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레의 작업에는 네온등이 등장한다. 이 네온등은 따스함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 "네온은 항상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나의 작품에 시간과 리듬같은 요소를 포함시켜 주었다"고 그는 말한다. 요즘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LED조명이 있지만, 모렐레의 단순한 네온 선형은 LED와는 다른 담백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동양수묵화에서 잘 늘어뜨린 가지 하나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듯이.
모렐레의 작품을 대하면 ''예술은 소풍과 같다''는 그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즐겁고 유쾌하다. 그는 작업 생활 10년만에 작가의 주관을 배제한 구성주의에 대해 탈피를 선언했다."1960년에 나는 왠지 고전적이고 조화로운 구성주의에 싫증이 났다. 그래서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혹은 적어도 나를 바로크 미니멀리스트(주관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미니멀한)에 가깝게 갈 수 있게 하는 구조를 찾으려 노력하였다.이런 노력의 바탕에 놓인 나의 목표란, 예측할 수 없고 비규칙적인 숫자들, 예를 들면 전화번호부에 있는 숫자들이나 파이(원주율)와 같이 불규칙적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숫자들 속에 존재하는 단위들의 단순한 규칙들을 통하여 주관적인 결정들을 성취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관객들은 우연성이 발견되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모렐레의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작품세계는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주연화 평론가는 그를 현대미술의 산 증인이자 선구자로 재조명해야 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모렐레는 비록 특정 조류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는 회화란 무엇인가?미술이란 무엇인가? 작품과 관객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새로운 재료들에 대한 실험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그 고민의 궤적들이 현대미술의 다양한 영역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를 현대미술 자체의 산 증인이자 선구자로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주씨의 이 말에 적극 공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현대 개념미술에 대해 내가 느끼는 역거움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설치 위주의 개념미술 전시를 접하면서 너무 설명적이고, 정보량이 많아 머리가 쥐나고 속이 메슥거리는 경우를 가끔 경험한다. 이는 설명을 들어도 이성적으로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감성적으로도 아무런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때로는 쓰레기로 채워진 나의 머리를 쓰레기통에 쳐박아넣고 싶을 정도이다. 반면에 모렐레는 현대미술에 대한 나의 이런 거부감을 반감시켜주었다. 관객의 예술적 감성을 건드려 주는 것을 제 1의 신조로 삼고, 그것을 작품을 통해 느끼게 해준 모렐레는 내게 있어서 가히 현대미술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이자 현대미술의 진정한 선구자라 할만하다.
출품작품 수:회화, 설치 등 30여점
전시장소:갤러리현대 신관(종로구 사간동 80/전화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