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중과세 방지 원칙은 조선시대에도 통했다. 조선후기 신임관료가 되려면 수수료가 175냥이나 들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와 근대 여명기 세금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세청 조세박물관은 개관 8주년을 기념해 ''''자문''''(세금 영수증)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 ''''작은 문서로 옛 세상을 엿보다''''를 18일부터 1년간 개최한다.
요금은 무료이고 자세한 내용과 관람예약은 조세 박물관 홈페이지(www.nts.go.kr/museum)를 참고할 수 있다.
국세청은 ''''자문(尺文)이란 조선시대에 조세․수수료 등을 받고 교부하는 영수증으로, 자문의 다양한 형태 및 거래내역 등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특별전은 상설전시와 차별을 두어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 있는 내용으로 구성됐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1.조선시대 세금 영수증 ''''자문''''
@''''조선시대에도 공평한 세금을 부과하려는 노력을? … 어부와 무당에게도 잡세(雜稅)를 부과''''
조선시대의 경제정책이 농업을 근간으로 하였으므로 조세의 주된 세목인 전세(田稅)를 국가 재정수입 목적으로 부과함. 하지만 상업․공업․어업 등에 종사하여 소득이 발생해도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 전세(田稅)와 형평이 안 맞고 농민의 이탈이 많을 것이므로, 배(船)․소금(鹽)․삼(蔘)․무녀포(巫女布) 등 이익이 있는 곳에 공평하게 세금(雜稅)을 부과하였음
◈ 배·소금·해부세 자문(船·鹽·海夫稅尺文, 1892년, 조세박물관 소장)
1892년(壬辰年, 고종29) 2월 23일에 배와 염전에 대한 세금 40냥 4전 8푼과 해부세(海夫稅,어부에 대한 세금) 7전을 김씨(氏)가 받고 작성한 자문
◈ 무녀전 및 결역전 자문(巫女錢․結役錢 尺文, 연대미상, 조세박물관 소장)
사옥도(沙玉島, 목포 북서쪽 약 61.4㎞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의 ○○○가 무녀포전(巫女布錢) 4냥 5전 2푼과 결역전(結役錢)* 2냥 4전 8푼을 지급하고 발급받은 자문
목민심서(牧民心書)에 따르면 무당이 너무 많아 그 수요의 억제와 규제를 위하여 무녀포(巫女布=巫稅)를 징수했다고 함
@''''조선시대에도 ''''이중과세(二重課稅)의 방지''''를?''''
◈ 물금첩(勿禁帖, 1771년, 조세박물관 소장)
1771년(辛卯年, 영조 47) 6월, 강화부(江華府) 하도면(下道面)의 김천방(金天方)은 소유한 선박 1척에 대한 세전(稅錢) 1냥 5전을 납부하였으니 그에 대해 세금을 더 이상 부과하거나 의무를 지우지 말라는 자문으로서, ''''이중과세의 방지''''라는 의미가 내포된 소중한 자료
@''''세금으로 낸 곡식(稅穀)은 서울로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 조행일록(漕行日錄, 1875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875년(乙亥年, 고종 12) 함열현감 겸 성당창 조세영운관(咸悅縣監兼聖堂倉租稅領運官) 조희백(趙熙百)이 호남지역 8개 읍의 세곡(稅穀) 1만 6천여 석(石=섬=10斗)을 조운선(漕運船)에 싣고 3월 23일 웅포(熊浦)를 출발하여 4월 19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운반 및 인계인수 과정을 기록한 일지(日誌) 형태의 항해기록(航海記錄)
@''''세금이 얼마나 많은 양(量)이면 짐꾼이 필요했으며, 세금을 내면서 증인까지 세웠나?'''' ◈ 세대전 자문(稅代錢尺文, 1893년, 조세박물관 소장)
1893년(癸巳年, 고종30) 사옥도(沙玉島)에서 복군(卜軍, 짐을 나르는 일꾼) 안승룡(安承龍)에게 세전(稅錢) 81냥 7전을 대신 납부하도록 하면서 작성한 세대전 자문(稅代錢尺文), 특이하게 증인의 이름(조경삼)과 수결(手決)까지 있는데 그 이유는 짐꾼에게 세전(稅錢)을 맡기면서 증인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 세전(稅錢) 81냥은 엽전 8,100개로서 지게에 가득 실어야 할 양(量)임. 2.이야기가 있는''''자문(尺文)''''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 백성들의 힘으로 다시 세우다.''''
