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가명, 58)씨는 지난달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부인과 크게 다퉜다. 조카 결혼식에 낼 축의금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삼촌을 유난히 따랐던 조카라 빚을 내서라도 체면치레는 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극구 반대했다. 부부싸움 끝에 결국 20만원으로 정리됐다.
그는 요새 애경사 때문에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자신을 숨기는 이중생활 때문에 피곤함도 더해가고 있는 터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그는 경비를 서고 있다. 그러나 고3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를 건물관리인으로 알고 있다. 퇴근할 때면 혹여 아들이 볼까봐 경비원 유니폼을 세탁소에 맡기고 집에 들어간다.
아들이 그가 경비로 있는 대학에 지원하겠다면 아들을 말려야할지 아니면 3년이 다 돼 가는 이중생활을 끝내고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할지 고민이다.
솔직히 등록금 때문에 아들에게 차라리 고등학교 졸업후 직장 알아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부인과도 끝장날 거 같다.
24시간 경비를 서고, 다음날 24시간 쉬면서 그가 받는 월급은 110만 2916원. 시급으로 계산하면 3,056원이다.
법정 최저임금(4320원)에도 못 미치는 돈이지만 용역업체는 시급 4,583원이라고 우긴다.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는 일하는 게 아니므로 월 360시간이 아닌 240시간만 일하는 걸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틀에 한번씩 1년 180일을 야근해도 110만원 밖에는 손에 쥘 수 없어 부인도 생활전선에 뛰어든 지 오래됐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의 월급은 100만원. 따라서 210만원으로 그는 노모를 포함한 4가족 생계를 끌고 가야 한다.
달마다 빠질 수 없는 아들 학원비, 각종 공과금, 통신비, 식료품비, 교통비, 병원비 등으로 지출하고 나면 거짓말처럼 딱 맞는다. 210만원이라는 돈에 4명의 삶을 끼워 맞추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때문에 저축과 외식 두 글자는 그의 수첩에서 없어진지 오래됐다. 여행은 10여 년 전에 했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나마 젊은 시절 집 한 칸 마련해 놓아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마이너스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점점 돈 들어가는 곳이 많아지다 보니 수년간 지속해왔던 모임도 하나 둘 깨야할 형편이다.
지난주에도 한 모임에서 ''벙개하자''는 전화가 왔지만 회사 회식 때문에 못 간다는 없는 핑계를 만들어 대기도 했다.
회비가 많이 밀린 모임은 친구들 얼굴 보기도 민망해서 왕래를 끊은 지도 오래됐다. 이렇게 돈 쓰는 게 두려운 상황인데도 주책없이 늘어만 가는 담뱃값은 김 씨를 더 난처하게 만든다.
이런 그에게 최근에는 몹쓸 고민까지 생겼다. 올해 90살을 넘은 노모의 건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앞을 못 보시고, 허리는 전혀 쓰질 못하시는데 그냥 진통제로 버티시고 계시는 중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고개를 떨궜다.
그렇다고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니 겁이 난다. 어머니가 무슨 병에 걸려 있는지, 살날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병원에서 알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나쁜 짓이라고는 털끝만큼도 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결국에는 천하의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제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가끔씩은 치밀어 오르는 화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이런 그를 더 울화통 터지게 하는 일이 지난주에 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을 최저임금 산정과 관련한 뉴스를 들으면 그는 자기도 몰래 머리카락이 쭈뼛해진다고 한다.
"보나마나 자기들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고,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알기는 할까요? 임금을 올리면 자기네들이 가져갈 돈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건데, 그러면 노동자들에게는 일을 많이 시키고 월급은 조금 주면서 자기는 손해를 안보겠다는 거는 도둑놈 심보 아닌가요?"
그는 시간이라도 내서 최저임금위원회에 가서 데모라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