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 5세기 후반까지 지속''…왕급 무덤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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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5세기 후반 최고 지배층의 무덤이 처음으로 발견돼 금관가야가 5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는 추정이 가능해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성동 고분박물관은 대성동고분군 6차 발굴조사에서 고분군 남쪽에서 길이 820㎝, 너비 490㎝, 깊이 280㎝ 규모의 왕급 무덤을 발굴해 공개했다.

이 무덤은 대성동 1호분보다 약 30년 늦은 시기인 5세기 후기에 해당하는 대형수혈식석곽묘73호로, 무덤의 크기와 금동관으로 미뤄 금관가야의 최고 지배계층의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3호 대형 수혈식 석곽묘에서는 산모양을 새긴 금동판으로 만든 관테와 꾸미개인 금동관 일부가 발굴됐다.

또 함께 발굴된 84호 석개목관묘는 고대 왕들이 사용한 유리구슬이 다량 출토됐는데, 이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 측은 현재까지 무문토기시대 유구에서 환옥(유리구슬)이 발굴된 사례가 없어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시기의 환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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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4세기 초 대형목곽묘가 대성동고분군에서는 확인되지 않다가 이번에 발굴되는 등 금관가야 고분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들이 다수 확보됐다.

특히, 이번 발굴은 금관가야가 5세기 초에 고구려 광개토대왕 침입으로 멸망했다는 역사적 학설이 맞지 않게 된 결정적인 사료로 평가 받고 있다.

박물관 송원영 학예사는 "왕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동관이 5세기 후반 무덤에서 출토됨으로써 4세기에 이미 금관가야가 패망했다고 알려진 가야사를 새로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송 학예사는 "앞으로 보완 연구조사가 필요하지만, 5세기 초에 금관가야가 멸망했다는 학설이 나온 이후 더는 왕급 무덤이 발굴되지 않아 금관가야의 멸망시기가 지금까지 서기 400년 전으로 굳어져 왔지만 이를 뒤집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가야사는 42년 금관가야를 시작으로 6가야 등이 번창하다 400년 금관가야는 고구려 도움을 받은 신라에 편입되고, 경북 고령의 대가야가 532년까지 왕권을 이어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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