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보니 건강이 복인걸 알겠어요"

김상훈 부평힘찬병원 원장과 환자들의 ''건강산행''

CBS 노컷뉴스는 산림청 녹색사업단과 공동 기획으로 ''2011 소통의 숲, 동행!''이라는 주제로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숲의 생태적·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소통과 치유의 장(場)''으로서 숲이 가지는 뛰어난 사회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세 번째 초대손님은 김상훈 부평힘찬병원 원장과 그의 환자들입니다. 이들은 병원을 벗어나 2시간 여 동안 북한산 삼천사 계곡을 거닐며 의사와 환자가 아닌 친구로 동행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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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황사가 지나가고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말간 해가 고개를 들었다. 비가 내린 뒤에 만난 북한산은 녹빛 나무들과 활짝 핀 꽃들로 싱싱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도심의 소음 대신 산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니 귀가 정화되는 듯 하다.

지난 4일 북한산은 그 어느 때 보다 산행하기 좋은 날이었다.

기다림이 즐거운 이유도 산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가장 먼저 도착한 김상훈 부평힘찬병원 원장은 환자들이 올 때까지 기꺼이 기다림을 자처했다.

일행들이 모두 모이기까지 숲을 거닐고 계곡물 소리를 듣고, 꽃향기를 맡는 동안 지루할 새가 없다.

도심에서는 단 5분도 못 견디게 싫증나던 기다림이 이곳에서는 즐거운 기대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북한산 삼천사계곡은 인근에 사찰인 ''삼천사''와 사적인 ''북한산성''이 위치해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김상훈 원장을 포함한 일행들도 이맘때 풍경이 가장 훌륭하다는 삼천사계곡으로 향했다.

◈ 나무와 꽃이 유혹하는 손길에 마음을 뺏기다

"오랜만에 산에 오니 도시하고는 공기부터가 다르네. 산에서는 흙내 같기도 하고, 꽃향기 같기도 한 특유의 향내가 나서 좋아."

산길을 따라 걷던 일행들은 오랜만에 산에 오르는 기분을 만끽했다.

김상훈 원장은 "솔직히 그동안 일이 너무 바빠서 산에 자주 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도 오전에 수술이 잡혀있어 오후 2시가 돼서야 겨우 짬을 내서 나온 것이다.

다른 일행들도 산행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50~70대 고령에 나이가 들면서 생긴 지병 때문에 산을 오르는 것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여보현(67) 씨는 겨우 두 달 전에 무릎에 인공관절수술을 받은 직후라 더욱 힘겨워 보였다.

산행을 우려하는 일행들에게 여 씨는 "아무래도 병원에서는 선생님이 바쁘니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지. 이번 기회에 바람도 쐬고 선생님께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라며 웃는다.

수술하기 전에는 관절염을 앓는 중에도 산 정상에 올랐을 정도로 등산을 좋아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투다.

그런 여 씨에게 김 원장은 "괜히 무리했다가 다시 아프다고 내 탓은 하지 말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도 내심 우려가 되는 듯 곁에서 "관절수술은 수술 보다 재활이 더 중요하다"며 "무리한 등산 보다는 가벼운 산책이 좋고, 욕조에 뜨거운 물로 찜질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며 잔소리를 해댄다.

이날 함께 산행에 오른 신수자(59) 씨와 이정헌(70) 씨도 여 씨를 옆에서 거들었다.

산을 오르내리는 중에도 연방 "괜찮냐"고 묻고 "손을 잡으라"는 말로 힘을 보탰다. 처음 본 사이임에도 마치 오래된 친구인냥 손을 내밀고 어깨를 빌려주며 서로의 곁을 내주는 모습이었다.

계곡에 다다르자 울창한 나무들이 푸른 손짓으로 일행을 부르고, 만개한 꽃들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있다. 그 가운데 청량하게 흐르는 계곡물은 보고만 있어도 메마른 마음까지 흠뻑 적시는 듯 하다.

유혹하는 그 손길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일까. 계곡 주변에 모여 앉아 발을 담그며 담소를 나누는 일행들은 의사나 환자라기보다는 친구 같이 격이 없어 보였다.

