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 두 푼 모아준 국민성금으로 유흥주점이나 단란주점에서 술값으로 사용하는 것은 예사고 모금된 기부금을 자의적인 재량권으로 사업기관에 배분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직원비리 및 횡령 의혹에 이어 이번 종합감사 결과로 연말성금모금이 눈에 띄게 줄고 있고 복지단체들도 월동 준비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연말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물이었던 `사랑의 온도탑''도 올해는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총체적 비리ㆍ부정 = 일반 공공기관보다 한층 도덕적으로 엄격해야 할 공동모금회의 운영과 예산집행은 그야말로 방만 그 자체였다.
지난 3년간 직원 인건비를 일반 공공기관의 인상률보다 세배 높은 9% 올려주거나 술값으로 단란주점, 유흥주점 등에서 2천만원 어치를 업무용 카드로 긁어댄 것은국민성금을 바라보는 공동모금회 직원들의 일반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지난 5년간 중앙회장 및 지회장 이ㆍ취임식에 4천600만원 상당을 썼고 가수 축하공연비, MC 초청비용, 기념품 제작비, 영상편지 제작비 등에만 1천200만원 가까운돈을 써댔다.
은행, 병원, 동사무소 등에 배분될 소형모금함을 구매하면서 단가를 2년만에 50%나 올려주거나 한 복지단체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지급한 명절 상품권의 배부결과를전혀 확인하지 않았던 것은 부정의 축에도 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정부 관여를 배제한 채 출범하다 보니 공동모금회 조직을 견제하거나 감시할 기관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이 이런 부정과 비리를 양산시킨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지난 2005년엔 정부의 강력한 반대를 무시하고 회관 구입에 추가되는 비용 40억원을 모금액으로 사용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공동모금회가 성금을 독점하면서 정부 지원까지 받는 기관인데도 정부의 실질적인 지도나 감독을 받지 않아 방만한 운영과 비민주적 인사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8년 공동모금기관 복수지정이 가능한 법률 개정안이 논의됐다가 공동모금회의 반발로 무산된 적도 있었다.
공동모금회는 그간 복지부와 감사원으로부터 각각 한차례 감사를 받았을 뿐 별다른 관리와 감독을 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동모금회 직원들은 예산집행에 대한 별다른 기준과 잣대를 갖지 못한 채 국민성금이 자신들의 소유인양 배분 사업기관에 대해 자의적 재량권을 남발했다.
단 21일간의 종합감사만으로도 이러한 비리와 부정이 쏟아진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 적발된 비리ㆍ부정도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순수해야 할 공동모금회의 성금 배분과 예산 집행이 부실한 관리와 직원들의 각종 비위로 `사(邪)''가 끼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연말 성금모금이 된서리를 맞을 전망이다.
공동모금회 비리가 불거진 이후 지회마다 개인이 소액기부를 철회하거나 기업이기부를 꺼리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으며 지난 10월부터 지금까지 모금액이 작년보다 20억원 정도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웃 사랑의 뜻을 이제 막 알게 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도 우려스럽다.
한 구호단체 관계자는 "성금 모금에 대한 국민의 냉소적 시선이 느껴진다"며 "구호ㆍ자선단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갈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대한적십자사가 올해초 아이티 이재민을 위해 거둬들인 성금 91억원의 대부분을 아직도 집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고서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공동모금회는 12월1일부터 이듬해 1월31일까지 2개월의 연말 집중모금 기간에 한해 모금되는 3천억원 이상 성금의 68%를 모금해왔던 것에 비춰 이런 상황은 연말 온정에 크게 의지해온 사회복지 단체들엔 생존의 위협에 다름 아니다.
특히 현 정부가 주요 정책 방향으로 나눔문화 확산을 꼽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공동모금회의 비리ㆍ부정은 정부정책에도 심대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여전히 미온적..극약 처방 주문 = 복지부가 이번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전체 292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 정도에 대해 징계, 주의, 경고 조처를 했지만, 여전히 공동모금회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에 고발한 직원도 당초 비리 사실이 확인된 경기지회와 인천지회 직원 2명에 그쳤을 뿐 더러 "증거자료가 없다"면서 검ㆍ경에 수사를 의뢰한 직원은 한명도 없었다.
아울러 공동모금회가 이번 사태를 `지나가는 태풍''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공동모금회가 20일 이사회 퇴진 결과를 전격 발표한 것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언론플레이'' 성격이 짙다.
감사결과에 의해 이사회가 퇴진한 것이 아니라는 모양새를 보여주려 당초 22일로 예정된 감사결과 발표에 하루 앞서 퇴진을 발표하는 `꼼수''를 썼다는 것이다. 감사결과 발표 직후 공동모금회 이사진이 국민에게 공개 사과키로 한 일정도 취소되고말았다.
성금집행에 대한 국민신뢰가 상실된 이상 아예 현재의 공동모금회 조직을 해체하고 공동모금 구조 전반을 개혁하는 극약 처방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사 중임이 가능해 공동모금회가 사유화ㆍ정지권력화될 우려가 있고 개인 기부보다 기업 기부에 치중해 모금 저변 확충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감안한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복지부는 관련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모금기관의 회계 및 배분방식 투명성 강화 및 국민신뢰도 제고를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한 상태다.
한 구호단체 관계자는 "공동모금회는 기탁된 성금과 기부금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직원들이 자의적 기준으로 성금을 배분하는 게 다반사였다"며 "근본적인 쇄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