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풍경, 찬란한 슬픔의 색채''

김혜련, "그림에 새긴 문자"전, 소마미술관, 4.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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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비무장지대)가 ''찬란한 슬픔의 색채''로 우리에게 선을 보였다. 화가 김혜련의 대형작품 ''DMZ풍경, 2009''는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 작가가 가슴으로 그린 DMZ 풍경은 슬프지만 찬란하고, 그 찬란함은 슬프기 때문에 더욱 눈부신 색채로 피어났다. 그 눈부신 색채는 더 이상 슬픔이 없는 세상을 향한 작가의 염원을 담고 있다.

''DMZ,2009''작품은 소마미술관의 넓다란 한 전시관의 3면을 두르며, DMZ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펼쳐보이는 대서사시로 다가온다. 150호 (가로 2미터, 세로 1.5미터 크기)의 커다란 유화 그림이 무려 30폭이나 되는 거대한 연작은 두줄로 펼쳐져 있다. 높이 3미터에 가로 길이만 30미터나 되니, 가히 155마일에 이르는 DMZ를 상징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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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30개 작품에는 작품 하나하나에 DMZ풍경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면 중앙에 임진강이 가로지르는 3단 구도의 풍경이 주를 이루고, 산 능선(언덕)과 그 너머(하늘 또는,북녘 땅)의 풍경, 그리고 군사분계선 철조망과 그 너머의 풍경도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밝은 색조가 주를 이루지만,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숲과 같은 비극적 풍경에서는 시커멓거나 짙은 녹색, 검붉은 색깔의 어두운 색조로 표현된다. 푸른 빛으로 빛나며 도도하게 흐르는 임진강의 겨울풍경은 티베트의 알롱창포 강처럼 장대함이 느껴지고, 무지개 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임진강의 석양풍경은 중국 구채구의 영롱한 호수풍경 못지 않다. 대각선으로 늘어뜨린 한가닥 철조망과 달모양의 구름을 형상화한 작품은 달을 배경으로 매화 한줄기를 그린 수묵화처럼 운치가 있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다양한 변주를 이뤄낸 작가의 솜씨가 놀라운 뿐이다.

김혜련 작가에게 임진강은 노란색 강이다. 연작의 첫 출발도 노란색 강이요, 마지막도 노란색 강이다. 30개 연작중 노란색 강이 세번 등장하는데, 2009년 가을에 연작의 첫 문을 열면서 한번, 중간에 한번,그리고 2009년 말에 연작을 마무리하면서 등장한다. 처음엔 화면의 중간을 노란색 임진강이 가로지르는 3단구도로, 중간엔 사실적인 강물이 왼쪽 하단에 걸쳐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노란색 강으로, 마지막엔 화면 전체를 노란색 강으로 덮어버렸다. 노란색은 평화를 상징한다. 첫 작품의 진한 노란색 강은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 노란색 안에 불안이 배어 있다. 중간작품의 노란색 강은 회색의 실제 강을 조금씩 압도해가는 형국이다.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긴장과 공포 분위기를 밀어내듯이.마지막 노란색 강은 화면전체가 노란색으로 넘치고, 광명의 햇살을 받은 강줄기가 화면을 반으로 쪼개며 힘차게 일직선으로 흘러간다. ''내게 강같은 평화''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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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억압을 상징하는 DMZ의 철조망 역시 다양하게 변주된다. 자유로를 따라 죽 펼쳐진 철조망은 수려한 임진강의 조망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묘사된다. 철조망은 또한 잘 보존된 숲의 아름다움이 컴컴한 동굴처럼 비쳐지게 하는 금단의 족쇄이기도 하다. 그 철조망 건너편 강에서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화면을 대하노라면 금세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지고 가슴아린 슬픔이 저며온다.하지만 그것은 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정반대의 이미지로 변신하기도 한다. <강물>작품에서 강 위의 녹아 흘러내리듯한 철조망은 강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갈대처럼 비쳐진다. ''그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장4절)는 염원이 느껴진다.

그림으로 쓴 역사 ''DMZ 2009''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다. 김혜련 작가(47세)는 "분단의 비극이 서린 금단의 땅이기에 자연이 잘 보존된, 이 역설의 현실은 2009년으로 끝내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2004년에도 같은 주제로 작은 크기의 작업을 했던 김 작가에게 DMZ는 화두가 되었다. 그는 1990년에 시작한 11년의 독일유학생활을 마치고 2001년 귀국하여 서울생활을 하다가 2003년 파주출판단지 헤이리에 작업실을 마련했다.2005년 파주시 탄현면에 둥지를 튼 이래 지금까지 ''자유로''와 임진강, DMZ를 눈에 담고, 가슴에 품으며 살고 있다. 독일유학생활 동안 동독이 무너진 이후 재건 과정을 생생히 지켜본 김혜련 작가는 임진강에서 10년 세월을 보내는 동안 분단조국의 아픔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 그곳의 풍광을 ''찬란한 슬픔의 색채''로 변주해낸 것이다.''그 찬란한 슬픔의 색채''는 2009년의 DMZ의 역사는 이러한 것이었다는 역사적 기록이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염원을 담은 ''생명과 평화의 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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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그린 대서사시 ''DMZ, 2009''는 작가의 고통스런 땀방울의 결실이다. 150호 크기의 30개 연작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하루에 한점씩 그린다 해도 꼬박 한달이 걸린다. 2009년 가을에 시작해 그해 연말에 마쳤으니 대략 넉달이 걸린 셈이다. 대작을 이어가기까지 힘겨운 고통의 흔적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철조망> 작품에서 달모양의 하얀뭉치가 있다. 그건 작가가 위안을 받았던 인상적인 장면을 반영한 것이다. 김 작가는 이 작품 제작 초기에 심신이 지쳐 쓰러질 상황이 되었을 때, 문득 창밖에 보이는 구름이 달빛모양이 뭉쳐지는 것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김혜련 작가의 뜨거운 가슴, 뛰어난 조형언어 감각, 정직한 땀방울은 ''찬란한 슬픔의 색채''로 거듭난 DMZ풍경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을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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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4.1-4.24
전시장소:소마미술관 제 6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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