◈ 경복궁 원납전 자문(景福宮願納錢尺文, 1865년, 조세박물관 소장)
1865년(乙丑年, 고종2) 5월 경복궁(景福宮) 중건 시 경명군(景明君)의 11대손 이종석(李鍾奭), 이종대(李鍾大)가 원납전(願納錢, 경복궁 중건을 위해 납부한 기부금) 15냥을 내고 종친부에서 발급받은 자문. 1865년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1592년) 때 소실(燒失)된 경복궁을 중건하고자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기부금 성격의 원납전 및 결두전(結頭錢)* 등을 재원으로 1868년 중건함. 결두전(結頭錢)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위한 비용이 부족하자 1867년 전세(田稅)에 덧붙여 징수한 일종의 부가세임.
@''''조선 후기 신임관료가 되려면 수수료가 175냥?''''
◈ 안창렬 자문(安昌烈尺文, 1886~1887년, 조세박물관 소장)
1886년 12월 문경현감(聞慶縣監)에 임명된 안창렬(安昌烈)이 1887년 정월 임지로 부임할 때까지 중앙 관서에 각종 수수료 175냥을 내고 발급 받은 32점의 자문철(尺文綴). 조선 후기 새로 임명 받은 관원이 중앙의 유력한 관청을 돌며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던 당시 관료사회의 관행을 엿 볼 수 있음. 홍문관(弘文館)에 납부한 연회비용과 수령증 작성비용, 이조(吏曹)에 납부한 문서작성과 수령증 작성 비용, 사간원(司諫院)에 지급한 인사발령 인준에 대한 비용 등 14개나 되는 해당 중앙 관청을 돌면서 수수료를 지급하고 발급받은 자문을 모아서 보관한 보기 드문 귀중한 유물임.
3. 갑오개혁 이후 세금영수증 @''''붓글씨 대신 근대적인 영수증이 등장하다!''''
◈ 지세영수증(地稅領收證, 1908년, 조세박물관 소장)
1907년도분 지세(地稅) 12원을 양동(良洞) 동임원(洞任員) 삼례로부터 1908년 11월 18일 세무서에서 수납했다는 영수증.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년 7월~1895년 7월)의 시행으로 모든 조세를 화폐로 내게 하는 금납화(金納化)로 개편되면서 영수증의 형태도 정형화된 양식으로 인쇄된 인찰지(印札紙, 미농지에 세로로 여러 줄을 쳐서 칸을 만들어 인쇄한 종이)에 전서(塡書, 빠진 글자를 채워서 써 넣음)할 수 있도록 하여, 작성과 내용 파악이 보다 용이해 짐. 이 영수증의 발급기관으로 기재된 ''''세무서(稅務署)''''라는 명칭은 대한제국기인 1907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 @''''여백과 뒷면을 납세안내 및 납세홍보로 사용하기 시작!''''
◈ 지방세 납세영수증(地方稅納稅領收證, 1924년, 조세박물관 소장)
1924년도 제1분기 지방세 4원 52전을 보성군 문덕면 동교리에 사는 신철휴가 납부하고 받은 납세영수증. 영수증 여백에 ''''납세자의 심득사항(주의사항)'''' 및 뒷면에 ''''납세의 노래(納稅 창歌)''''를 인쇄하여 납세안내 및 납세의식을 제고하고자 한 것으로 보임. 아래는 심득사항과 납세 창가의 일부 ●''''심득사항(心得事項)'''' 일부''''본 지정납기일 내에 납부하지 않는 자는 국세징수법에 의하여 처분을 받는다.''''
● ''''納稅 창歌''''가사 일부''''의무 많이 있으나, 제일 먼저 행할 것 세금납입의 의무가 있는 줄을 잊지들 말세.. 조세의 그 의무를 누가 물으면 사회의 공존함과 공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