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신군부의 정권 장악 음모에 맞선 시민들은 광주에서 자발적인 공동체적 질서를 이루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들이 광주의 주인이었을 때는 강·절도 범죄도 무질서도 없었다.
상상하기 힘든 비극으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광주의 영령들은 우리에게 민주의 가치와 인권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며 잠자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다.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을 통해 5·18 정신이 부활했고 인권과 평화운동으로 되살아났다. 이 운동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닌 그냥 ''5·18 민주화운동''인 것은 광주에서 시작돼서 광주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것은 물론 아시아 지역 민주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5·18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5·18 정신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반면 우리의 5·18은 자꾸 광주로 회귀하고 망각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국가적 기념일에 대통령이 굳이 참석을 피하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5·18 민주화운동은 1960년 4·19혁명에서 그 씨가 뿌려지고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열매를 맺은 한국 민주화를 향한 도정에서 시대의 획을 긋는 거대한 분수령이었습니다."
이 말은 지난해 정운찬 총리가 대독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사의 한 대목이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해 30주년이라는 뜻깊은 기념일임에도 외교행사를 이유로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도 이 대통령 대신 김황식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5·18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후 3년 연속 참석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광주에는 5·18 정신을 기리는 추모행사 열기가 뜨겁다. 금남로와 광주역, 5·18 묘지입구 등에는 각종 대형 홍보탑과 현수막, 태극기가 내걸려 추모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5·18 묘역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광주 이외에 다른 지역에서 추모의 열기는 뜨겁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익숙한 또 하나의 기념일로 지나치고 있다.
반면 최근 일각에서는 이승만 재평가에 이어 5·16을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5·16의 그림자가 5·18 정신을 짓누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5·18이 그냥 광주의 5·18로 머물지 않고 또 5·16 그늘에 가려지지 않기 위해 오늘 우리가 할 일은 5·18정신을 다시 되새기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