 푹 쓰고 나가도 금방 알아보고 몰려들어요. 시합 때는 야유하다가도 끝나면 제 사진을 프린트해갖고 와서 사인해달라고 했죠. 정말 행복했어요."
야유 뿐만 아니다. 정찬성은 이제 종합격투기 자체를 즐길 줄 안다. 차곡차곡 쌓은 실전경험이 가져다준 깨달음이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격투기를 안했다면 뭘 할 수 있었을까''. 제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돈도 벌고 인기도 얻고 TV에도 나오고…. 며칠 전 공중파 뉴스 탔을 때는 감회가 남달랐어요.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챔피언이요? 아직 멀었어요." 정찬성은 지난 3월 UFC 데뷔전에서 레오나르드 가르시아(미국)를 트위스터로 꺾었다. UFC 역사상 최초였다. 이번에는 호미닉을 상대로 ''7초 드라마''를 연출했다. 주변에서 ''다음 시합은 챔피언전 아니냐''는 얘기가 솔솔 나왔다.
잔뜩 들떠있을 법 하건만 그는 차분했다. "UFC는 만만한 상대가 없어요. 물론 챔피언이 되면 좋지만 욕심은 안 부릴 거에요. 한 게임, 한 게임 차분하게 풀어나가다 보면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생각해요."
현 페더급 챔피언 호세 알도(25, 브라질)는 타 체급 챔피언 존 존스, 앤더슨 실바, GSP와 함께 UFC에서 절대강자로 손꼽힌다. 특히 타격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내년 3~4월경, 랭킹 10위내 선수와 싸워서 이긴다면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시합 후 UFC 데이나 화이트 회장은 그에게 "(정찬성은)라이트헤비급 챔프 존 존스의 길을 걷고 있다. 빠른 시일 내 시합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존 존스는 2010년 3월부터 3개월에 한 번 꼴로 시합을 치렀다. 그러나 정찬성은 "동양인 파이터가 시합간격을 존스처럼 짧게 가져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동양인 선수는 시차, 음식 등 현지적응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서양인 선수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UFC에서 상대적으로 동양인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은 데는 이런 부분도 작용했다고 봐요." 그러면서도 그는 동양인 최초의 UFC 챔피언 등극이라는 꿈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잘해서 전체 동양인 파이터에 대한 UFC의 대우가 지금보다 좋아진다면 금상첨화겠죠?"
옥타곤 위의 정찬성은 흡사 먹이를 쫓는 치타를 연상시킨다. 매섭다. 날카롭다. 하지만 평상시 그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전혀 ''파이터''같지 않다. 조근조근한 말투에 순박한 미소까지. 순둥이 이미지가 물씬한 부드러운 남자다.
"저는 노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성격도 불같지 않아요. 여성 분들이 ''격투기 선수는 터프하고 무섭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저로 인해 그런 편견이 깨졌으면 좋겠어요."
"강하다는 건 옥타곤 위에서 증명하면 된다"는 게 그의 설명. "시합장 밖에서까지 남성다움을 과시할 필요는 없죠. 저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있잖아요. 좋은 경기를 치른 후 승리의 기쁨을 팬들과 공유할 때 얼마나 보람있는지 몰라요."
정찬성 시합이 국내에서 TV로 생중계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녹화방송 100번 보다 생중계 1번이 파급효과가 더 큰 것 같다. 아직 국내에는 스폰서가 없는데 언제든 연락달라"고 웃었다. ''혹시 찍고 싶은 CF가 있으냐''고 물었더니 "끼가 없다"면서도 "어떤 거라도 좋다. 7초 만에 이겼으니까 LTE CF도 괜찮을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