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 1호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비슷한 사유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의 피해보상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 "대법원 위헌 결정으로 무죄 이유 현저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박홍우 수석부장판사)는 323일간 구금됐다 풀려난 황모(58)씨 등 8명에게 국가가 4억1,500여만원을 지급하도록 형사보상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황씨 등 8명은 지난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죄로 처벌됐다 이후 재심을 통해 면소 판결을 받았다.
이번 결정은 긴급조치 위반만으로 면소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첫 형사보상 결정이어서 비슷한 보상 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황씨 등은 유죄판결이 확정된 뒤 2009년부터 2010년에 재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며 "긴급조치 1호는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위헌.무효 결정을 한 바 있어 이를 적용해 기소된 사건은 무죄를 받을 만한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형사보상법은 면소를 받은 자가 면소가 아니었다면 무죄를 받을 명백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면 구금기간에 대해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며 "구금 방식과 기간 그리고 이로 인한 재산손실 등을 감안해 보상액을 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면소 판결을 받은 해에 구금일수 하루당 인정 가능한 최대 금액인 16만원과 16만4,400원을 기준으로 보상액을 산정했다.
황씨는 경북대 재학 시절인 지난 1974년 유신헌법에 반대하거나 긴급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결의하고 선전문을 배포한 혐의(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로 기소돼 징역 10년형이 확정됐으며 2009년 12월 재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이전까지 법원은 긴급조치가 합헌이라는 전제 하에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법이 폐지됐으므로 면소"라고 판결해 왔다.
◈긴급조치란?
긴급조치 1호는 천재.지변이나 재정.경제상 위기,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는 유신헌법(1972년 제정) 53조에 따라 1974년 1월 선포됐다.
이후 긴급조치는 이듬해에 걸쳐 9호까지 선포됐고, 1980년 10월27일 제5공화국 헌법의 제정, 공포에 따라 유신헌법이 폐지되면서 효력을 상실했다.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대표적인 악법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16일 "당시 대통령 긴급조치는 국회의 동의 없이 공포된 것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위헌 판결했다.
대법원은 또 1975년을 전후로 내려진 긴급조치 위반 대법원 판례를 모두 폐기하기도 했다.
◈무죄판결에 따른 형사보상 물꼬 트이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은 58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긴급조치 1호''를 위반했다는 것이 유일한 공소사실이고 재심에서 면소판결까지 이끌어낸 사람들이 이번 결정과 같이 형사보상 대상에 포함된다.
비슷하게 옥고를 치뤘지만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피고인들은 일단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야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47조는 법령이 위헌으로 판명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의 위헌.무효 판결을 이유로 재심을 시작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다.
이에 따라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에 대한 새로운 판례가 나오거나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진행중인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한 위헌 결정에 따라 재심개시 대상 사건의 폭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