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처럼 피어오르는 궁금증이 뉴올리언즈에 대한 기대를 한껏 키웠다. 봄기운이 찾아 온다는 춘삼월이었지만 남부의 봄은 벌써 무르익고 있었다. 화창한 하늘로 강렬한 햇살이 부서지고 도로가에 짙게 드리워진 녹음은 계절을 잊은 듯 싱그러운 기운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차창으로 밀려드는 습기 머금은 봄바람에는 이름 모를 꽃향기가 스며들어 나그네의 춘정을 자극한다.
처음 가보는 뉴올리언즈는 적어도 우리에겐 미지의 도시였다. 또, 남부 평야 위를 가득 메운 숲의 풍성함에 처녀여행의 기대도 덩달아 부풀어 올랐다. 텍사스에서 출발해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10번을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루이지애나의 주도 베튼 루지(Baton Rouge)가 나오고 그곳에서 다시 한 시간가량 달리면 뉴올리언즈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살포시 속살을 드러낸다.
어렵게 찾아간 버번 스트리트는 대하(大河) 미시시피가 흘러가는 뉴올리언즈의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미국 중부의 평원에서 비교적 곧게 흐르던 미시시피강 줄기는 뉴올리언즈에 이르러 뱀이 기어가는 것 처럼 구불구불한 사행천을 이루고 있다.
뉴올리언즈 최대 관광포인트인 프렌치쿼터는 강이 동쪽으로 휘었다가 다시 남쪽으로 트는 만곡부의 꼭지점 바로 북쪽, 폰차트레인(pontchartrain) 호수와 10번 고속도로 남쪽에 있는 구 도심이다. 이 곳은 프랑스어 ''비유 카레''(Vieux Carré)로도 잘 알려진 곳으로 오래된 장방형의 도심 시가지란 뜻. 프렌치쿼터의 북쪽에는 루이 암스트롱 공원, 서쪽에는 다운타운, 남쪽에는 잭슨 광장, 미시시피강과 접해 있다. 프렌치쿼터의 중심거리가 바로 버번 스트리트이다.
1718년 프랑스인들이 뉴올리언즈에 정착할 당시 미시시피 강변에 조성한 프렌치쿼터는 이 도시 최초의 도심이었다. 뉴올리언즈가 확장되고 다운타운은 프렌치쿼터에서 가까운 서쪽으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뉴올리언즈 문화의 허브이자 관광의 중심지이다. 프렌치 쿼터에서도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 바로 버번 스트리트다. 이 거리는 뉴올리언즈 중심상업지구 커넬 스트리트(Canal Street)에서 시작해 미시시피강과 평행한 방향으로 강하류 방면 남서쪽 포부어 마리니 지역의(Faubourg Marigny) 포져 스트리트까지(Pauger Street)대략 1Km가량 되는 2차선길이다. 그 중에서도 도심에서 가까운 8개 블록은 ''Upper Bourbon Street''로 불리는데 이곳이 버번 스트리트의 핵심이다.
프렌치쿼터 북쪽의 유료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두고 버번 스트리트로 갔다. 유명세 만큼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거리 전체가 조금은 들뜬 듯한 분위기였다. 도로와 인도는 비좁고 건물도 하나같이 오래된데다 낡아 조금은 우중충하면서도 전통미를 풍기는 곳이었다. 버번 스트리트를 가득 메운 상가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바(bar)와 레스토랑이다. Johnny White''s, The Famous Door, Razzoo and The Cat''s Meow 등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바들이다.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바에서는 비트 강한 음악이나 재즈 같은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음악 소리가 거리로 흘러 나와 복잡하고 소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남부 데카당스의 본거지 답게 버번 스트리트에는 여자와 술, 게이 커뮤니티, 스트립 나이트가 있고 아무데서나 흡연이 허용되는 자유분방한 곳인데 여느 주점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술집마다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한국식으로 얘기하자면 미성년자나 청소년 출입제한지역이다. 노골적인 호객행위에 매케한 담배연기, 음습한 분위기는 이곳이 어른들만을 위한 공간이란 사실을 알려 준다. 아이들이 신경쓰여 돌아보니 오히려 더 민망스러워한다. 준석이는 버번스트리트를 ''저질도시''라고 불렀다. 봄방학을 위한 가족여행이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동행했지만 사실은 청소년들이 가기엔 부적절한 코스였다.
이 뿐이 아니다. 프랑스 지배기에 유럽인과 흑인간 혼혈, 프렌치 크레올(French Creoles)이 출현했고 19세기에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이민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 1905년 기준 프렌치 쿼터 인구의 1/3~1/2이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다. 19세기 말 프렌치쿼터는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도심의 슬럼으로 인식됐지만 이것이 예술인사회를 유인하는 모티브로 작용했다. 쿼터 일대의 값싼 주택 임대료와 쇠락한 분위기가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예술인들을 끌어 들인 것이다.
오늘날 버번 스트리트에서 퇴폐문화 뿐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올리언즈가 퇴폐문화지대란 오명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다양한 인종들이 얽혀 사는 문화 해방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관계와 규율, 속박으로부터 한 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보헤미안의 기질을 갖고 있다.
대지진이 발생했던 아이티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이티에 부두교를 퍼트린 사람들은 아프리카 서부에서 서인도제도로 팔려온 흑인 노예들. 부두교는 아프리카 문화의 일부분인데 노예들을 따라 아메리카로 이전된 것이다.
광장의 이름은 플라세 드 아르매스(Place d'' Armes)였지만 1815년 뉴올리언즈 전쟁 후에 미군 소속 앤드류 잭슨 장군의 이름을 따서 잭슨 스퀘어로 변경했다. 1~2만평쯤 되는 광장의 중심에는 잭슨 장군의 기마상이 있고 한쪽 가장자리 부분에 세인트루이스(St. Louis)대성당과 좌우로 카빌도(cabildo)와 프레스비테르(Presbytère)가 있다. 성당은 교황 바울4세가 바실리카로 지정했고 주위의 건물은 과거 시청사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광장은 과거 주인에게 반감을 품거나 순종적이지 못한 노예들을 공개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 많은 화가와 거리의 악사들이 몰려들고 축제가 벌어지는 문화의 공간이 됐다.
광장에서 디카투어 스트리트 너머 미시시피강의 물길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반복되는 수해를 막기 위해 높은 제방을 쌓는 바람에 강과 광장은 한 때 단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Moon Walk"란 보행로가 설치돼 잭슨 스퀘어에서 미시시피강으로 나갈 수 있다. 미시시피는 보기 드문 대하로 강의 폭이 넓고 사시사철 수량도 풍부해 강둑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멋있다.
뉴올리언즈 출신의 흑인 가운데 가장 먼저 백인주류사회에 진입한 사람이 바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일 것이다. 아버지가 팽개친 가정에서 우울하게 자란 그는 유년시절 생계를 잇기 위해 어머니의 매춘까지 목도하는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과 열정은 그에게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줬다. 특유의 걸걸한 쉰 듯한 목소리와 스캣 창법, 카리스마 넘치는 스테이지 메너는 음악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20세기초 재즈밴드 ''핫 파이브''와 ''레드 어니언 재즈 베이비즈''(red onion jazz babies)에서 활동하며 재즈 트럼펫 연주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Stardust", "What a Wonderful World",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Dream a Little Dream of Me",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겼다.
뉴올리언즈의 프렌치쿼터와 버번 스트리트에는 눈에 확 들어오는 멋진 건축물이나 구경거리가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화와 다양성이 도시의 곳곳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유는 아마도 문화에 빠지고 분위기에 젖어들기 위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