◈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숲에서 치유를 얻는다

일행 중 이정헌 씨는 가장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해 보였다. 크고 작은 잔병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수술을 받을 정도로 아픈 곳은 없다고 한다.

이 씨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적극적인 등산 마니아다.

"지금 동네에서 만든 산악회에서도 활동하고 있어. 기회만 되면 산에 오르는 편인데, 집에서 가까운 계양산이나 만월산에 자주 가는 편이야." 산에 오르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그 반대란다.


이 씨는 "등산을 한 뒤에 흘리는 땀은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과는 차원이 달라. 진땀이 나면서 몸 속 노폐물이 쫙 빠지는 기분"이라며 "그렇게 몸이 가뿐해 지고 그런 기분이 한 3일은 가는 것 같아. 그렇게 꾸준히 산을 타는 것이 지금도 건강한 이유"라는 것이다.

산행의 이로움이 육체적 건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김상훈 원장은 이를 ''산림욕''이나 ''피톤치드''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행복감을 느낄 때 나오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햇볕이 좋은 한낮에 많이 생성되고 규칙적인 운동과 긍정적인 사고가 이 호르몬 분비를 돕는다"며 "그래서 숲에서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삼림욕이 기분전환에도 좋고 정서적 안정감을 높인다"는 말이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로 해충, 곰팡이, 병원균을 없애는 작용을 한다.

김 원장은 "피톤치드는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를 낮추게 함으로써 긍정적인 심리 상태를 만든다"며 정서 치유의 한 방법으로 숲길 걷기를 추천했다.

그 의미를 이날 모인 사람들은 체감하고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 숲을 걸으니 마음도 한결 편해지고 웃음소리도 더 커졌다. 그 안에서 의사와 환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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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서 인생의 희로애락 배우다

혹자는 왜 다시 내려올 산을 힘들게 올라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묻는다. 그에게 산이 답한다. 산행은 ''고행''이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견뎌내야 정상에 서는 기쁨을 안다. 인간이 제왕인 도심을 벗어나야 자연의 경외감을 배울 것이다.

"산을 올라갈 때는 너무 힘드니까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지. 그치만 그걸 참고 견뎌서 정상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랄까. 그게 좋으니까 힘들어도 산을 오르는 게 아니겠어."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의미의 고행을 겪는다. 몸이 노쇠하고 병이 들어서 힘든 시간을 보낸 뒤 다시금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작년에 관절내시경 수술을 받은 신수자 씨는 "아프니까 그제야 건강한 게 얼마나 복인지 알겠더라고.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할 일이야"라며 "몸이 성할 때 많이 보고, 놀러 다니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고 힘 줘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공감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 씨는 이날 오후에도 가족과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어버이날을 기념해 가족들이 시간을 쪼개서 가는 여행이라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겁단다.

신 씨를 비롯한 일행들은 모두 자식을 둔 부모였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데 그야말로 온 몸을 바친다.

그래서 자식 농사가 끝난 다음에 보면 아프고 병들고 성한 곳 없는 것이리라. "자식 키우는 게 힘들지, 내 자식이라도 내 맘대로 크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자식은 ''인꽃(사람꽃)''이야. 그 보는 재미에 사는 거지."

자식이 인꽃이라면 부모는 숲일 것이다. 부모의 무한한 애정과 희생은 숲이 주는 경이로움과 다르지 않다. 한바탕 즐거운 수다가 끝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일행 중 한 명이 가방에서 검은 봉지를 꺼내 김상훈 원장의 손에 쥐어준다. ''칡즙''이 가득 담긴 봉지였다. 그러면서 "건강을 챙기시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 숲의 넉넉함에 모두가 말없이 웃었다.

▶북한산 삼천사계곡 대중교통 찾아가기 : 지하철 연신내역 3번 출구 또는 불광역 1번 출구 하차 - 버스정류장에서 7211번 탑승 후 삼천사 입구 하차, 또는 택시로 삼천사 입구까지 이동

※이 시리즈는 산림청 녹색사업단의 복권기금(녹색자금)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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