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저는 펀드 매니저와 선약이 있습니다"
매년 1월과 7월이면 일부 언론사를 통해 `상·하반기 베스트 애널리스트` 명단이 발표된다. 연기금·자산운용사 매니저들은 언론사로부터 받은 평가지를 통해 애널리스트들을 평가하고, 이 결과에 따라 애널리스트 순위가 매겨진다.
문제는 이 결과가 애널리스트의 연봉 협상과 이직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그래서 일명 폴(poll)이라 불리는 매니저들의 평가기간이 다가오면 애널리스트들은 `본업` 보다 `부업`에 바쁘다. 분석 보고서로 능력검증을 받는게 아니라, 매니저들에게 잘 보이려 접대하기에 바쁘다는 지적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폴 결과는 대부분 11월 말에서 12월 초 사이에 이뤄진다"면서 "이 기간을 앞두고 매니저나 기관투자자들과의 접대 약속을 잡느라 분주하다"고 말했다. 이어 "폴 기간에는 직속 상관이 회식하자고 해도 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폴 평가는 뷰티콘테스트`
폴과 관련된 소문도 무성하다.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관련 보고서를 내기 전 매니저들에게 미리 귀띔해준다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일부 증권사 센터장은 자산운용사 임원들에게 촌지를 찔러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부 증권사는 리서치센터 차원에서 폴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폴 순위에 없는 애널리스트를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모 증권사는 미인대회 출신의 여성 애널리스트를 앞세워 운용사 세미나 일정을 잡거나, 매니저와 식사자리를 만든다.
폴 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들이 많지만, 애널리스트들이 이처럼 목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본인의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평가 수단이 다양하지 않은 만큼 다수의 증권사는 폴 결과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또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된다면 몸값 자체가 높아져 직장을 옮길 때도 유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니저들과의 관계에 치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 업종 안에서만도 수십 명의 애널리스트가 존재하는 만큼 매니저들도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보다 본인과 친분있는 애널리스트를 중심으로 평가하게 된다.
한 운용사 매니저는 "될 수 있으면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하지만, 모든 애널리스트를 아는 게 아니므로 잘 아는 애널리스트를 중심으로 점수를 매기게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 폴 평가비중 낮춘다
이에 몇몇 증권사들은 애널리스트의 인사 평가에서 폴 비중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현재 폴 결과를 참고자료로만 이용하고 있다. 보고서를 비롯해 고객과 센터장 등의 평가를 중심으로 인사 평가를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폴 결과를 애널리스트 인사 평가에 80% 비중으로 반영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부작용이 커 앞으로는 40% 정도로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센터장은 "폴 결과가 실제 애널리스트의 실력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면서 "탁월한 분석을 해야 할 애널리스트가 `영업`에 치중하는 게 안타깝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