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투자자 - 국가소송제도''가 과연 얼마나 대한민국의 주권과 법적 질서를 얼마나 위협할 수 있는가에 대해 걱정이 계속되고 있다.
ISD 소송과 관련해 책자를 발간했던 법무부는 "ISD가 위험하다고 경고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국제적 소송은 그 예방 및 대비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고려 하에 책자들을 발간하고 여러 사례를 소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상해 보자. 집권세력이 바뀌었다. 한미 FTA의 독소조항을 우려해 신중을 기하고 싶은 정권이 들어섰다면 법무부의 ISD에 대한 설명은 지금과 똑같을까? 혹시 ''그것 보라, 우리가 ISD 분쟁 사례 모음집까지 펴내며 경고하지 않았더냐!''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하나만 더 상상해 보자. 대통령은 비준발효 3개월 안에 다시 협상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고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을 만났다 치자. 우리 측은 ''ISD 폐기''나 ''제소 요건 강화'' 중에 하나를 꺼내들고 현 협상 내용이 한국에 불리하니 바꿔야 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 내용과 논리가 무엇인지 미리 들어봤으면 좋겠다.
◇ 그 많던 ''어버이 연합''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라의 주권이나 법질서에 피해가 올 수 있는 외국과의 협정이라면 가장 앞에 나서 따져야 할 세력은 보수야당과 보수층 노인 세대이다. 나라의 전통가치와 국권을 수호하는데 가장 열정적일 테니 그렇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다. 만약 국가가 노인복지를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거나 노인들의 병원진료를 무상으로 책임지겠다 하면 국내외 보험회사들의 영업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아 ISD에 제소될 수 있다. ''한미 FTA로 미국의 서비스 분야가 얻는 기회''라는 제목의 미 상무부 보고서 내용을 보자. (지난 17일 민주당 주승용 의원이 제기)
1) 미국식 메디컬 센터가 한국 내 건립되도록 길을 크게 된다.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한국의 입법부와 행정부가 국내법 개정을 통해 미국 측 이익을 앗아가는 것을 보다 어렵게 만듦으로써 미국의 보건의료기관과 의료종사자들의 권리를 강화한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의 의료복지 사회보장서비스는 지금 이 수준에서 끝이다. 침묵하는 ''어버이 연합'' 회원들에게 이 점을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 한다.
◇ 한국 부동산과 미국 부동산은 다르다
그 다음은 부동산 분야를 살펴보자. ''간접수용''이라는 한미 FTA 협정 내용이 가장 이슈가 되고 있다. ''간접수용''이란 국가가 투자의 직접적인 소유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치이다. 따라서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 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이 부동산 투자자의 자산기치를 떨어뜨릴 경우 간접 수용의 결과를 초래해 투자자가 정부를 ISD 국제기구에 제소한다. 그 결과로 국가의 부동산 관련 공공정책이 힘을 잃고 공백상태에 빠진다는 우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차원에서 개발부담금이나 재건축부담금을 계속 받아낼 수 있을까? 개발부담금, 재건축부담금은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땅값 폭등으로 초과수익이 생겼다고 판단될 때 땅값 상승으로 인한 수익의 일부를 거둬들이는 장치이다. 이것을 국가의 세금이니 마땅히 내겠다 할 지 ISD에 의해국제중재로 가져갈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을 따낸 건설업체에게 도로, 지하도, 공원 등을 지어 지역사회에 기부하라며 조건부로 사업허가를 내주는 기부체납 제도 역시 개발이익을 빼앗아 가는 간접수용이라고 제소하면 법적 다툼이 시작된다.물론 이미 그린벨트로 지정해 놓은 지역은 어쩌지 못하지만 새로운 그린벨트 지정은 ISD와 충돌할 여지가 있다.
물론 공공의 건강, 안전, 환경 등 공공 후생의 목적을 위한 정책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한 간접 수용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려면 제소 요건이 명확하고 까다로워야 하는데 과연 만족스러운지 더 따져봐야 한다. 또 조세 및 부동산가격 정책도 간접 수용에 해당하지 않도록은 해 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개발부담금이나 기부체납이 규제가 아닌 세금으로 받아들여질 지는 자신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런 걱정을 하는가? 미국의 땅 규제는 정부가 공공을 내세워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표이고 우리의 땅 규제는 부자나 기업이 나라 땅을 사유화 해 마구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 다가오는 ''개와 늑대의 시간''
국제기구에 제소하게 되는 ISD와 효력다툼조차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다른 독소조항. 모두 4년 전에 거론되었으나 아직도 결론 없이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문제는 그 논란조차 국민에게 전달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의료복지 문제는 지난 17일 민주당 최고정책회의에서 나왔고, 부동산 문제는 18일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 내용들을 짤막하게라도 보도한 것은 전문지 1~2개 정도이다.
미국의 자본은 미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다니며 돈을 불려야 한다. 지구촌 나라들의 방어벽을 뚫을 수 있는 무기는 바로 미국이란 국가의 힘이다. 너무 속보이는 일이니 미국이 주도한 국제기구들 IMF, 세계은행으로 채널을 바꾸기도 한다. 반대로 미국이 지금의 불황과 경제적 침체가 계속되면 미국 자본은 국가에게 방패가 되어 한국, 중국, 일본, 인도의 경제침투를 막아내라고 요구할 것이다.
한미 FTA는 급하지 않다. 세계경제의 지각변동과 미국 시장의 구조개혁이 올지도 모른다. 차분히 더 지켜보면 안 된단 말인가. 국회 본회의는 정기적으로 열린다.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다니 누가 제한시간을 부여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