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리모델링 사업이란 4대강 제방 옆 저지대에 조성돼 있는 농지의 고도를 평균 2.5m 정도 높이는 사업을 말한다. 기존 농지의 흙을 50cm 걷어 낸 뒤 4대강에서 퍼 올린 준설토를 2.5m 정도 깔고 그 위에 다시 원래의 흙을 덮어 샌드위치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버릴 곳이 마땅치 않은 준설토를 처리하고, 침수가 잦은 저지대의 농지를 개량하기 위한 명분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 때문에 때 아닌 홍수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농지만 높이고 마을은 그대로 나둬 결국 마을이 홍수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구미시 해평면 올곡리 주민 김섬승(76)씨의 집은 축사 바로 옆까지 농지를 돋우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상대적으로 집이 1~2미터 정도 낮아지게 돼 김 씨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김씨는 "농지를 도로보다 더 높게 돋우고 있는데 앞으로 장마가 오면 빗물을 어이 감당할 건지 요새 도대체 잠이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 집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김태수(77)씨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저지대인 집의 앞과 옆 사방에서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되면서 김씨의 집은 마치 포탄을 맞은 것처럼 움푹 페인 형상이었다.
뒤에는 산까지 있어서 측량 나온 사람들에게 집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했다고 한다. 김씨로서는 이제 면사무소에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다는 김씨는 "잘 살고 있던 집이 어느 날 갑자기 우습게 됐다"며 "힘없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2~3미터씩 높아진 논의 한쪽 끝자락이 별다른 조치 없이 낭떠러지처럼 방치된 곳도 많았다.
경북 상주시 중동면의 죽암 리모델링 지구 역시 마을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 쪽 끝의 일부는 이미 빗물에 일부가 유실돼 있었다. 만약 큰비에 농지가 무너져 내려 토사가 하천을 덮치면 하천 상류쪽 죽암리 마을은 물에 잠길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함께 동행한 ''강과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이국진 사무국장은 "5월초에 왔던 비로도 이 모양인데 이대로 두면 이번 장마철에 붕괴될 개연성이 커 보인다"면서 "토사가 수로를 막데 되면 주변이 물바다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리모델링 지구에서도 이날 농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가로 50cm 세로 50cm 크기의 새로 조성된 배수로를 통해 인근 낙동강 본류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리모델링 사업으로 농지가 높아진 뒤에는 과연 이 정도의 배수로로 그 많은 물을 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농지 리모델링 사업의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이 사업으로 인해 홍수터(room for the river)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홍수터란 비가 왔을 때 빗물이 강으로 곧바로 흘러가지 않고 잠시 머물러 홍수에 대비해 완충작용을 하는 습지 같은 저지대의 공간(저류지)을 말한다. 따라서 리모델링 사업은 이 홍수터를 모조리 없애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 김정수 부소장은 "홍수터는 큰 비가 왔을 때는 빗물을 받아주는 곳인데 홍수터가 없어져 빗물이 한꺼번에 강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면 강에 그만큼 위험이 전가될 수 밖에 없다"며 "낙동강의 하류인 부산 경남 지역이 홍수터 실종의 최대 피해지역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농경지 리모델링 대상지는 전국적으로 8,000 ha. 여의도 넓이의 30배에 해당하는 홍수터가 사라지는 것이다.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진행중인 4대강 사업이 오히려 홍수 위험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