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서 <뉴비전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앞으로 국민을 위해 이런 것들을 해주겠다고 한다.
빈곤아동수당 신설, 영아·유아 무상보육 실시, 무상급식 확대, 무상의무교육 고등학교로 확대, 저소득 근로자 4대 보험료 감면, 기초노령연금 내실화, 기초생활보호제도 사각지대 해소, 대학등록금 부담 30% 인하...
하지만 국가 복지정책은 반드시 재원마련과 지출방안이 숫자로 쓰여나오기까지 믿을 수는 없다. 한나라당 <뉴 비전 보고서>를 숫자로 다시 읽어보자.
1. 사회복지 지출을 OECD 평균수준이 되도록 확대하겠다.
우리나라가 사회복지에 쓰는 지출 수준은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9위 사실상 꼴찌이다. 우리 뒤에는 멕시코뿐이다 OECD 평균이 23.7% 인데 우리는 11%에 그치고 있다.(2008). 평균의 절반이 채 안 된다. 2009년은 12.2%, OECD 평균은 21.8%로 평균의 절반을 살짝 넘어섰다. 2010은 9% 대 20% 수준. 절반 조금 못된다. 특히 민간 복지를 빼고 공공복지 수준은 우리나라가 8.3%, OECD 평균은 20.6%이다(2008).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 한나라당 이야기는 2020년까지 평균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3년 안에 11%에서 13%로, 5년 안에 15%까지 이렇게 말하면 모를까 ''''10년 안에 평균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건 너무 막연하고 멀다. 내년 총선 치르고 19대 국회의원 임기 5년 하고도 3년은 남는다. 총선을 두 번이나 치를 수 있으니 안 지켜도 큰 부담 없는 이야기.
2. 사회보장 부담률을 2배로 늘리겠다.
사회보장부담률은 국민건강보험료·산업재해보험료·고용보험·국민연금·사학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금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현재 GDP의 5.6% 수준인데 10%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자세히 읽어보면 단서가 붙어 있다. ''''국민소득이 증가한다는 전제로...'''' 국민소득이 순조롭게 증가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2009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에 따른 빈곤개선율을 보자. 국민복지를 위해 쓴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국민소득 증가 효과를 가져 왔는지 엿볼 수 있다. 우리 빈곤개선율은 14%, OECD 평균은 149% 이다. (2009년 기준)복지 예산을 쓰긴 썼는데 엉뚱한 사업이나 겉치장하는 데 잔뜩 써 빈곤층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어떻게 사회복지 지출 예산에 의한 빈곤개선율이 OECD 평균의 1/10 이 나오는가.
소득불평등을 개혁하는 쪽으로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노동시장에서의 비정규직.일용직 불평등을 해결하고, 기초생활보장.기초노령연금 수급 확대 등 저소득층 위주로 복지 정책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숫자로 복지지출 증가, 사회보장 부담률 증가가 이뤄져도 돈만 쏟아 부었지 저소득층에겐 별 소용이 없다. 지난 14일 기초생활수급자이던 60대 노인이 부양의무자 기준에서 벗어나 탈락됐다고 통보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0월에도 한 노인이 자신이 일용직 노동자도 돈을 좀 번다고 해서 장애인 아들이 수급자가 못 되자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올해 초에도 최저 생계비로 살아가던 노인 부부가 동반자살을 선택했다.
비슷한 내용이 정부가 발표한 ''''2010 국가경쟁력 보고서'''' 안에도 들어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사회보장부담률은 3.35%, OECD 평균 3.4%와 같은 수준이다. 열심히 일해 봉급 타 건강보험, 국민연금 열심히 냈다. 26개 나라 중 12위이다. 그러나 기업.고용주의 사회보장 부담률은 2.56%, OECD 평균 5.9%의 절반도 안 된다. 역시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라고 고용주에게 계속 유리한 정책으로 가거나 부유층 위주로 정책을 펴면 구조적 불균형은 바로 잡을 수 없다.
3. 조세부담율을 25%로 늘리겠다.
복지를 확대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국민들이 얼마를 벌어 세금으로 얼마나 내는가를 따지는 것이 조세부담율. 한나라당은 현재 19~20%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25%로 늘리겠다고 한다.
어제 발표 내용 중에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가 <감세>인데 한나라당이 <증세>를 들고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확실하게 <증세>를 주장한 정당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나라당도 증세에 뛰어들었다. 단 진보정당들이 외친 건 부자증세이다. 한나라당이 의미하는 <증세>가 ''''감세 포기'''' 즉 원상복귀인지, 노무현 대통령 시절(조세부담률이 가장 높아 22% 수준)보다 더 높게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는 확실한 ''''부자증세''''인지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의 방향 전환은 예견된 바이다. 보름 전 지난 5일 발표된 기획재정부 자료를 보자. <장기 재정전망 추계>라는 보고서이다.
''''.... 저출산 고령화로 2020년에 가면 국가 채무가 1천조원에 이른다.(960조). 도저히 정부가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조세부담율을 2009년 19.7%에서 2050년 23.7%로 늘려야만 한다''''고 나와 있다. 다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내년에 장기재정전망협의회까지 구성한다. 이미 정부도 조세부담률을 늘려야 한다며 감세를 포기하는 단계이다. 한나라당이 감세에서 증세로 돌아서는 것은 결국 정부가 반쯤 돌아선 걸 감지하며 벌이는 선수 치기라고나 할까.
정말 문제는 민주당이다. 아직도 ''''<증세>는 없다''''인가? 손학규 대표 쪽과 중도파는 증세가 없는 선에서 무상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증세한다고 하면 표가 깎일 까봐 그런 것이다. 정동영 최고위원 쪽에서 복지를 확대하려면 증세는 ''''불편한 진실''''이라며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고 주도권 경쟁에 나섰다가 지금은 시들한 상태다. ''증세 없이 무상복지 재원을 마련한다는 민주당 정책은 거짓말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이라던 한나라당이 감세에서 증세로 돌아섰고 정부도 슬그머니 몸을 틀어 볼 참인데 참으로 속 편한 민주당 아닌가?
국가재정은 도덕교과서와 같아야 한다. 그 안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들어있어야 하고, 인간다운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도 들어 있어야 한다. 가진 자의 아량도, 힘 센 자의 덕망도 들어 있어야 한다. 각 정당들의 진정 담긴 해답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