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행랑채였던 홍보전시관은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촌관광안내도''와 ''도보여행 셀프가이드북''을 얻어 본격적인 북촌나들이를 시작했다.
계동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제일 먼저 ''최소아과의원''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아담한 2층 건물. 검은 글자를 새겨 넣은 하얀 나무간판이 마치 시골 읍내 병원 분위기를 풍긴다. 올해 79세인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 지금도 직접 진료를 하신다고 한다.
''중앙탕''이라는 목욕탕 간판도 꼭 목간 한 번 해보고 싶은 옛 향수를 자아낸다. ''청원산방''이 있는 서당길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895년에 설립돼 100년 역사를 훌쩍 넘긴 재동초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이 학교의 올해 학생 수는 400명이 채 안된다고 한다.
사육신의 한 분이었던 성삼문이 화동 23-9번지에 살았고, 도서관 뒤편 언덕에는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이 살아 맹현(孟峴)으로 불렸다. 또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의 집은 정독도서관의 잔디밭이 되었다.
1613년 광해군 때에는 총포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임시관청인 화기도감(火器都監)이 있었으며, 1927년부터 냉·난방 시설 등을 갖춘 최신식 교사(경성제일교보)가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교육발상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도서관 앞 정원이다. 시원스런 분수와 원두막과 물레방아가 있는 연못, 나무둘레가 360㎝에 달하는 수령 300년의 회화나무 등이 있어 사람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높단다.
겸제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장소를 기념해 세운 석비(石碑) 앞에서 인왕산을 바라보고, 조선왕조 역대 제왕의 족보와 초상화를 보관하고 종실제군의 관혼상제 사무를 맡아보던 종친부의 경근당과 옥첩당의 자태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종친부 옆에 위치한 서울교육사료관에는 옛 교실과 학교 앞 문방구의 모습을 그대로 꾸며놓았다.
또 추억의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해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연을 물어보니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한 때는 소설을 쓰기도 했던 문인이었지만, 지금은 생활이 어려워져 집에 소장하고 있던 책을 팔고 있단다.
북촌한옥길을 따라 올라가니 본격적으로 한옥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입춘대길''이라고 써 붙인 대문엔 사람이 살지 않는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다.
지붕 위 색이 바랜 기와. 대문 옆으로 화분이 가지런히 놓인 한적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듬뿍 새겨진 돌담과 나무 대문. 나무와 흙, 돌로 만들어진 한옥은 고향집처럼 언제나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경사진 골목길 양쪽으로 한옥이 촘촘하게 들어선 가회동 31번지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오며 모두들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평일 오후인데도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많았다.
자리에 앉아 골목길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양 옆으로 펼쳐지는 물결 같은 한옥 지붕선의 모습이 일품이다.
한옥의 선과 색채, 질감을 천천히 감상하며 언덕길을 올라 이번엔 반대로 내려다보면 원경의 고층빌딩과 근경의 한옥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갤러리에서는 20대 사회혁신기업인 ''공감만세''가 주최하는 ''이푸가오로 떠나는 공정여행''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이쯤에서 북촌여행을 마치지만, 그러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감사원을 거쳐 성균관대 후문 쪽으로 도심 경치를 감상하며 25분만 걸어가면 북악산 서울성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서산을 어물어물 넘어가는 어스름한 저녁인데도 성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조망명소인 ''말바위''에서 종로 쪽 도심을 바라보니 네온사인들이 하나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북촌의 하루도 조용히 저물고 있었다.