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한 죽음의 진상, 늦지도 유해하지도 않다
1949년 12월, 경북 문경에서 공비토벌을 한다고 나선 국군이 문경 석달마을 주민을 무차별 학살했다. 마을 주민 127 명 가운데 81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숨진 사람의 70%가 어린이와 노약자였다. 물론 군은 공비들이 죽였다고 사건을 조작해 발표했다.
유족들은 10년 뒤인 1960년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반국가행위로 체포돼 처벌 받았다. 다시 40년을 기다려 지난 2000년 봄에 헌법소원을 내고 2008년 7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2000년부터 법에 호소했으니 그 때부터 소멸시효를 따져 3년이 되는 2003년에 법으로 따져 처리할 시효가 끝났다. 5년이나 늦었으니 재판이고 뭐고 따질 게 없다''고 소송을 기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인 지난 8일 대법원의 판결은 이를 뒤집었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사건 내용을 조사해 발표한 것이 2007년 6월이므로 소멸시효는 이때부터 3년을 따져 2010년 6월에 끝나는 게 맞다. 그러니 2008년에 제기한 유족들의 소송은 시효가 끝나 사라진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고등법원은 재판을 시작하라."
대법원은 지난 6월에도 6.25 당시 양민학살이 자행된 <국민보도연맹>사건 역시 "국가진실화해위원회가 진상을 조사해 발표한 2007년 11월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된다"고 판결했다. 국민이 피해자이고 국가는 가해자인데 가해자가 처형자 명부 등을 3급 비밀로 지정해 진상을 은폐하고 진상을 캐묻는 유가족을 처벌까지 했는데, 피해자 국민에게 왜 뒤늦게 이제 와서 따지느냐 늦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 내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13일 아침 휴대폰 트윗에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등장했다. 과거 취재했던 사건이어서 사무실에 올라와 컴퓨터를 켜고 해당 트윗을 다시 찾았더니... <귀하가 접속하려는 정보는 불법, 유해 내용이 제공되어 있어 해당 정보에 대한 접속이 차단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다른 경로로 찾았더니 이번에는 영어로 ''Sorry, that page doesn''t exist!''란 공지만 뜨고 내용을 찾을 수 없다. 밑에 시행처를 보니 사이버경찰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고 적혀 있다. 이 트윗에 실린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유해정보로 보는 걸까? 아니면 트윗을 올린 당사자를 유해한 인물로 규정하고 따로 통제를 하며 걸러내는 걸까?
보도연맹 사건은 국가기구가 공식 조사해 진상을 밝힌 바 있고 경찰청장도 지난해 추도사에서 공권력의 잘못을 깊이 성찰하며 사과한다고 했으니 아마 후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 국민보도연맹 - 계도하고 보호한다는 명부가 살생부로
보도연맹원 강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절대 지지한다'', ''북한 김일성 정권을 반대한다'',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배격한다'' ..... 등이다. 국가적 반공 사업이니 기관에서는 실적을 올리려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가입하라 권유했다. 지역마다 모집 할당량도 생겨나 가입하면 보리쌀을 나눠주는 곳도 있었다. 모내기나 추수철에 보도연맹원 집부터 일손을 도와준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국가가 인정하는 ''증'' 하나라도 갖고 있으면 더 안전할까봐, 밀가루 배급받을 때 도움이 된다고 하니 좌익.우익이 뭔지도 모르는 시골 농군들이 도장 찍고 지장 찍으며 가입했다. 아이들도 열 몇 살 정도면 받아준다고 해서 손 붙잡고 데려가 가입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가입한 사람이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6.25 직후 정부는 그 명부를 근거로 공산당에 합세할 위험이 큰 사람들이니 처리해버리고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보도연맹 소집령을 내려 연맹원들을 모았다. 보도연맹원들은 반공주민들이어서 먼저 피신시키기로 했다고 속이고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집단 수감한 뒤 곧바로 위험한 좌익분자라며 학살한 사건이다.
6.25 전쟁이 발발한 뒤 7월, 8월이 집중적으로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이 저질러진 시기이다. 한강에서 남쪽으로 후퇴해 내려가면서 저질러졌기 때문에 △경기.충청은 7월, 경상도는 8월이 많다. △충북 청원군 옥녀봉, 괴산군 감물면 공동묘지와 솔티재 등에서 사망자 265명 확인, 그러나 추정은 1,000명. △충북 충주 호암동 싸리고개에서는 183명 희생 확인. △충남대전 지역은 산내 골령골에서 1,400 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 △경남 울산은 1950년 8월, 대운산 골짜기 등에서 천 명 가까이 희생. 피해자 유족들은 4.19 직후 학살현장을 찾아 헤매다 발견해 두골 825구를 수습해 합동묘를 조성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은 합동묘를 파헤치고 묘비도 없앤 뒤 유가족들은 연좌제로 처벌했다.
창고에 가두고 불을 지른 뒤 겨우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총격을 가해 학살하기도 했고, 구덩이를 파고 몰아넣은 뒤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메워버린 곳도 있다. 15년 전 취재팀을 꾸려 일부 지역의 진상을 보도하자 ''아버지가 끌려간 뒤 돌아오지 않아 40년 넘게 찾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아닌 삶을 살아왔는데 방송 내용을 듣다보니 그 골짜기가 바로 아버지가 묻혀 계신 곳 같다''며 지금이라도 찾아가 보겠다는 유족도 있었다.
◇ 국민의 생명과 존엄은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구성요소
희생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는다. 과거사를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의 활동은 피해 유족의 신청을 받아 진상 파악에 나선 것이기 때문에 제한적이다. 그저 아직도 최소한 5천명이라 일컫지만 그 몇 배가 진실일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용서와 화해를 하고자 해도 무엇을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알아야 용서하고 화해할 것 아닌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국민의 존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구성 요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법한 절차와 과정없이 국민의 인명이 희생되어선 안 된다. 앞으로 진행될 보도연맹 사건 유족들의 피해보상 및 배상 소송뿐만 아니라 수시로 벌어지는 시위진압이나 철거 진압, 노동현장에서의 분규... 그 모든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존엄은 국가 존재의 이유임을 공권력은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