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펀하면서도 까상까상하다. 조선시대 화가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즐거운 흥취가 감돌게 한다. 어둠 속에 있던 자연의 세계가 동이 트면서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새로운 기운을 뿜어내듯이. 그의 그림에는 놀이와 연극,음악이 흐른다. 그것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한 순간을 포착해 영원의 세계에 붙잡아 둔 것이다. 인간 마음 깊은 곳의 근원적 속성을 재미와 감동으로 끄집어낸 그의 그림은 간송미술관의 올 가을 전시 <풍속인물화 대전>에서 이야기의 싵타래를 풀어낸다.
조선시대 풍속을 그린 <연소답청 年少踏靑>(신윤복,위의 그림)은 한 때 유행했던 요즘 시대의 야타족을 연상시킨다. 분홍 진달래가 활짝 핀 봄에 나들이 풍경을 그린 이 작품에서 양반 자제 세명이 자신들이 데리고 온 세 마리 말 위에 각기 기생 한명씩을 태웠다. 맨 앞의 도령은 마부 역할을 하며,종자처럼 말고삐를 잡고 갓 대신 종자의 모자를 쓰고 있다. 맨 뒤에서 그 도령의 갓을 들고 뒤따라오는 종자의 표정은 떨떠름한 우거지상이다.
<무녀신무 巫女神舞>(신윤복)는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이다. 얼핏 보면 그저 굿하는 장면을 담 너머에서 총각이 구경하는가 보다 생각된다. 아 그런데 낮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집 뜰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의 시선이 담너머 총각에게 가 있다. 나이든 여인은 두손을 비비며 정성스레 기도를 하건만, 며느리인지 딸인지 젊은 여인의 마음은 딴 데로 가 있다.
<계변가화 溪邊街話>는 빨래터를 지나는 도령과 여인 셋이 등장하다. 길가던 도령의 시선은 얼굴을 돌려 한 여인에게 시선이 가 있고, 그 여인은 머리를 따는 척하지만 얼굴은 앞을 보고 있지만, 눈초리는 도령에게 쏠려 있다. 그 옆의 여인은 화가 난 표정으로 방망이로 빨래만 두들기고, 또 그 옆의 할머니는 빨래를 널면서도 표정이 고약하다. 한탄보다는 시샘이 역력하다. 젊음을 돌이킬 수 없는 나이 든 여인의 질투가 더 대단하다.
<이부탐춘 이婦耽春>은 과부가 집뜰에서 봄을 즐기는 장면이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에 개들이 홀레붙는 장면을 보는 과부의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 소복을 입고 나무에 걸터앉은 과부의 발끝이 춘정을 이기지 못하는 듯 바깥으로 많이 돌아가 있고, 그 옆에 앉은 소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손이 땀이 찼는지 과부의 치마폭을 그러쥐고 있다. 이 작품은 과부의 수절을 중시하던 그 시대에는 아주 음란한 그림이다. 작가는 정말 사람이 간절히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을 그림으로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있다. 부녀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낄낄거렸을 것이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혜원의 그림은 하나같이 색정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노골적인 성묘사가 춘화(春畵)라고 한다면, 혜원의 그림은 춘의도(春意圖) 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혜원은 어떻게 당시 양반들의 기생놀이를 통해 인간내면 심리를 잘 포착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 신한평과 함께 부자가 화원이었던 혜원은 젊은 시절 양반 자제들과 신나게 놀 기회가 많았고, 상류층 자제들도 그림 재주와 인물이 뛰어난 혜원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혜원 그림의 색채는 색채감이 강하여 산뜻하다. 그것은 좋은 안료를 썼기 때문이다. 상류층에게 인기가 높았던 혜원은 그들의 후원을 받으며 최고의 안료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미인도> <월하정인>, <춘색만원>등 신윤복의 작품만도 16점에 이른다.
혜원의 <춘색만원 春色滿圓>은 조선화에 서양식 음영법이 이미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붉어진 사내의 얼굴과 부끄러워 발그레진 여인의 뺨의 묘사는 서양식 음영법의 표현이다. 최완수 연구실장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시기는 서양음영법이 조선화에 이미 도입된 것으로 세계적 기업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융성기에는 세계 모든 문화의 정수를 얻을 수 있는 시기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맨끝에 자리한 우리나라는 세계문화의 종착지이자 종결처분되는 곳이다. 추사 김정희,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의 진경시대는 풍송인물화가 가장 발전된 시기이다"고 평가했다.
이번 간송미술관 전시에는 조영석,심사정, 김득신,윤두서, 정선,김홍도, 최북, 이인문,이한철, 신한평 등 50여명이 남긴 조선시대 풍속인물화 100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기간:10.16-10.30
전시장소:성북초등학교 정문 옆 02-762-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