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뛰니 뭐도 뛰나?… 색(色) 마다 녹색이고 학(學) 마다 과학이래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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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지난 주말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주도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설립 법안을 냈고, 이 법안대로 하면 한국해양대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연구원이 해양과학기술원으로 통폐합된다.


법안 목적을 살펴보면 해양과학기술원은 해양자원, 에너지 부문에 집중할 것이어서 현재 해양대가 운영하고 있는 해운, 조선, 항만, 해양경찰 등 상당수 학과가 없어진다. 학생 일부는 과학기술원으로, 일부는 비슷한 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으로 옮겨지고 학교는 사라진다. 그런데 이 법안은 정책 토론이나 공청회, 관련기관 의견 청취 없이 너무 은밀하면서도 쏜살같이 추진되어 법안이 마련된 뒤에야 학교 측과 학생들이 소식을 듣고 패닉 상태에 빠져 들었다.

▣ 대통령은 녹색성장 아버지, 국회의장은 과학강국의 아버지, 언제부터?

박희태 국회의장은 두 가지 법안을 동시에 내놨다. 해양과학기술원과 녹색과학기술원 법안이다. 평소 과학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박희태 의장이 웬 녹색과학과 해양과학에 손을 댔을까?

가설 하나를 세워보자. 박희태 의장이 다음 총선에 지역구 출마를 한 번 더 하려 하는데 그 지역구는 경남 양산이고, 이번에 법안을 낸 녹색과학기술원이 양산으로 간다면? 뭔가 스토리가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미 정치권에 나도는 소문으로는 가설일 것도 없어 보인다.

1) 끗발 좋은 국회의장이 직접 법안을 내놓은 데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녹색과학인데 감히 가로 막을 사람은 없다.

2) 부산에는 부산과학기술원을 세우자고 별도의 법안이 추진 중이다. 대구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있다, 경주에도 과학기술원이 있다, 울산과학기술대가 있는데 자기들 이름을 울산과학기술원으로 바꿔달라고 하고 있으니 울산도 있다. 창원과학기술원법안도 이미 추진 중이다. 광주에도 과학기술원이 있다. 대전에도 과학기술원이 있다. 그러니 경남 양산에 국회의장이 세우자 하면 ''''안 된다 우리 지역으로 가져 와야 겠다''''고 경쟁할 곳은 없다.

그럼 해양과학기술원은 왜 꺼내 들었을까? 부산해양과학기술원은 부산 영도에 세우겠다고 한다. 지금 한진중공업이 있는 바로 옆자리, 해양대를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이다.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국회의원은 전 국회의장 김형오 의원이다. 전임자에게 예우 상 해양과학 하나 떼어 내놓고 경남 양산을 녹색과학으로 지키려는 것인가?

▣ 대한민국 과학 만세, 과학고보다 과학기술원이 많아진다?

너무 앞서간다고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앞서가고 있는 것은 분명 정치권이다. 국회에 등장한 과학기술원법안이 몇 개인지 세어 보자.

부산과학기술원법(김세연 한나라당 의원 대표 발의)창원과학기술원법(김학송 한나라당 의원 대표 발의)녹색과학기술원법(박희태 의장 대표 발의)부산방사능의과학기술원법(한나라당 안경률 의원 대표 발의)

ㅈㅈ
현재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있고, 경주과학기술원도 있고, 광주과학기술원도 있고, 대전에도 있고, 울산도 과학기술대를 과학기술원으로 바꾼다. 거기에 다시 4개의 과학기술원이 얹어지면 도대체 몇 개인가.

국회의원들은 과학으로 세계의 선진강국이 되고자 하는 투철한 국가관 말고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리 순순한 의도만 있을까? 과학기술원 난립 소동이 빚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및 총선거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과학벨트 예산이 대전, 대구, 광주로 내려가는데 연구단을 꾸리는 예산은 각 지역 과학기술원으로 내려간다. 대전, 대구, 광주의 과학기술원이 중심이 돼 예산을 받아 연구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지역마다 과학기술원을 만들어 놓고, 아니면 법이라도 꾸며 통과시켜 놓고 그 연구단에 끼어들어 예산을 따내 오려는 것이다.

국가의 과학 육성을 위한 재원은 지금도 부족하기만 하다. 그런데 곳곳에 과학기술원이 세워져 인력과 시설, 재정 등이 분산되면 과학교육과 연구가 함께 부실해 진다. 한정된 국가자원을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배분해야지 주먹구구식에 선거 때 되었다고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된다. 도대체 이 과학기술원들을 다 받아주자면 몇 십조 원을 쏟아 부어야 할 지 모르는 일이다. 또 정치적 입김에 휘말려 쪼개 배분하다보면 겨우 버티어 가는 기존의 과학연구와 연구 인력들에게 지원이 줄어들거나 끊기고 이 나라 과학연구의 밑바탕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1일 오후에 등장한 기사도 그 예 중 하나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정부 연구기관의 연구내용을 조사한 결과 태양에너지, 신약용 물질, 차세대 디스플레이, 로봇, 차세대 자동차, 풍력 에너지 등에 많으면 23곳, 적게는 11곳이 중복돼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조율을 못한 채 연구원마다 경쟁적으로 연구분야를 확장하고 연구원 성격과 목적에 관계없이 돈이 되는 연구과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이리 된 것이다. 어느 곳이 성공한다 해도 나머지 연구기관에 투자된 재원은 보나마나 국가 손실이 되는 게 뻔하다. 대통령에게 그 심각성이 보고되어 내년에 대대적으로 걸러내겠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법안 밀어 넣고 나서 ''''그래 당신도 하나 가져가고 그 대신 나도 하나 가져 가자. 당신이 우리 거에 도장 찍어주면 나도 당신 거에 도장 찍어줄게''''... 서로 품앗이 하면서 잘 나가면 그 뿐이라 치자. 그리고 유권자에게 표 얻어내면 그만이다. 유권자도 혹 지역에 뭐래도 하나 들어오면 된 거지 하면서 한 표 찍어주면 그만일 거다. 그러나 철없는 정치권이 마구 만들어내고 예산 뜯어내 주고 하다보면 결국 재정이 바닥나고 법안이 만들어졌다 해도 설립이 어려워 선택하거나 취소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되면 동남권 신공항, 과학벨트 유치 때 본 것처럼 지역갈등이 번져갈 것이다.

▣ 입법은 세우는 것이지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또 정치권의 주먹구구식 입법 때문에 이미 장기적 비전이나 프로젝트를 마련하고도 포기하고 무너지는 곳이 생겨날 것이다. 벌써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해양대학은 1945년 광복 이후 세워진 첫 번째 국립대학으로 국내 유일의 해양특성화 종합대학이다. 교육성과지수 1위에 오를 정도로 교육 및 연구 환경에서 우수 평가를 받아왔다.

국내 최고 수준의 장학금 수혜율(재학생의 80%)에 등록금이 부산경남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대학이다. 정규 졸업자 취업률도 70.3%로 국내 1위이다. 이미 부산 해양대 주변 지역은 부지를 조성해 해양 연구기관들이 함께 모여 해양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계획이 마련돼 있는 상태이다. 모이지만 말고 아예 다 통합해버리라고 무작정 내리 누르면 정말 무식한 법안이 되어 버린다.

오죽하면 국토해양부가 나서서 그리하면 전반적인 국가 해양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며 국회의장 눈치를 살피겠는가. 그리고 내년부터는 해양대와 해군이 손을 잡고 해양군사대학 운영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다. 제발 살펴가며 일해 달라. 박 의장이 알아듣고 생각 중이라니 이쯤에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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