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을 능가하는 폭행의 행태도 문제지만, 돈이면 법질서를 마음껏 무시해도 좋다는 재벌2세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경찰은 지난 6일 최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오늘은 맷값폭행 사태가 왜 일어나게 됐는지 사회적, 심리적 각도에서 원인을 짚어보겠다.
▶ 최씨에 대한 사법처리가 어떤 수순을 밟고 있나?
= 이 사건은 서울지방경찰청 폭력계에서 수사가 진행중이다.
경찰은 최씨가 범죄사실에 대해 대부분 시인하고 폭행 현장에 있었던 회사 임직원들의 진술도 부합하는 등 범죄혐의가 인정돼 6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특히 최씨가 맷값으로 지불한 2천만원도 법인계좌에서 인출한 사실이 확인돼 최씨에 대해 횡령 혐의도 적용했다.
▶ 구체적 혐의는?
= 한마디로 엽기적이고, 조폭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최 전 대표는 지난 10월 18일 "한 대에 100만 원"이라며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운전기사 유 모씨를 야구 방망이로 10여 차례 내리쳤다.
유씨가 발버둥 치자 "지금부터는 한 대에 300만원씩 3대를 더 맞으라"며 추가로 2대를 더 때리고, 일어난 최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 차례 더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게 무차별 폭행이 끝난 후 최 전 대표는 맷값으로 2,000만원을 줬다.
회사측은 당시 사과를 요구하는 화물차 기사 유씨에게 "돈을 더 받기 위해 일부러 맞았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화물차 운전기사 유씨는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가 물류, 유통회사인 M&M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화물연대를 탈퇴하고 이후에도 가입해서는 안된다''는 사측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자, 당시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다.
경찰은 최 전 대표가 임직원들에게도 ''엎드려 뻗쳐''를 시킨 뒤 삽자루로 때리거나, 중견간부가 최 전 대표로부터 골프채로 맞았다거나, 사냥개를 풀어놓고 여직원을 위협한 사례 등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도 확인하고 있다.
▶ 구속여부는 언제 결정되나?
= 8일 오전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오늘 중으로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서울경찰청은 영장을 신청하면서 "최씨가 우월한 지위를 마치 초법적 특권적 지위로 착각한 나머지 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매값을 지불한 행위는 국가 법질서 체계를 뒤흔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화물기사 유 모씨에게 건넨 2천만원도 회삿돈이라는 게 계좌를 통해 확인됐다.
▶ 최철원은 누구?
= 재벌 2세인 최 전 대표는 올해 나이 41살로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 동생인 최종관 전 SKC 고문의 아들이다. 따라서 최태원 현 SK그룹 회장과는 사촌동생 사이다.
지난 2002년 33세의 나이로 SK글로벌 상무를 거쳐 M&M그룹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왔다.
그러나 SK그룹은 최 전 대표가 현재는 SK 그룹 업무에 일절 관여하고 있지 않아 그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도 있었죠?
= 지난 2007년 3월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이 서울 북창동의 S주점에서 종업원과 시비가 일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을 벌여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 최근들어 재벌기업의 오너 가족들이 왜 어처구니없는 폭력사건에 휘말리고 있는건가?
= 막강한 자금력을 확보한 재벌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권력화되고 특권화된 게 한 원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사적구제''를 금지하고 있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행하는 형벌을 사적구제라고 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자구행위 등의 경우엔 위법성의 조각사유에 해당되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국가가 아닌 개인이 누군가에게 형벌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피켓시위 때문에,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압적인 상황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경찰이 "국가 법질서를 뒤흔드는 행위"라고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 최철원 전 대표가 평소 군대 스타일로 회사를 운영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 최 전 대표는 해병대 출신이다.
지난 2007년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평소 업무스타일에 해병대 정신을 유난히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무실에는 탱크와 미사일 모형이 있고, 벽에는 2차 대전 당시 태평양 아오지마 상륙작전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한다.
최 전 사장은 "훈련병까지 일치단결하는게 해병대다. M&M의 기업정신과 일치한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해병대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회사 이름인 M&M 즉 마이트 앤 메인(Might & Main)을 풀어보면 ''전력을 다해서''란 뜻이 된다. 해병대 정신과 맥락이 닿아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최씨가 폭력과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사를 운영했다면 해병대 정신을 잘못 이해한 것이자 왜곡한 셈이다.
▶ 심리적으로는 어떠한 분석이 가능한가?
= 범죄심리학자인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재벌2세의 ''비뚫어진 남성성''으로 표현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일부의 경우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이 가졌다고 해도 비뚫어진 남성성과 영웅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든 자기가 마음껏 통제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대상이 생겼을 때 자기는 돈을 지불하니까 합법적인 것으로 합리화한 상태에서 평상시의 억눌린 욕구를 분출한 것"이라는 게 표창원 교수의 진단이다.
특히 재벌 1세의 경우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능력으로 성취를 했는데, 재벌2세는 태어남과 동시에 많은 것들이 주어졌다.
따라서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서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끼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혹시 뒤에서 비웃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심리 상황들이 극단적으로 폭력이나 스릴로 나타난다"는 분석도 있다.
▶ 네티즌 서명운동도 거세게 일었다.
= ''최씨를 구속하라''는 네티즌 청원서명은 지난달 29일 오전부터 시작돼 하룻만에 3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불에 기름을 끼얹듯이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은 그냥 덮으면 법도 정의도 없다", "임원들도 최철원이랑 똑같다. 사법처리 해야 된다", "SK 불매 운동을 벌이자" 는 등의 글을 올리며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
▶ 외신도 이번 사건을 대서특필했다는데.
미국 LA타임스는 지난 1일자 국제면에서 최철원씨의 매값폭행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기사 제목은 ''한국의 재벌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행동한다''이다.
신문은 이 사회에 최소한 정의가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는 한 네티즌의 글을 소개하며 한국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분노를 전했다.
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을 찾아가 보복 폭행을 했지만 결국 사면받은 사례도 전했다.
기사의 말미는 이렇게 끝난다. 맷값 폭행사건의 피해자 유씨의 말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재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힘없는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하찮은 취급을 받아왔다(Common people like me are insight in their eyes. The little guy in South Korea has been kicked around for too long.)"
씁쓸한 현실을 온몸으로 웅변한 게 아닌가 한다.
▶ 이번 맷값파문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과거 ''''머슴이 뭘 알겠나''''란 말을 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회사 임직원에 대한 재벌총수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파문도 사안은 비슷하다고 본다.
네티즌들은 매값 파문을 일으킨 최 전 대표가 과연 죄값을 제대로 치를 지, 또다시 돈으로 슬그머니 빠져나와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릴 지 지켜보고 있다.
경영인이 새겨들어야 할 맹자의 말을 인용하겠다.
맹자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군주가 신하를 자신의 손과 발처럼 여기면 신하는 군주를 자신의 배와 심장 같이 여길 것이고, 군주가 신하를 개나 말과 같이 한다면 신하는 군주를 길거리 사람과 같이 여길 것이요, 군주가 신하를 진흙이나 지푸라기와 같이 여기면 신하는 군주를 원수같이 여길 것이다."(군지시신(君之視臣) 여수족즉신시군(如手足則臣視君) 여복심(如腹心) 군지시신(君之視臣) 여견마즉신시군(如犬馬則臣視君) 여국인(如國人) 군지시신(君之視臣) 여토개즉신시군(如土芥則臣視君) 여구수(如寇讐)
재벌로 대표되는 거대 기업인들과 그 2세, 3세들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기 위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