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영세 자영업 ''인생 이모작''

최근 들어 50대 이상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들이 퇴직 후 도소매업이나 음식업에서 창업하는 이들이 증가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이들이 자영업에 몰리면서 전체 자영업자 수가 5년4개월 만에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 규모가 작은 영세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돼 자칫우리 경제의 위협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베이비부머 은퇴후 도소매업서 ''인생 이모작''

17일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50대 이상 자영업자는 10월 310만3천명으로10년 전인 2001년 10월 241만8천명에서 68만5천명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자영업자가 627만1천명에서 573만1천명으로 54만명 감소했음에도 50세 이상은 오히려 반대 움직임을 보인 셈이다.

이는 우선 인구구조 변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1955~1963년생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나이가 들어 50대로 대거 진입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 연령대의 자영업자가 늘어난 것.

실제 50세 이상 인구는 2001년 10월 997만5천명에서 지난달 1천520만3천명으로 522만8천명(52.4%)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자영업자 추세를 보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굴곡이 있다.

전체 자영업자 수는 2006년 5월을 기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하는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지만 50세 이상은 절대 인구의 증가세에 힘입어 자영업자 역시 늘었다. 그러다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엔 50세 이상 자영업자도 다른 연령대와 마찬가지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후 올해 들어 3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10만명 이상 늘어나면서 급기야 8월엔 전체 자영업자를 5년4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렸다.

최근 들어 50세 이상이 자영업자는 주로 도소매업, 운수업, 숙박ㆍ음식점업에서늘었다. 구체적으로 50대는 숙박ㆍ음식점업에서 전년 동기 대비 7월까지 1만~2만명 감소세였다가 8월에 2천명, 9월 4천명, 10월 6천명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1만명 이내로 증감을 반복했던 도소매업에선 4월부터 3만~4만명가량 꾸준히 증가했고, 운수업에선 6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1만3천~1만8천명의 증가폭을 유지했다.

60세 이상은 숙박ㆍ음식점업에서 5월부터 1만명 이상 증가하며 증가폭이 확대됐다. 도ㆍ소매업에선 7월에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로 반전해 8월 1만5천명, 9월 1만4천명, 10월 1만7천명 등 3개월 1만명 이상 증가세가 이어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50~60대 퇴직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은퇴후 제2의 일자리를 자영업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유통산업발전법(SSM법) 규제로 도소매 업종에서 창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50세 이상 영세 자영업자 증가는 경제 위협요인 될 수도"

전문가들은 50세 이상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향후 우리 경제에 잠재적인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갖고 기업가정신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사례라기보다는 주로 도소매업, 음식점업 등 생계형 창업에 나서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수경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창업에 대한 준비가 덜 된상태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밀려나와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50대 이상 연령층이 자영업을 시작하면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은퇴한 50대 이상은 새로운 수요를 반영하거나 트렌드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소형 상점이나 영세 대리점, 택배 또는 대리운전기사 등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이지만 특수고용 형태의 업종에 종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

랜달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담당 국장은 지난달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한국에서 서비스 분야가 은퇴 후 노년층의 ''폐기물 처리장(dumping ground)''으로회자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연령대의 생계형 자영업자가 늘면서 ''제살깎아먹기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경제 전체로 보면 자영업자들이 이런 식의 출혈경쟁을 계속하면생존할 수 없다"며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자영업자들이 붕괴한 것처럼 또하나의 `빅뱅''이 터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50대 이상 자영업자가 상당 부분 음식숙박업에 몰려있다"며 "다른 나라들처럼 금융·부동산 부문 등 보다 전문적이고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자영업을 유도하는 한편, 고령자가 너무 일찍 퇴직하는 것을 막아 생계형 영세자영업으로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손민중 연구위원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바로 하게 되면 사회안전망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지가 바로 자영업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영업자가 늘어난 것에 대해 "내년 우리 경제가 올해보다 좋지 않을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늘어난 자영업자들이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50대 이상 자영업자가 증가하는 현상이 일시적인지 추세적인지 판단하기이르므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종전에는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이 매우 높아서 구조조정을 통해 임금근로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가 우리 상황에 적절한 비중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008년 기준 자영업자를 포함한 비임금근로자의 비중이 우리나라는 31.3%로, 미국 6.6%, 일본 12.3%, 독일 11.0%, 프랑스 8.9% 등에 비해 높다.

이 관계자는 "50~60대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지원대책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퇴직자들이 주된 직장에서 조금 더 길게 일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재정부 관계자는 "통계상 50대 이상 자영업 취업자가 증가하는 배경에는 베이비붐세대가 나이가 들면서 50대 이상의 취업자 통계에 잡히는 `인구이동 효과''도 있다"며 "고용통계뿐 아니라 산업별 구조 등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50대 이상 자영업자 증가세의 배경과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