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마르크스 · 엥겔스의 한숨''

한성필 개인전, ''Dual Realities'',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5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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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엥겔스의 모형 동상이 서울의 한 전시관에서 선을 보였다. 한성필의 작품 ''VOID,텅빈 공간 혹은 공허함''(아래 작품)은 사면이 온통 하얀 텅빈 방안에 마르크스 ·엥겔스 동상만을 덩그러니 놓아둔 것이다. 베를린 거리에 세워진 원래 크기보다 작아졌다.오른편에 우뚝 서 있는 자세의 엥겔스는 3미터(307cm)에서 2미터(202cm)로 축소되었고, 왼편에 앉아 있는 모습의 마르크스는 2.7미터(277cm)에서 1.5미터로 낮아졌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동상은 독일 베를린 중심부의 ''마르크스 ·엥겔스 광장'' 반대편에서 서쪽에 등을 돌린 채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시는 작년 가을 지하철 공사를 하면서 이 동상을 광장 안의 다른 곳, 좀 더 외진 곳으로 옮겼다.지금 이 동상의 시선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한 작가는 동상을 옮기기 전의 모습을 작품 ''Bandi Status''(맨 위 작품 )에 담았다. 작품 속 두 인물의 이마에 하얀 측량점이 Bindi(힌두교도 여자들이 이마 중앙에 찍는 장식용 점)처럼 찍혀 있음을 볼 수 있다.동트기 전에 동상 뒤편의 청록의 숲과 노란 빛의 인공조명,푸르스름한 바탕에 불그레한 빛이 차오르는듯한 하늘 빛, 그리고 청동 동상과 청동빛이 감도는 광장 바닥이 조화를 이루며, 세계를 움직였던 두 사상가의 광휘를 드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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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마르크스 엥겔스가 등장하는 설치작품 ''VOID,텅빈 공간 혹은 공허함''은 사진작품 ''Bandi Status''를 3차원 공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빛을 잃었다. 이후 자본주의가 우월한 듯 했지만, 그 역시 심각한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며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 사회를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 동상의 시선은 동독 사회주의의 건축학적 위업인 386미터의 텔레비전 타워를 향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 타워에 등을 돌린 채 서쪽을 응시한다. 진중권씨는 이 상황에 대해 이렇게 해석한다. "과거에 사회주의의 위대함을 증언하던 이 기념물은 새로 신설될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올 관광객들의 눈요기기 감이 될 예정이다. 그 동상은 우리 속에 들어앉아 구경거리 노릇을 하는 동물원의 거주자들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청동이라는 물질이 수치심을 못 느낀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한 작가는 ''VOID,텅빈 공간 혹은 공허함'' 작품에서 이상적 가치지향의 실종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하얀 방은 설원에서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화이트 아웃(시야 상실)''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동과 서의 구분이 모호해진 상황에서 가치지향을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의 단면을 드내내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가 <공산당 선언>(1848년)에서 외쳤던 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어떤 한 유령이 , 지금 유럽의 뒷덜미가 쭈뼛거리도록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유럽의 모든 낡은 세력들은 이 유령을 내쫓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섬뜩한 첫머리로 시작한 이 선언은 말미를 낙관 넘치는 문장들로 끝낸다."프롤레타리아는 이제 자신들을 얽어매고 있던 족쇄 이외에 잃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승리로 쟁취할 세계가 앞에 있다.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마르크스가 추구한 세계는 어떤 것이었는가? 마르크스는 노동으로 지쳐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하루의 아주 일부 시간에 하는 노동으로 사회 전체의 생계가 해결되고, 나머지 시간은 시를 읊고 음악을 즐기며 하고 싶은 낚시를 가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다.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을 볼 때 이런 세상은 꿈같은 이야기다.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경쟁사회, 노동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청년실업, 한낱 소모품으로로 전락한 비정규직 문제에 이르면, 여가는 호사일 뿐이니... 두 아저씨가 살아있다면 한 숨만 지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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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필(39세)은 방진막이나 가림막에 그려진 회화와 건축물을 사진작업으로 결합시켜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로마역 광장과 베르사이유 복원작업, 세인트 폴 대성당 등 유럽 각지의 풍경을 그만의 독특한 사진작업으로 새로운 맛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선사한다. 세 점의 영상작업과 설치작업,사진 작업 등 모두 16점의 전시를 통해 현실 속에서 이상을 경험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담아낸다.

전시기간:5월8일까지
전시장소: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서울 종로구 소격동 149-2)
문의:02-723-6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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