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하반기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하향조정해 숨을 고르면서 물가를 낮추어 서민생활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 요지다.
그 가운데 공공요금 인상 부분을 보면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는 시내버스, 지하철, 상하수도 요금 인상을 최근 3년간 평균 물가상승률인 3.46% 초반 이내로 유도 하겠다 한다. 그런데 이날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낸 물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보면 연간물가상승률 평균을 3.46%로 잡고 그동안 요금이 동결된 햇수를 여기에 곱한 만큼은 올려도 좋다고 한다. 그리하면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요금을 최대 10%에서 15%까지 올릴 수 있다. 상하수도 요금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올리게 된다.
공공재정은 허술한 지출구조로 메말랐고, 호화사치스런 토목건설 부문 투자로 끌어다 쓴 빚은 늘고, 그렇게 풀린 돈에 의해 물가는 오르고, 서민들은 물가가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니 물가 잡겠다는 발표와 올리라는 가이드라인이 동시에 발표되는 것이다. 총체적인 컨트롤 불능 상태임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 글로벌 경제위기도 가장 먼저 탈출했고 수출실적도 기록 경신을 이어가는데 경제는 왜 이 모양일까?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 - 정부가 대기업을 밀어줘 대기업이 성장하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국민에게 고루 돌아갈 거라는 대통령의 포부였다. 과연 그랬는지 통계로 살펴보자.
삼성,현대,SK,LG,포스코,롯데,현대중공업,한화,한진 등 10대 그룹을 선정해 최근 4년간 국가경제 기여도를 평가한 내용을 보면 고용, 투자, 세금, 협력사 거래 분야에서 국가경제 기여도가 계속 떨어지는 중이다.[출처=2011.4. 한겨레21]
우선 매출과 고용, 10대 대기업의 매출은 지난 3년간 206조3천억 원에서 309조원으로 50% 늘어났다. 영업이익도 19조원에서 31조원으로 63% 늘었다. 그러나 10대 대기업의 고용은 6.9% 늘었을 뿐이고, 매출액 10억 원당 고용인원 수(고용유발계수)도 1.08명에서 0.84명으로 나타났다. 오르락 내리락이 아니고 계속 밑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세금은 잘 냈을까? 이걸 알려면 ''''유효세율''''이라는 걸 들여다봐야 한다. 기업의 세금 내기 전 순이익과 세금을 비교해 보는 것인데 흑자를 낸 대기업의 유효세율은 2007년 22.4%에서 2010년 16.8%로 뚝 떨어졌다. 감세정책 덕분이다.
환율 높게 유지했지, 금리 낮췄지, 세금도 깎아줬지, 대대적인 비정규직 전환도 그러려니 해줬지, 불평등한 중소기업과의 하도급 거래도 못 본 척 해줬다. 수출 대기업들에게 할 만큼 했지만 고용은 줄이고 세금은 덜 내니 국고와 서민 주머니는 텅 비어 가는 것이다.
◈ 수출로 번 많은 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A. 해외 현지 공장에서 현지인을 고용해 물건을 만들고 현지에서 파니 돈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 자동차의 에를 들면 국내에서 만들어 국내에서 파는 게 10이면 국내에서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게 15, 해외에서 만들어 해외에서 파는 게 15 쯤이다. 해외 생산비중이 계속 높아질수록 국내고용은 줄어들고 매출로 번 돈이 국내로 들어오는 규모도 줄어든다.
#B. 수익 중 상당 부분은 배당금으로 대주주들에게 지급된다. 한진중공업이 부산 영도조선소가 껍데기만 남고 노동자는 강제해고 당하는 판에 주주들은 주식배당, 현금배당 챙겨간 것처럼 돈 가진 사람 주머니로 이익이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C. 배당금에서 우리 겨레가 아닌 외국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SK텔레콤은 배당의 40% 이상이 외국인에게 돌아간다. 현대자동차는 25% 이상을 외국인에게 넘겨야 한다. 이름 앞에 외국 이름이 새로 붙은 회사들이야 이미 경영권 자체가 넘어갔으니 말하나마나이다.
#D. 법인세 최고세율이 2008년 25%였다. 하지만 각종 감면혜택이 생겨나면서 삼성전자는 6.5%, 현대자동차는 19.3%, SK텔레콤은 15.2%로 법인세율이 대폭 내렸다. 외국인 투자비중의 변동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삼성전자는 국가에 낸 세금과 외국인에게 가져다주는 배당금 액수가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텔레콤은 국가에 낸 세금보다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돈이 더 많다.
◈ 그래도 우리 기업인데 잘 벌면 좋은 것 아닌가?
당연하지만 그렇게 순진하게 기대할 일만은 아니다. 최근 문제가 된 한진중공업을 예로 들어보자. 한진중공업 그룹은 사업을 하는 한진중공업과 돈을 갖고 계열회사들을 지배하는 한진홀딩스로 나뉘어 있다. 필리핀 조선소도 결국은 한진홀딩스가 지배한다. 부산에 껍데기만 남아도 필리핀에서 돈을 벌면 회장 일가족은 한진홀딩스를 통해 배당금을 잔뜩 받는다. 조 회장의 경우 이미 부산 한진중공업 지분은 1%만 남겨 놓았고, 한진홀딩스 지분을 49%로 크게 늘려 놓았다 한다. 그러니 이제는 부산보다 필리핀에서 돈을 벌수록 개인적 이득이 크다. 이미 그것까지 계산해 주식을 사고팔며 홀딩스와 중공업의 지분을 거꾸로 바꿔치기 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금은 제대로 낼까? 한진홀딩스가 홍콩,덴마크,사이프러스에 투자회사를 갖고 있다 하는데 사이프러스는 유명한 조세피난처이다. 세계 각국의 부자들이 세금 안내려고 가짜 회사 세우는 그 지역에 한진도 투자사를 갖고 있다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닐까? 오해라면 청문회에 나와서 설명을 해 달라.
지금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서도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저임금과 작업환경 개선, 노동탄압 철폐 등을 내걸고 한진중공업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7월 3일엔 대규모 규탄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2007년 이후 작업장에서 숨진 노동자만 31명이니 언제고 터질 일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자본은 돈을 쫓아 뛰며 결국 나라와 국민을 저버린다. 어느 나라에 자리를 잡든 이익을 위해 사람을 저버린다. 사람의 가치는 버려지고 가격표만 남아 가격이 오르면 버려지고 싸면 비인간적으로 착취당하기 마련이다.
인간의 가치는 사라지고 가격만 남은 시대에서 최소한의 가치라도 유지되도록 통제와 조정을 맡은 힘이 공권력이다. 공권력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들 있으니 해고노동자, 철거민에게 물대포 쏘는 일에나 몰두하는 것 아니겠나. 나라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