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같이 가요" 글 올리는 순간 표적된다

필리핀 배낭여행 관광객 표적 납치, 수천만원 뜯어내는 범죄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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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자유여행 동행자를 찾는 인터넷 글을 올린 이를 현지로 유인해 표적 납치한 뒤 무려 60시간 동안 감금해 수천만원을 뜯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강도살인 혐의로 수배되자 필리핀으로 도피한 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외 여행객들을 상대로 무차별 감금, 폭행을 일삼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A(32)씨는 혼자 필리핀 여행을 계획하던 중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뜻밖의 쪽지 하나를 받았다.

"필리핀 배낭여행 동반자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를 보고 필리핀 현지에 사는 한국인 김모(42)씨가 "휴가기간이 겹쳐 함께 여행하고 싶다.현지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

A씨는 아무 의심 없이 지난 5월 16일 필리핀 세부에 도착했고, 직접 공항까지 차량으로 마중을 나온 김씨는 저렴한 현지 호텔과 식당을 친절히 안내해줬다.

이틀 동안 김씨의 가이드로 세부 시내 관광을 한 A씨는 이후 김씨의 친구들과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 스노클링을 하는 ''호핑투어''를 가기로 했다.

하지만,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들이닥친 김씨의 친구 3명은 갑자기 강도로 돌변했고, A씨를 결박한뒤 한 펜션으로 끌고 갔다.


김씨 등 4명은 A씨를 알몸상태로 쇠사슬로 온몸을 묶고 흉기로 위협해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연락해서 통장으로 돈을 받아라"고 협박했다.

어쩔 수 없이 A씨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합의금으로 큰 돈이 필요하다"며 2천 3백만원을 입금 받았고, 이 돈은 필리핀 현지 여성이 수차례에 걸쳐 모두 인출해 김씨 등에게 건넸다.

김씨 일당은 무려 60시간 동안 A씨를 감금하고 있다가 21일 직접 필리핀 세부 공항까지 데려다 준 뒤 "어디 사는지 알고 있다. 신고하면 한국에 있는 조직원들을 시켜 쫓아가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 부산경찰, 납치강도단 중 1명 구속…나머지 3명 인터폴 수배

경찰은 A씨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A씨의 소지품에 대한 지문감식을 벌인 끝에 피의자 2명의 신원을 파악했고, 일당 중 한 명인 김모(38)씨를 필리핀 현지 경찰의 도움으로 검거해 국내로 압송했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배낭여행객을 납치, 감금한 뒤 수천만원을 뜯은 혐의(특수강도)로 김씨를 구속하고, 현지에 있는 범행 총책 최모(45), 행동대장 김모(42)씨 등 3명을 인터폴과 공조를 통해 뒤쫓고 있다.

또, 현금 인출책인 필리핀 현지 여성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일당 중 최씨 등 2명이 2007년 7월, 경기도 안양에서 발생한 환전상 강도살인 혐의로 수배상태인 것으로 미뤄 이들이 해외로 도피한 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A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납치, 감금 당해 돈을 뜯긴 피해자가 4명 더 있는 점으로 미뤄 이들이 조직적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필리핀으로 유인한 뒤 금품을 빼앗는 ''표적 납치''범행을 벌이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납치, 강도를 당하는 사건은 2006년 85건이었지만 2010년 120건으로 40% 증가했고, 특히 필리핀의 경우 2006년 1건으로 2009년에는 18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이병진 대장은 "최근 인터넷을 통해 여행 동반자를 찾는 사례가 많은데 자칫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만큼, 상대방이 지나친 호의를 베풀면 경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해외 여행시 휴대전화 단축번호 1번을 영사콜센터 등으로 지정해 놓으면 위급상황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고, 사치스러운 옷차림은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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