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대구를 방문한 박근혜 전 대표가 한 말로 서울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상급식 전쟁과 관련해 그가 남긴 유일한 의견이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한 질의가 이어졌지만 박 전 대표는 "제 입장을 이미 말씀드렸다"며 발언을 자제해 왔다.
논란이 많거나 촉발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가능한한 언급을 자제해왔던 박 전 대표의 스타일상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 오세훈 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데 이어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싫든 좋든 당력을 집중해 ''오세훈 시장 구하기''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4.27 재보선 이후 당의 최대 주주로 떠오른 박 전 대표의 지지가 어느때 보다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이미 지난 18일 "오 시장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 박 전 대표가 도와줄 줄 알았는데 전혀 움직임이 없다. 당원이든 의원이든 (주민투표 지원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박 전 대표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23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주민투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각 지자체가 형편과 사정이 다르니까 거기에 맞춰서 하는게 좋지 않겠는가 그런 말씀 여러번 드렸다"며 "서울 시민들께서 거기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겠냐"고 전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문제에 굳이 (대선주자가) 개입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뒤 "중앙정부에서 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사정과 형편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박 전 대표의 발언에서도 중앙정부 차원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표의 입장이 난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장 주민투표에 실패할 경우 보수층에 비난의 화살이 박 전 대표에게 향할 가능성이 높다.
한 친박계 의원은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적절하게 처신했다고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찬성하는 사람들은 비판을 할 것"이라며 "아주 곤혹스러운 단계"라고 내다봤다.
한나라당이 주민투표 서명운동이 시작된 뒤 5개월여 동안 침묵하다 최근 한달 사이 ''적극지지''로 입장을 바꾼 것도 이같은 보수층의 비판을 의식한 것이고 박 전 대표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함께 앞으로 적극적인 정책행보를 예고하고 있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 일개(?) 정책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사생결단식 충돌이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올 2월에 박 전 대표가 발의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은 상당수 진보적 사회학자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반대로 아직도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 머물며 지루한 정치공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내용이 아닌 누가 내놓은 정책이냐를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벼랑끝 대결이 이어질 경우 ''정책''으로 차기 대선에 승부수를 띄우려고 하는 박 전 대표의 행보에 ''태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다 이번 주민투표가 오 시장의 사퇴로 이어져 오는 10월에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한나라당에 결코 유지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당안팎에서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 전 대표에게 적극지원을 ''반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수도권의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거지원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도 "아무래도 여기저기서 선거지원 압력이 많이 들어오고 동시에 이에 응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거셀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